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디자인 페스티벌

3 days of design

by 전혜윰

온 도시가 시끌벅적했다. 골목 사이에 거대한 플랜카드가 걸려있었다.


'3 days of design'


매년 초여름, 코펜하겐에서는 3일 동안 디자인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덴마크인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나는 축제 현장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서 기획했던 전시나 컨퍼런스와는 다르게 도시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행사장이었고 업체들은 쇼룸이나 팝업 형태로 참가했다. 각 브랜드에서는 이 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공간을 단장하고 이벤트를 준비한다. 3daysofdesign 이라는 어플에는 축제 참가사들과 프로그램들을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었다.

시끌벅적한 축제 당일,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미리 다운로드해놓은 3daysofdesign 어플을 켰다. 미리 시간 알림 설정까지 해둔 하버 다이빙 프로그램이 곧 시작된다는 알림이 울렸다.




한달살이동안 수영을 다니고 싶다고 말한 나에게 A는 고개를 저었다.


"바로 앞 하버에서 마음껏 물놀이할 수 있는데 뭐 하러 돈까지 주고 수영장을 다녀요?"


"하버에 그런 곳이 있어요?"


"네, 덴마크 사람들은 특히 여름이 되면 바다 수영을 즐기거나 하버에서 물놀이를 즐겨요!"


한강처럼 보이는 강에서 수영이라니, 신기했다. 알고 보니 정화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하버가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다고 한다. 심지어 숙소에서 3분 정도만 걸어 나가면 물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하지만 비키니만 입고 오후의 나른한 햇살을 쬐는 사람들, 하버 위에 둥둥 떠서 이야기하는 사람들, 얼마나 깊은지 가늠도 되지 않는 그곳에서 웃으며 다이빙하는 사람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을 마주하고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꼭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왠지 모르게 두려움이 앞섰다.




자유로이 물 위에서 유영하는 그들을 구경만 하다가 숙소로 발걸음을 돌리기 일쑤였던 나날들에, 한 줄기 빛처럼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하버 다이빙 프로그램은 모든 용기를 끌어내어서라도 참가하고 싶었다.


Morning Dip 이름의 다이빙 프로그램은 Umage라는 가구 브랜드에서 개최한 것으로 이른 아침 진행되었다. 오랫동안 회사 직원들이 그들의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으로 하버 다이빙을 해왔다고 한다.


과거, 직장인이던 시절을 떠올렸을 때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서둘러 숙소를 나선 후 자전거에 올라탔다. 매일 해가 쨍쨍하더니 그날따라 구름이 가득 낀 흐린 하늘과 거센 바람 때문에 추웠다. 이렇게 추운데, 내가 다이빙을 할 수 있을까? 의문만 가득한 채 다이빙 포인트에 도착했다.



'아, 뭔가 잘못됐다.'


동양인 여자는 나 한 명이었고 누가 봐도 외향적인 사람들 천지였다. 멀찍이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친절하게도 직원분들이 다가와 쭈뼛거리는 나에게 다이빙 후에 사용할 수건을 건네고 대기 장소를 알려주었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아득해져 갔고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날씨 핑계라도 대고 도망가고 싶었는데 야속하게 날은 점점 좋아졌다. 애꿎은 수건만 만지작 거리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 나는 제임스야. 여기 직원인데 참가해 줘서 고마워! 혹시 여기 살고 있니?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어?"


"안녕! 반가워. 나는 한국에서 온 신디야. 여행하러 왔어! 한 달 동안 머물면서 덴마크 사람들처럼 생활해보고 싶은데 하버에서 수영하고 노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다이빙을 경험하고 싶어서 왔어!"


"와, 정말 멋지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출근 전에 다이빙을 하며 정신을 깨우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어! 너에게도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그런데, 하버 물이 정말 깨끗해?"


"그럼! 정부에서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수영해도 돼!"


프로그램의 운영자였던 제임스는 나의 불안을 진정시켜 주었고 덕분에 참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모두 다이빙하러 이동하자!"

