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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Sep 23. 2022

"역량", 최근 공교육 붕괴의 주범?

2015 교육과정 총론 이야기

"역량"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건 대학교에 올라와서였다. 우리 학과 교수님 중에 학생들 앞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활발하신 교수님이 계셨는데 바로 그분이 학생들의 능력을 "역량"이라고 표현하곤 하셨다. 우리의 학점, 영어실력, 발표력, 글쓰기 실력 등을 모두 종합하여 평가한 것을 "역량이 있다/없다."로 표현하셨다. 직장에서도 "역량"이라는 말이 종종 쓰였는데 또 그 직장에서 일을 가장 열심히 하기로 유명한 팀장님이 직원들을 평가할 때 "역량이 된다/안 된다."로 표현하곤 하셨는데 의사소통 능력, 자료 탐색 능력, 분석 능력, 정리 능력, 업무 속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의미인 것 같았다.


대학교 이후로 역량이라는 말이 종종 귀에 들려온 것은 역량이라는 것이 초, 중, 고 교육과는 거리가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대학교에 막 들어간 2014~15년 당시 우리나라에 역량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던 걸까? 아무튼, 역량이라는 말이 누가, 어떻게 쓰였느냐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주로 조직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그 말을 쓰곤 했고, 재능에 기인한 능력, 노력에 기인한 능력, 그리고 아직 발현되지 않았지만 얼마든지 계발될 수 있을 잠재력 등 개인이 갖춘 각종 능력과 능력에 대한 기대를 종합한 의미로 쓰였다.


역량이라는 말이 초중고 교육 장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배경은 기존의 지식 중심의 학교교육이 사회에서 유용성을 갖지 못한다는 문제제기로부터였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으로 일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논의가 시작되며 각종 연구가 수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뭐든지 빠른 우리나라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역량 중심 교육과정"으로 만들어 학교교육이 역량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시도하였는데, 이렇게 역량을 국가 수준 교육과정 문서에 명시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먼저, 역량중심 교육과정이 교육과정에 어떻게 반영되어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초중등교육과정 총론 문서 I. 교육과정 구성의 방향 - 1. 추구하는 인간상에 "핵심역량"이라는 말이 나타났고, 6가지 핵심 역량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교육부(2015).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별책1(총론). p2


또한 초중등교육과정 총론 문서 I. 교육과정 구성의 방향 -  2.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에도 "핵심역량"을 함양함으로써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고 하고 있다. 한편 6가지 중점사항 중에서는 특성화 고등학교 및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에 대한 사항인 "바"에서만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초 역량과 직무 능력을 함양한다"며 "역량"이라는 용어가 다시 한번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15 교육과정은 이러한 연유로 "역량중심 교육과정"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교육부(2015).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별책1(총론). p3



그렇다면,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은 이 역량중심 교육과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고 있을까? 역량기반 교육과정 연구학교에서의 교원의 경험을 심층 면담을 통해 분석한 연구(2018, 이주연)를 살펴보면, 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첫째, 역량의 개념이 추상적이고 모호하여 이를 학교 및 교실 수준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였다. 한 학교 내에서도 서로가 이해한 바가 달라서 의견을 조율하는 데에도 쉽지 않았다고 하였다. 한편 이 조차 일부 학교의 대응일 뿐,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역량 개념의 정의에 대한 합의 없이 추상적인 상태 그대로 각기 교육과정에 반영하였으며 교육과정의 오해, 왜곡, 혼란을 초래하였다고 하였다. 둘째, 역량의 과다와 역량들 관의 관계 파악에 대한 혼란을 호소하였다. 특히 모든 교과를 담당하는 초등학교 교사들은 각 교과가 제시한 역량을 모두 숙지하고 수업에 반영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호소하였다. 어떤 교사는 "역량이 너무 많으면 없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하였다고 하였다. 셋째,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사례에 대한 자료와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교사들은 교육과정 설계 단계에서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을 실행하고 평가하는 단계에서까지도 본인의 수업이 적절했던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고 하였다. 넷째, 역량기반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 스스로의 이해 및 경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한 교사는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성패는 교사의 역량에 달려있다."라고 표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다섯째, 교사들은 역량 함양 활동으로 인한 기초 학습의 소홀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교사들은 역량을 중심으로 여러 교과를 연계 및 통합하거나, 학생의 참여 활동을 강조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할 경우 학생들이 기초 개념이나 원리를 체계적으로 학습하기에는 어렵다고 지적하였다. 이는 교사들이 '역량 함양을 위한 활동'과 '교과 학습'을 상충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교사들은 역량 함양 정도에 대한 평가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교육과정-수업-평가는 일련의 관계로써 일체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운영하였다고 해도 여전히 평가는 암기 위주의 지필평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하였다.


