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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May 01. 2024

자기가 삶의 주인이라는 가스라이팅

생산적 규율 권력은 현재 사회형태의 지배 권력 유형을 이루며, 앞선 두 권력 형태(억압적 권력, 규범적 통합 권력)처럼 일탈하는 것을 제거하거나 감금하지 않으며, 배제와 규범적 재통합을 통해 일탈자를 개조하는 것에만 의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권력 유형은 개인을 내적으로 관통하고 있다. 1920년대와 1970년대 학교 개혁 시대를 계기로 낡은 학습 학교와 주입식 학교는 새롭고 보다 유연한 교수 및 학교 문화로 대체되었고, 이로 인하여 학습자의 자기 활동이 강조되었으나, 이것은 궁극적으로 판옵티콘적 권력 원리의 완성과 관련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권력 원리는 더 이상 외부로 영향을 미치기보다, 자기 기술로서 내부로부터 발전되기 때문이다. 


규율사회는 ‘뭔가를 해서는 안 된다(당위의 부정성)’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였다면, 성과 사회는 ‘무한정할 수 있다(능력의 긍정성)’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다. 규율사회가 부정성의 사회라면 성과사회는 긍정성의 사회로서, 그 긍정성이 과잉된 결과 소진과 우울증 같은 것이 나타난다. 그것은 성과사회의 주체가 “스스로 착취”하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에서는 “당신이 곧 경영자”라고 이름하면서 마치 모두가 각자 삶의 주인인 것처럼 주문을 외지만, 사실은 바로 그것이 더욱 효율적인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이다.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에는 세 개의 축이 있는데, 그 첫째는 시중에 넘쳐나는 자기 계발 담론이 생산하는 자아상에 관한 지식을 활용하여 자기 자신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대상으로 변모시킨다는 점이다. 즉 자신을 객체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둘째는 성공, 성장, 향상을 결과적으로 이끌 수 있는 다양하고 세부적인 테크놀로지가 있다는 점이고, 그 셋째는 자기 계발 활동의 목표, 지향점은 개인이 속한 정치, 사회, 문화 체제가 제공한다는 점이다. 개인이 그 지향점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서동진, 2012: 280-282; 목영해, 2020에서 재인용).


<참고문헌>

강수돌(2012). 성과사회, 자기 착취, 그리고 피로사회: 한병철, [피로사회], 문학과지성사, 2012. 뉴 래디컬 리뷰, (52), 275-283.

목영해(2020). 자기주도학습 개념과 신자유주의. 교육사상연구, 34(2), 25-41.

서동진(2012). 자유의 의지 자기 계발의 의지. 서울: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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