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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Apr 01. 2024

새로운 미션

아빠랑 도쿄 여행(2)

아빠랑 도쿄 여행(1)

요즘 교회에서 몇몇 이서 기도모임을 만들어서 서로 중보기도를 해주고 있다. 나는 이번 주에 ‘아빠에게 신경질을 부리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을 단기 기도제목으로 부탁했다. 그리고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채 전에 그것은 "필히 기도해야만 하는" 사항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빠는 그래도 일본을 꽤 잘 아는 사람이다. 대학 졸업부터 지금까지 35년을 넘도록 일본계 회사에서 근무하시며 일본 출장도 자주 다녀오시고 일본 사람들과도 많이 대면하고 하셨다. 그렇게 많이 와보셨으면서도 언제나 누군가를 데리고 여행 가고 싶은 곳을 여쭈면 “일본”이라고 대답하시곤 하셨다. 새로움보다는 익숙함과 친숙함에 더 즐거움을 느끼시는 걸까, 혹은 당신 자신이 즐기는 것보다 자신이 누군가를 잘 안내해 줄 수 있음에 더 큰 기쁨을 느끼시는 걸까? 


게다가 mbti 끝 자리가 J인데 J 중에서도 슈퍼 J시라, 여행 며칠 전 일본 여행을 위해 결성한 단톡방에 엑셀 파일이 올라오는데, 여행 일정부터 하여 준비물 리스트, 예산 상세, 예산 요약 등등이 시트별로 쫙 정리한 것이었다. 나는 오호라, 정말 아빠만 믿고 졸졸 따라다니면 되겠거니 하고 아무것도 알아보지도 찾아보지도 않고 몸만 동동 왔다.


그러나 아무리 자주 다녀봤다 할지라도, 또 아무리 J 성향이라고 할지라도, 해외 자유 여행은 언제나 예상 가능 범위 밖이다. 별 것 아닌 것들이 어렵다. 특히나 복잡하기로 소문난 도쿄는 더욱 그러했다. 지난겨울 후쿠오카도 다녀오기는 했지만 도쿄는 그곳보다 한 5배는 더 복잡했다. 아빠는 예상과는 살짝 다르게 많이 헤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일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해외여행에 익숙한 나와, 해외 자유 여행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본은 좀 아는 (혹은 안다고 생각하시는) 아빠와, 거기에 더해 아직 10대의 영혼을 가진 막 스무 살이 된 사촌동생의 투정의 콤보인 것이다. 애매하게 아는 사람들끼리 모이니 서로 가야 한다고 가리키는 방향이 다르고 거기에 피해자까지 존재한다. 나는 어디서든 구글지도만 켜고 마는데 아빠는 공항에 도착해서 굳이 안내 책자를 찾아 나서고, 역에 도착해서는 종이 지도를 폈다. 기차 티켓은 키오스크에서 빠르게 사면되는 거였는데, 그리고 우리는 절차를 거의 다 완료했었는데, 나의 약간의 헷갈림과 아빠의 불신으로 결국 사람한테서 사는 줄에 다시 서서 시간만 더 쓰고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저번 엄마와의 유럽 여행 때 엄마는 완전히 나에게 의지했다. 그것도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이끄는 것보다 누군가를 믿고 따르는 것 - 그게 바로 내려놓음인가 - 또한 쉽지 않다는 것, 어쩌면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보기에 어른들은 예전 방식에 고착되어 있어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을 무시하고 나만 따라오라고 하는 것도 무례할뿐더러 또 나이만큼이나 고집이 생겨 그렇게 듣지도 않는다. 그래도 일상생활에서는 같은 집에서만 살뿐 사실상 각자 생활은 알아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부딪힐 일은 없다.


한 권사님께서 나의 이번 여행을 응원하시며 가서 아빠의 기를 많이 살려주라고 하셨다. 솔직히 요즘 거의 모계 사회이지 않느냐고, 집안에서 거의 엄마의 말이 법이고 아이들도 엄마를 더 신뢰하며 아빠들이 가정에서 가장으로서의 무게만 있지 기는 펴지 못하고 살지 않느냐고 하셨다. 아빠들이 감정 표현을 잘 안 해서 그렇지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아빠가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엄마가 아이들과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우리 부모님 세대의 대부분 가정에서는 아빠가 웬만큼 엄하지 않는 이상 그런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나는 그게 이렇게 어려울지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저번 여행에서도 엄마에게 좋은 딸, 착한 딸만 될 수 있다면 그 여행은 성공이라고 여겼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잘 알고 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아빠를 믿고 따를 것, 아빠가 카메라를 들이밀 때 웃어줄 것 (오늘도 귀찮아서 그냥 가버리거나 찡그린 표정을 한 게 몇 번이다.), 한 번이라도 더 칭찬해 드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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