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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Apr 17. 2024

그 어른들도 많은 순간 눈 감아주었겠구나

아빠랑 도쿄 여행(8)

내가 아빠에 대한 좋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된 후에, 왠지 나의 화살은 사촌동생에게로 돌아갔다. 본인의 아빠도 아니면서 어찌나 버릇이 없고 말을 안 예쁘게 하는지! 나는 애써 개입하지 않았다. 만일 그 애가 이 여행이 불만이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깨닫게 될 것이라고 여기며...


이제 겨우 스무 살이니 다음 여행, 또 다음 여행을 거듭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를 돌보고 챙기며 더불어 지내는 방법을 점차 알게 될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더 나중에는 어른들의 마음도 이해할 것이라고. 그래도 참 귀엽고 똑똑한 동생이다...


한편 그 애의 모습을 보니 역시나 무지하고 버릇없었던, 그야말로 철없던 나의 어린 시절도 떠올랐다. 내 주변의 어른들도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화가 나더라도 나의 마음을 지켜주기 위해 정말 많은 순간 눈감아주었겠구나. 그랬을 거라 생각하니 몹시 부끄럽다.





아빠도 어떤 면에서는 아이 같았다. 그리고 이 여행의 초반에 나는 이 여행의 주도권이 내게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3일 차까지 버티다 내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녁을 먹고 그 테이블에서 휴지 한 장을 꺼내 남은 이틀간의 계획을 짜 주었다. 모두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아도 할 수 있도록! 나는 아빠가 가고 싶은 곳에 다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을 수 있도록 챙겨주어야 했다.




나로서 남자 둘과 여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는데, 아니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직전의 엄마와의 여행과는 참 대조적이었다. 우리 엄마는 정말 '배려'가 몸에 배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건 결코 당연한 게 아니었다. 엄마는 어디서든 나를 보살펴주었다. 그러나 남자들의 세계는 달랐다. 남자들의 세계 속에서 배려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투쟁하고 싸워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빠도, 사촌동생도 내게 딱히 말은 안 했지만 나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었을 것이고, 나의 언행에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별 말 하지 않고 함께 해주어 정말 고맙다. 그래서 마지막 날 저녁은 내가 한 턱 쐈다! 한 덩치 하는 그들을 위해, 타베호다이로!




그래도 나는 정말로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그들도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남긴 글들에 왠지 부정작인 말을 많이 담은 것도 같은데, 이 글들을 업로드하는 지금 그 부정적이었던 모든 감정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네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은 순간 / 식당의 휴지에 급 작성한 남은 이틀 간의 계획 / 고마운 동행자들
스시 타베호다이, 내가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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