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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Apr 04. 2024

디즈니씨(Disney Sea)에서 얻은 건

아빠랑 도쿄 여행(3)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도쿄 여행 4일 차이다. 그런데 둘째 날에 디즈니씨에서 하루종일 놀며 모든 체력을 다 소진한 탓에, 조금이라도 더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사촌동생은 발바닥에 물집이 트고 아프고, 나는 허리가 아픈데 아빠는 자신의 추억을 더 확인하고 싶으신지 하여 오늘은 오후 4시까지는 각자 휴식을 하거나 자유시간을 갖다가 저녁에 시부야에서 만나기로 했다. 스타벅스라도 가서 글을 쓸까, 호텔에서 쓸까 고민 좀 하다가 일단 호텔에서 키보드를 잡았다.




첫날은 신주쿠에 있는 숙소 체크인을 한 뒤 그 일대를 구경했다. 아빠가 처음에 인도한 곳은 신오쿠보 쪽의 코리안타운 쪽인데 우리는 왜 여기까지 와서 코리안 타운을 구경하냐며 처음부터 투덜거렸다. 신오쿠보 쪽의 코리안타운은 여느 서울 번화가 뒷골목과 진배없었다. 이곳이 재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이후 한류 열풍으로 일본인들도 찾기 시작하면서라고 한다. 젊은 세대인 사촌동생과 나에게 외국에 가서 한국의 존재감 찾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일본에 처음 온 것이 1995년이라는 아빠는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외국에서 이렇게 화려한 한국의 존재가 드러나있는 것이 놀랍고 감동스러운 것일지도. 나만 해도 10년 전과 현재의 차이를 실감하는데.


중국에서 거의 남겨온 위안화를 일본에 그대로 가져와 엔화로 환전했다. 중국 지폐 중 가장 큰 액수는 100위안, 우리 돈으로 2만 원이 채 안 된다. 일본 엔화 지폐의 가장 큰 액수는 10,000엔으로 원화로 하면 10만 원 정도. 그러니까 5배 정도가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한국 원화는 5만 원이 가장 큰 지폐니 역시나 딱 중간이군. 아무튼 위원화를 전부 엔화로 환전을 하니 두둑했던 지갑이 1/5로 쏙 줄었다. 물론 수수료가 있긴 하지만 그것 치고도 돈이 줄어든 것 같다.


우리가 잡은 숙소는 아는 사람은 알 것인 ‘토요코인’이다. 아빠가 매번 사용하신다는 호텔로 일본 전역을 비롯해 우리나라, 필리핀, 몽골, 독일, 프랑스에까지 지점이 있는 일본식 호텔이다. 저렴하고 작고 기본에 충실한 호텔이라고까지는 생각하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지난겨울 후쿠오카에서 묵었던 좀 더 비쌌던 호텔들보다 더 넓고 쾌적했으며 정말 곰팡이 한 점 없는 깔끔함에 놀랐다. 이런 동일한 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든 기대할 수 있다니. 정말이지 안 묵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묵어본 사람은 계속 묵게 될 것 같은 호텔이었다. 좀처럼 모험을 싫어하고 안정을 추구한다는 일본인들의 성향에도 아주 딱이겠거니 싶었다. 그러니 유명한 호텔 예약 플랫폼에는 잘 등록되어있지 않고 주로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게 되는데 이미 단골이 많으니 여기저기 홍보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신주쿠 토요코인 호텔과 주변 거리


아빠가 디즈니랜드는 전에 다녀왔고 (10년 전이었기는 하지만) 디즈니씨는 전 세계에 도쿄에 밖에 없으며 또한 성인들에게는 디즈니랜드보다 디즈니씨가 더 맞다는 말도 있어 이번에 우리는 디즈니씨에 다녀왔다. 사실 나는 그런 놀이공원이나 테마파크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루종일 긴 고통과 짧은 쾌락을 반복하며 맛없고 비싼 밥을 사 먹으며 밖에서는 천 원에 팔아도 안 살 것 같은 2만 원짜리 머리띠를 사서 쓰고 즐거워하는 곳. ‘이런데 와서는 원래~’라는 말로 모든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심지어 나조차 그런 행태를 부추기는 데에 일조했다.


나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더 어릴 땐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모두가 즐거워할 때 순수하게 함께 즐거워하는 사람이 항상 되고 싶었다. 지금은 포기하고 받아들였지만.


그러면서도 디즈니씨에서 하루종일 아주 알차게 개장부터 폐장까지 최대한 모든 걸 해보고자 했으며, 그 결과 이후 며칠간의 허리 통증을 얻었다.


그래도 좋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 말하듯 원래 (자칭) 작가의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쓸 게 없고, 뭐든 대실패를 하게 된다면 글로 쓰면 되기 때문이다.


짧은 쾌락을 위한 긴 고통의 시간


맛 없고 비싼 밥, 지금은 처치곤란의 2만원짜리 머리띠 / 반올림해서 서른살 딸과 예순 아버지의 디즈니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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