앞서 역량중심 교육과정과 관련하여 교사들이 호소한 어려움 중 다섯째에서 교사들은 역량 함양 활동으로 인한 기초 학습의 소홀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고 했다. 즉, 역량을 중심으로 여러 교과를 연계 및 통합하거나, 학생의 참여 활동을 강조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할 경우 학생들이 기초 개념이나 원리를 체계적으로 학습하기에는 어렵다고 지적한 것으로, 실제로 역량이 그런 것이 아님에도 교사들이 '역량 함양을 위한 활동'과 '교과 학습'을 상충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역량중심 교육 이슈에는 항상 기초학력 저하 이슈가 함께 등장한다. 실제로 2010년대 초반, 즉 2009년과 2015년 교육과정이 학교현장에 적용되고부터 우리나라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급격하게 저하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원인들이 작용했을 수 있겠지만, 그중 교육에서 "역량"을 강조한 점이 기초학력 저하의 하나의 유력한 가설로 꼽힌다(이광현, 2021). 행동과 실천을 강조하게 되는 역량 중심 교육담론에서 "지식" 및 "인지적 요소"는 목적에서 수단으로 전락한다. 물론 수단으로써의 지식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한정된 시간과 교육자원에 실천적 요소를 추가하려면 지식과 내용 습득에 대한 부분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따른 중학교 3학년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2012~2021) / 출처: 서울교육 웹진



교육부「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따른 고등학교 2학년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2012~2021) 출처: 서울교육 웹진


역량 교육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기존의 지식 중심의 학교교육의 유용성에 대한 비판으로부터라고 했는데, 학교교육의 역할은 도대체 무엇일까? "유용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학교교육의 역할은 맞을까? 어떤 사람이 "학교에서 배운 것은 인생에 하등 쓸모가 없었고, 내 인생에 쓸모 있는 것은 전부 동네 형으로부터 배웠다."라며 학교교육을 비판한 것에 대해 한 교육학 교수는 '학교교육은 동네 형으로부터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이홍우, 2018).


한편 또 한 교육학 교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역량 교육'이 나타난 것에 대해서 2015 개정 교육과정 문서에 나타난 역량 개념은 임의적이고, 자의적이고 한시적이라면서,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역량 개념을 가지고 국가 교육과정 체제를 근본적 수준으로 변화를 도모한 것은 아니며, 역량중심 교육의 의미를 다소 느슨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6개로 요약된 역량 목록도 얼마든지 조정되고 보완될 수 있는 잠정적인 목록이라고 해석하였다(황규호, 2017). 따라서 역량 목록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나 제시된 역량 목록 외의 능력과 자질에 대해 배타적으로 생각하거나 경시하는 현상은 경계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역량 교육은 이미 논의 중이고, 논의 중인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렇게 결론이 나지 않은 개념을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넣어도 되는 것일까? 이미 역량교육과정을 적용해보고자 혼란을 겪고 있던 교사들과 학교 현장에 매우 당황스러운 해석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는 듯한 이러한 해석은 오히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학교 현장에 오해와 혼란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기초학력 저하의 결과를 가져온 '졸속' 교육과정이었음을 말해준다.


우리나라보다 역량 교육에 대해 먼저 논의를 시작한 OECD나 선진국들도 국가 수준에서 역량을 국가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것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다음 영상은 최근 핀란드 교육의 역량 중심, 학생 중심으로의 변화가 과연 긍정적이냐에 대한 핀란드 교육학자들의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r9RXMB1raA


2015 개정 교육과정이 학교 현장에 안착되기는커녕 아직 이해조차 미흡한 마당에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또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교육과정의 잦은 개정도 역량 중심 논의와 함께 기초학력 저하의 원인 가설로 꼽힌다(이광현, 2021).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숙고된' 학교 현장에 신뢰와 안정감을 주는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교육부(2015).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서울: 교육부.

이광현(2021). 기초학력 저하 원인에 대한 가설 분석과 기초학력 향상 방안. 敎育政治學硏究, 28(1), 37-61.

이주연(2018). 역량기반 교육과정 연구학교 교원의 경험 분석. 교육과정평가연구, 21(4), 1-20.

이홍우(2018). 미국 교육학의 정체. 경기도: 교육과학사.

황규호(2017). 일반역량 교육 논의의 쟁점 분석. 교육과정연구, 35(3), 247-271.

서울교육 웹진

https://webzine-serii.re.kr/%EA%B8%B0%EB%B3%B8%ED%95%99%EB%A0%A5-%EB%B3%B4%EC%9E%A5-%EB%85%B8%EB%A0%A5-%EC%99%9C-%ED%95%84%EC%9A%94%ED%95%98%EA%B3%A0-%EC%96%B4%EB%96%BB%EA%B2%8C-%ED%95%B4%EC%95%BC-%ED%95%A0%EA%B9%8C/

통계청 학업성취도 평가(교과별 성취수준 비율) 

https://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539q


배경이미지 출처

https://skillmetrics.net/blog/competency-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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