저마다 자리를 잡고 탈의를 한 후 마치 일상인 듯 서로 이야기를 하며 대기를 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3 2 1을 외치고 나면 다 같이 뛰면 된다고 안내해 주었다.


다 같이 뛰어내리면 된다는 말에 심장이 아주 빠르게 뛰었다.

'이렇게 갑자기 들어간다고?'

'차가운 물에 들어가기 전에 심장에 먼저 물을 묻혀야 하는데?'

'너무 차가워서 몸이 얼어버리면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3, 2, 1'


풍덩거리며 족히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한꺼번에 뛰어내렸다. 쭈뼛거리다가 타이밍을 놓친 나는 내 옆에서 준비 운동을 하던 파란 눈의 외국인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혹시 하버 물은 안 차가워?"


그는 걱정 말라는 듯 웃으며 별로 차갑지 않을 거라 이야기해 주었다.

후발 주자들과 뛰어내리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밑에서 먼저 뛴 선배님들이 응원을 해주셨다. 덜덜 떨던 나는 그 응원소리에 '나는 할 수 있다'를 속으로 외치며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렸다. 사람의 체온과도 비슷한 온도였고 거대한 젤리가 나를 감싼 것처럼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느낌이 좋아서 잠시 두려움을 잊은 것과 동시에 콧구멍에 들이차는 물에 숨이 턱 막혔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없길래 나도 물속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자꾸만 가라앉는 몸을 원망하며 열심히 발차기를 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깊이에 서둘러 물 밖으로 도망 나왔다.


나에게만 보이지 않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듯 모두가 여유롭게 넘실거렸다. 숨을 헉헉 들이쉬며 웃고 있는 그들을 보았다. 나만 다른 세상에 동떨어진 기분이었다.


"괜찮니?"


아까 물이 차갑지 않다고 해준 사람이었다.


"응, 괜찮아. 그런데 다들 평화로워 보이더라. 나는 오늘 다이빙을 처음 해봤는데 물이 엄청 깊어 보여서 무섭더라고."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곳에서 놀고 자라서 그런지 익숙해. 다이빙이 처음이면 무서울 수 있겠다."


"어? 너 덴마크 사람이야?"


그는 제이콥이고 코펜하겐에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는 나에게 자신의 동생이 서울에서 3년 정도 살아서 한국말도 잘한다고 소개해주겠다며 연락처를 물어봤다. 연락처를 건네고 넌지시 물었다.


"나는 사실 20살에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자료를 보고 궁금해서 왔어. 물론 지금은 1위가 아니지만 그래도 항상 3위 안에는 있더라고. 나는 행복이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거든. 사람들을 만나 물어보고 싶더라고."


"흠 맞아. 나도 덴마크에 산다고 말하면 진짜 행복하냐고 물어보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


"너는 그럼 언제 행복하다고 느껴? 얼마나 자주 그런 감정을 느끼니?"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때 가장 행복해.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주말에는 근교로 놀러 가거든."

가족과 함께 할 때 가장 행복하다니. 내가 가족과 함께였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어린 시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고 친구들이 세상에 전부였던 10대 시절에는 공부한다고 짜증내기 일쑤였으며 정신없이 흘러간 20대에는 대학교와 직장을 다니느라 서로의 얼굴을 볼 시간도 없었다.


순간, 마음이 아팠다.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음에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한동안 멍하니 하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곁에 부모님과 나의 동생들이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게 감사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울렁거림이었다. 어쩌면 내가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는 소중한 것들을 모르고 지나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웃으며 반겨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족은 공기처럼 늘 곁에 있기에 사라졌을 때에나 소중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동안 받은 과분한 사랑을 열심히 돌려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뒤에서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눈길을 돌렸다. 행사 기간에 무료로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 아이스크림 트럭이 왔다.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받아 들고 다시 하버 앞에 앉아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오늘도 잘 잤냐고 묻는 엄마의 인사에 찡했다. 엄마와 한참을 수다 떨고 있는데 알람이 울렸다.


"안녕? 나는 캐스퍼야. 우리 형 제이콥을 만났다며? 형한테 이야기 전해 듣고 연락했어!"


또 다른 덴마크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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