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천
드디어 이 날이 왔다. 오래도록 꿈꾸던.
잠시 접어두었던 일기장의 빈 페이지들을 다시 채워갈 날.
웬만큼 중요하고 급박한 일로 바쁘지 않은 이상 꼭 하루치의 일기를 작성하는 나는 꼭 3일 동안 아무 스케줄을 적어놓지도, 일기를 쓰지도 않았다. 성찰의 공간이 전혀 허락되지 않을 만큼 온갖 과제가 물아 붙어진 날들이었다.
아, 시원하다!
그토록 기다리던 퇴사를 맞았다. 좀처럼 마음이 가지 않고 집중이 힘들었던 "일"이라는 것. 특히 행정일. 이에 대한 완전한 졸업과 해방. 그리고 1월부터 지속되었던 온갖 과제들의 연속. 이들의 체증을 (일시적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잠시나마 해소하고 브레이크를 건다. 그리고 여행을 간다.
독일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행기만 타면 잠에 들어 이룩하는 장면을 매번 놓치는 나는 이번에도 예외 없이 한차례 잠에 빠졌다가 비로소 하늘 위 기류에 안정적으로 편승했을 때 눈을 뜨고 활동을 시작한다. 마음껏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 또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시간. 고등학교 때부터 '이동시간'이라는 것을 나는 참 좋아했다.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허락되는 시간. 그리고 제한된 시공간 내에서 허락된 자유의 무한함을 오히려 느꼈다.
여행에 가다니. 그것도 독일이라니. 게다가 내 돈으로 엄마의 여행을 시켜줄 수 있다니. 감사하다.
우리 엄마는 주변 아줌마들이 부러워하는 엄마가 됐다. 특히나 아들만 가진 아줌마들이 엄마의 이 이벤트를 더욱 특별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두 명의 아줌마가 우리 엄마한테 여행 가서 커피 한 잔 하라고, 멋진 저녁 식사 하라고 용돈을 주셨는데, 둘 다 아들만 가진 아줌마들이다. 그리고 여행 당일 아침 날짜를 기억해 두었다가 축복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 아줌마도, 아들만 가진 분이다.
"딸 키우면 비행기 탄다더라"라는 말을 어쩌다 엄마의 생애서 실현해주고 있다. 요즘 세상에 딸들이 사회에서의 딸에게의 어떤 역할부여에 매우 싫증이 났다는 걸 잘 알기에 이런 말을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우리 엄마는 정말로 순수하게 즐거워했다.
아침에 공항으로 엄마와 나를 데려다 주기로 한 아빠는 평소와 달리 일어나는 것부터 굼뜨게 행동했다. 아빠를 둘고 장기간 우리를 떠나보내는 것이 서운하고 착잡했던 것일까?
아빠가 공항에 주차를 하는 동안 엄마와 나는 체크인과 와이파이 도시락 수령을 마쳤다. 독일 가는 사람이 얼마 없는지. 5월 5일 연휴의 시작임에도 생각보다 사람이 없어 신속하게 처리했다. 엄마는 나한테 배웠는지 수시로 챙겨 온 노트를 펼쳐 글도 쓰고 책도 읽는다. 엄마가 나와 취향을 공유해 주어 행복감이 증폭되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은 생각보다 환경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으며 와이파이도 필요 없다. 그리고 생각보다 기다리거나 이동하며 길에서 소비할 때가 많은 여행의 시간들도 알차게 만들어준다.
인천공항의 루프트한자 게이트부터는 독일 사람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미 독일이었다. 좀처럼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그들(그리고 그들의 옷차림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사이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한국의 승무원들은 내게 조곤조곤 친절할 것 같은 데 비해 독일 승무원들은 자칫 뭘 잘못했다가는 혼날 것만 같은 포스를 뿜어 냈다.
체크인을 미리 하지 않은 탓에 엄마와 양옆으로 가 아니라 앞뒤로 앉았다.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도착하고 나면 또 매우 오랜 시간을 붙어 있을 것이기에 오히려 이 시간만큼은 독립적으로 보낼 수 있어 나름 좋기도 했다. 물론 나는 엄마와 여행할 때도 꽤나 나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엄마는 꽤 좋은 여행메이트이다.
양옆의 낯선 승객들. 오른편의 인도계 젊은 여성은 내가 처음 자리에 앉을 때 마치 내가 올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왼편의 키가 매우 큰 젊은 독일인은 내 좌석의 모니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내가 승무원에게 먼저 말하고 한번 껐다 켜주었으나 문제는 반복되었다.) 더 크고 정확한 독일어로 이야기해 주었다. 친절 속에 휩싸여 있다. 따뜻하다. 나도 그런 지나가는 사람이 되기를. 내가 만나고 오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