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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Apr 12. 2024

노을은 계획해서 볼 수 없다

아빠랑 도쿄 여행 (6)

이날 저녁 식사로 먹기로 한 것은 몬자야키였다. 오사카에 오코노미야끼가 있다면 도쿄에는 몬자야키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 서툴렀다. 몬자야끼는 그렇게 빠르게 먹고 일어날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3인이면 꼭 3개를 시켜야 했는데, 식탁 위 철판에 3개 메뉴가 한 번에 나오는 것이 아닌 1개씩 각각 나오고 요리되는 것이었다. 1시간 만에 식사를 하지는 못하고 나름 서둘러서 1시간 반이 걸렸다. 여기까지 와서 노을을 놓칠까 노심초사하면서 식사를 한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었을 거라는 걸 모르고. 사실 그것 때문에 노을을 먼저 보고 저녁을 먹으려 했던 것인데. 뭐, 맛은 정말 좋았다. 특히 명란이 들어간 몬자야키가.


맛 별로 하나씩 만들어 먹는 몬자야끼


휴대폰에 뜨는 날씨 정보에 오늘의 일몰은 6시 50분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6시 반에 서둘러 시부야 스카이로 갔다. 그런데 글쎄 오늘 티켓은 마감이라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을 하거나 했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애써 왔는데!


요즘 세상…


아… 나는 저녁을 먹으며 조용히 기도했었다. 사촌동생이 왠지 오늘 한 숨을 푹푹 쉬던 것이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저녁을 잘 먹고, 시간을 잘 맞추어 시부야 스카이에 가서 멋진 노을을 이 아이에게 보여주시어 이 아이에게 기쁨을 주시라고. 하고 싶은 걸 잘 즐기며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투정도 잘 부리고, 어제까지는 발이 많이 아팠고, 그 애 나름대로 나와 우리 아빠와 여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아까 타워레코드에 들렀을 때 자기 누나가 부탁한 앨범도 구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인이 원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도 않으면서 그 애가 이 여행을 판단할 자격은 없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카페에서 지루해하며 그 애가 한숨을 쉬는 것을 애써 외면했다. 여행을 선택한 것도 자기 자신이고, 자신의 여행을 자신에게 만족스럽게 만들어나가는 것도 자기 자신이다. 모든 것이 자기 속마음의 바람대로 이루어지도록 누군가의 봉사를 바랄 수는 없지 않을까. 자신이 쟁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 누구도 탓할 수는 없는 법.


아무튼 나의 기도는 기도가 잘못된 것이었는지, 그분의 뜻이 달랐던 것인지 우리의 계획은 완전히 망가진 것처럼 보였다. 전망대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그 반틈 정도인 14층 매표소까지만 올라갈 수가 있었는데, 아빠가 거기까지라도 올라가 보자고 했다. 사촌동생은 어차피 표도 못 사는데 왜 거길 가냐며, 헛걸음을 하고 싶지 않다며 말을 듣지 않으려 했다. 휴… 나는 둘이 알아서 합의를 보라고 했고 아빠는 고집을 꺾지 않았기에 아빠가 이겼다. 결국 매표소까지라도 올라가 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가 데려다준 14층에서는 전망을 볼 수가 없었다. 아빠는 한층 한층 내려가 보자고 했고 사촌동생은 아빠가 한층 더 내려가보자고 할 때마다 못마땅해하며 마지못해 아빠를 따라갔다. 그러나 아빠의 연륜에 의한 선견지명이었는지, 우린 결국 12층에서 멋진 전망을 볼 수 있었음과 동시에 오늘은 어차피 노을이 없는 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부야스카이 건물의 12층에서 볼 수 있는 풍경/그래도 이 풍경이라도 좋은지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나는 아직도 멋진 노을을 마주했던 어느 날 퇴근길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2년 전쯤이었다. 노을이 그렇게나 짙게 드리울 수 있다니! 그러나 그날은 노을 명소로 유명한 어딘가에 갔던 것도 아니고, 그냥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하던 어느 날의 퇴근길이었다. 평범한 일상의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그러나 어느 여행지에서의 풍경보다도 멋진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냥 평범하게 퇴근하던 어느 날


노을을 좋아하게 된 게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이 이후로 나는 제주도 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다. 제주도의 이곳저곳을 알아보다, 노을로 유명한 어느 바를 찾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바에 시간 맞춰 가서 꼭 노을을 봐야지, 라고 계획했다. 그러나 그 바에 갔을 때 그날엔 노을이 없었다. 비 오는 날도 아니었음에도 유난히 탁한 서쪽의 하늘색은 아무런 전희도 없이 금방 남색으로 변했다.


노을은 계획해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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