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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Sep 27. 2022

똑똑하지는 못하면서 부지런하기만 했던 리더

2015 교육과정 총론 이야기

지난 글에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역량중심 교육과정'인데, 역량의 개념이 모호한 채로 도입된 탓에 현장에 오해를 불러일으켰으며 결국 기초학력저하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문제가 역량 개념의 도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은 '각론'의 특성을 무시한 교육과정, 즉 각 교과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교육과정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육과정 개정 시마다 '교육내용 적정화'의 논의가 제기되곤 했다. 학생들이 공부할 양이 과도하게 많고 그 수준이 어려우니 공부량도 좀 줄여주고 난이도도 적정화시켜 필요한 공부, 효율적인 공부를 할 수 있게끔 하자는 논의이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이전 교육과정 교육내용 대비 30% 감축,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20% 감축을 도모하였으며(김재춘, 2003; 이광우 외, 2014)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성취기준의 수를 기존의 70~80%로 감축할 것을 요청하였다(교육부, 2015). 한편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의 개발진들은 이를 교육내용을 단순히 양만 줄일 것이 아니라 소수의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교과교육과정을 재구조화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 결과 핵심 개념, 빅 아이디어, 원리, 일반화된 지식을 밝히고 이를 중심으로 교육내용을 조직하는 것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모든' 교과교육과정 개발의 주요 과업이 되었다(임유나, 홍후조, 2016). 


우리나라 공통 교육과정의 10개 각 교과(국어, 영어, 도덕, 사회, 과학, 수학, 기술가정, 음악, 미술, 체육)는 각각 다루는 내용이 지식, 기능, 태도의 측면이 일정 비율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과별로 어느 측면이 보다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느냐가 다르다(임유나, 홍후조, 2016). 다시 말해 각 교과는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 성격은 지식, 기능, 태도 중에 무엇을 중시하느냐로 구분 지어볼 수 있다. 수학과 과학, 사회는 이론적 지식과 개념의 이해가 중심이 되는 교과일 것이고, 국어와 외국어, 그리고 기술가정, 예술, 체육의 경우에는 기능의 숙달이 중심이 되는 교과이다. 그리고 도덕의 경우에는 가치와 태도의 내면화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교과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경우 내용 체계를 각 교과에 적용한 실태를 살펴본 결과, 과학이나 사회와 같이 핵심 개념 및 일반화된 지식의 형식이 비교적 타당한 체계로서 적용되는 교과도 있었으나, 많은 교과에서는 일반화된 지식을 학생들이 배워야 할 보편적인 지식으로 보기에는 타당하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임유나, 홍후조, 2016).


그런데 지난 글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역량 중심 교육과정'이라고 하였는데, 이번 글에서는 모든 교과에 '지식 위주의 내용체계'를 강요하는 교육과정이라고 하고 있다. 한마디로 2015 개정 교육과정은 핵심 개념이나 원리를 중심으로 하는 학문중심 교육과 실제적 역량교육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혼용하고 있다(임유나, 홍후조, 2016). 교육과정 '총론'은 각 교과별 교육과정인 '각론'들의 리더이자 교육현장에서 각기 실천되는 교육과정들의 리더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좋은 리더는 똑똑한데 게으른 리더라고 한다. 그렇다면 최악의 리더는 똑똑하지는 못하면서 부지런하기만 한 리더일 것이다.


지금까지 역량중심 교육과정을 어떤 모양으로든 6~7년 끌고 온 이상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역량중심 교육과정은 '잘'만 한다면 미래 교육에 패러다임에 맞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최근 OECD에서는 '역량 교육'을 매우 정교하게 개념화하는 작업을 했다. 정교하게 개념화된 역량 개념에서는 지식을 놓치지 않도록 유의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시안이 막 발표되고 있는 지금,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반성으로 OECD의 최근 노력을 반영한 것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각 교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도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반영하려 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각 교과군이 서로 다른 형식으로 교육내용을 표현할 수 있게끔(임유나, 홍후조, 2016) 해주어야 할 것이다. 


교육과정을 개발할 때에는 교과, 학습자, 사회의 세 측면의 요구를 고려해야 한다. 전통적으로는 교과 및 학문의 요구가 강력하게 반영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사회의 요구가 강력하게 반영되는 추세이다. '역량'이 교육과정에 반영된 것은 '미래사회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사회의 요구를 교육과정에 강력하게 반영하면서 (잘 반영하지는 못했지만) 교과의 요구를 고려하지 못했다. 교육과정의 잦은 개정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개정이 되어야 한다면 새로운 교육과정은 사회, 교과, 학습자의 요구를 고루 반영하는 균형 잡힌 교육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교육과정 결정의 3요소. 홍후조(2016). 알기 쉬운 교육과정. p76.



참고문헌

교육부(2015).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위한 교과 교육과정 개발 정책 연구진 2차 합동 워크숍 자료집. 교육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과학창의재단.

김재춘(2003). 국가 교육과정 개정 담론의 비교 분석(I): 제4차에서 제7차에 걸친 '교육내용의 적정화' 담론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연구, 21(2), 105-122.

이광우, 정영근, 서영진, 정창우, 최정순, 박문환, ... 김사훈(2014). 교과 교육과정 개발 방향 설정 연구. 교육부.

임유나, 홍후조(2016).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교과별 교육내용 제시 방식 검토: 내용 체계를 중심으로. 아시아교육연구, 17(3), 277-302.

홍후조. (2016). (알기 쉬운) 교육과정. 서울: 학지사.



배경사진 출처

http://blog.sproutenglish.com/school-subjects-vocabulary-le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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