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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Apr 05. 2024

엄마를 떼고 온 여행에서 생각하는 엄마의 자리

아빠랑 도쿄 여행(4)

이번 우리의 여행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아빠, 나, 사촌동생, 그러니까 50대 후반의 남성, 20대 후반의 여성, 10대를 이제 갓 벗어난 남성. 성별도 세대도 각자 다른 세 사람의 여행. 혈육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긴 했지만 그동안 그 안에서 각자 움직였던 것이지, 함께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아빠가 혼자 직장생활을 하셨고 엄마가 가정주부로 엄마 손에 키워졌던 나는 그래도 엄마와의 생활에는 익숙했다. 그리고 아빠와 있을 땐 항상 엄마도 함께 있었다. 엄마가 없는 아빠와의 시간은 정말 드문 것이었다. 일상생활을 할 때는 엄마를 다 받아주는 아빠가 천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를 떼고 아빠와 여행을 하는 지금, 나는 엄마가 천사였구나, 하고 깨닫는 중이다.


고로, 아빠와 엄마는 둘 다 천사라는 결론이다!



부부란 무엇일까? 왜 이 여행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하는가. 엄마와의 여행에서 나는 아빠의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아내의 기쁨을 위해 긴 말 하지 않은 아빠. 아빠와의 여행에서 나는 엄마의 생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과 인내로 지켜낸 시간일 것이다. 엄마, 아빠 둘 다와의 여행에서는 둔한 나로서는 결코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알아채기도 전에 두 분이 각자의 역할을 너무나 잘하고 있었을 것이기에.


아침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아빠에 대한 나의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나는 정말 심각했는데, 내가 아빠의 행동을 다 묘사하기도 전에 엄마는 이미 파악하고 “호호호 그거 뭔지 알아~” 하며 아빠에 대해 통달한 듯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신을 믿는 나는 삶의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허락되지 않으면 이행될 수 없다고 여긴다. 지금 당장 나 스스로 여행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더라도 모든 것이 다 그 목적이 있었노라고 여긴다. 긴 시간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래도 되나, 지금 시점에 시간과 돈을 이렇게 써도 되나, 스스로 의문도 가지고 약간의 죄책감도 느꼈지만 어차피 내가 하고 싶어도 이러면 안 된다면 어떻게든 막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한편 생각해 보면 저번 유럽 여행도, 이번 도쿄 여행도 내 의지로만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주 조금의 의지만을 가졌을 뿐이다. 저번 유럽 여행은 엄마와의 여행으로 계획하지 않았으나 어쩌다 보니 엄마와의 여행이 되었고 이번 도쿄 여행은 내가 끼는 여행이 애초에 아니었으나 어쩌다 보니 내가 끼게 되었으니.


소바와 규동과 타코야키와 라멘을 먹으러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아닐 거다. 오다이바의 미니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다이바시티 앞의 커다란 건담 모형을 보러, 돈키호테와 유니클로 쇼핑을 하러 여기까지 온 건 아닐 거다. 그런 것들은 부속물들일뿐이다.


나는 아무래도 큰 일을 앞두고서, 아직 필요한 훈련을 받으러 온 것 같다.



먹으러 온 거 아닌 것 같다며...?
사실 먹으러 온 거 맞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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