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육과정학사를 정리하며
Bruner, J. S.(2005)는 그의 저서 『교육의 과정』에서 “우리는 미국 사람, 즉 복잡한 세계 안에서 독특한 사고방식과 필요를 가지고 있는 미국 사람을 위한 교육과정을 구상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한국 사람을 위한 교육과정은 어떻게 구상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1950년 전후로 『새교육 이론』(성래운, 1949), 『커리큘럼 강좌』(김성태, 1952) 등의 조서를 통해 미국의 교육과정이론을 도입하고 전파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정범모(1956)의 『교육과정』은 그가 그의 은사 R. Tayler의 『교육과정과 수업의 기본 원리(Basic Principles of Curriculum and Instruction』(1949)를 바탕으로 하여 저술한 책으로, 우리나라 교육과정학사의 가장 괄목할만한 일이자 우리나라 교육과정학을 Tyler의 교육학으로 만든 시발점이 되었다(허숙, 2002).
후에 이홍우(1973)는 J. S. Bruner의 『교육의 과정(The Process of Education』(1960)을 번역하여 출판한다. 1970년대 한국교육개발원이 설립되고, 여러 대학에 교육학과가 설치되면서 대학원에도 교육과정 전공이 개설되기 시작한다. 학술지 <교육과정연구>도 1974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하였다(허숙, 2002).
1980년대에도 많은 교육과정학자들이 미국 유학에 가서 미국의 교육과정학을 수입해 온다. 이 시기 미국에서 유행한 신마르크주의에 입각한 비판이론이 많이 도입되고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과도 맞물려 여러 담론들이 양산되게 된다.
1990년대에 들어서 한국의 교육과정학자들은 교육과정학의 역사를 정리하고 학문적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게 된다. 특히 1999년 한국교육과정학회에서 ‘교육과정학의 성격과 과제’라는 주제의 학술발표회가 개최되면서(강수천, 2004) 관련 연구들이 등장하게 된다, 교육과정학이 1950~60년대 배아기를 넘어 1970년대 형성기, 1980년대 확장기를 거쳤다고 보기도 하지만(허숙, 2002) 여전히 우리나라에서의 교육과정학의 발달은 유아기 수준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김종건, 1999). 같은 해에 학회의 이름이 ‘교육과정 연구회’에서 ‘교육과정학회’로 개칭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과정학 연구는 외국 이론의 도입과 전파 단계에서 시작하여 점차 독자적인 연구의 단계로 발전되는 경향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평가하는 학자도 있지만, 정말 그러한가? ‘교육과정’ 연구가 아닌 ‘교육과정학’ 연구가 과연 그러한가? 최근 교육과정학의 연구 지형을 알아보고자 하는 연구들 또한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박민정, 성열관, 2011; 김대영, 고민정, 2021; 김대영, 이재숙, 고민정, 2022), 아직까지 학문적 지형을 명확하게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학 연구의 방법론, 핵심 개념, 연구 주제와 대상의 불일치 문제는 우리나라에 본 학문 분야가 도입되고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초래될 수밖에 없었던 문제라는 평가(윤병희, 2002)는 미국의 교육과정학사를 함께 살펴보았을 때 결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는 미국 교육과정학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 일이며, 다만 우리나라에서 동일한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미국의 교육과정학계의 동향을 우리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근대화·서구화·세계화 시대에 우리나라만의 이론이나 학문을 갖는 일이 필요한 것일까? ‘아리랑’이라는 민요를 영어 버전으로 들어보면 무언가 어색하고 본래의 맛이 살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최근에 만들어진 K-pop의 영어 버전이나 일본어 버전, 중국어 버전을 들어봐도 어색한가? 물론 아무리 최신의 대중음악이라 할지라도 각 나라만의 특성이 묻어있게 마련이기는 하지만, 자유자재로 차용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론이란 현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으로서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의 지속적인 확인과 검증을 통해 형성되며, 실제 현상을 기술(describe), 설명(explain), 예측(predict)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복잡한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하고, 명쾌하게 진단하며,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있게 하는 기능을 갖는다(신현석, 2017). 이렇게 볼 때, 더 유용하고 좋은 이론일수록 더 많은 현상에 적용될 수 있고, 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국가 교육과정인 2022 개정 교육과정은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주목하던 ‘개념기반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은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개념기반 교육과정을 표방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이를 잘 적용하기보다는 ‘내용 요소’를 반복적으로 나열하고 있거나 실행 측면에서 구체적 지침을 제시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기는 하다(김은영, 2023). 그러나 이것이 개념기반 교육과정이 외국의 것이라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개념기반 교육과정에 대한 우리나라 교육과정학자들의 깊이 있는 탐구와, 이에 대한 학문적 언어를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개발 및 실행의 현황에 맞게 해석해 놓는 일이 미흡했다고 할 수 있겠다.
교육과정학의 미래는 더 이상 학문의 토착화에 집착할 필요도 없으며, 오히려 우리가 새로운 교육과정학 이론을 만들어내고자 한다면 그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든 적용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교육과정학의 학문적 성숙을 위해서는. 특정 학문적 전통이나 인식론을 고수하려는 낭민적 정초주의와, 한 시대의 주류를 이루는 유행 사조를 무비판적으로 표방하고자 하는 입장을 모두 지양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대영, 고민정(2021). 주제어 네트워크 분석을 통한 2010년대 『교육과정연구』의 동향 분석. 교육방법연구, 33(2), 271-292.
김대영, 이재숙, 고민정(2022).「교육과정연구」의 공저네트워크 분석. 교육과정연구, 40(2), 51-72. 10.15708/KSCS.40.2.3
김수천(2004). 교육과정학의 성격: 주요 문제와 탐구방법. 교육과정연구, 22(2), 1-27.
김은영(2023). 개념기반으로 설계된 교육과정 분석.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종건(1999). 교육과정학의 역사. 교육과정연구, 17(2), 379-392.
박민정, 성열관(2011). 교육과정 연구의 최근 동향 분석: 2000년 이후를 중심으로. 교육과정연구, 29(4), 25-46.
신현석. (2017). 한국 교육행정학의 정체성: 이론 탐색의 의의와 지향성. 교육행정학연구, 35(1), 195-232.
윤병희(2002). 교육과정학의 학문적 이론 수립의 현황과 발전좌표. 한국교육학회 학술대회논문집, (27), 169-206.
허숙(2002). 교육과정학 탐구의 성찰-역사와 전망. 교육과정연구, 20(3),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