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없인 힘든 우리들
길고 긴 시험이 끝났다.
이틀에 걸친 시험을 끝내고 오후 3시
드디어 밖으로 나왔을 때 따뜻한 햇살과 찬 공기는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머리가 좋지 않은 회사원이 공부를 하는 건 여간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더 공부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아침 4시에 일어나 깜깜한 새벽에 출근 후 9시 전까지 공부를 하고, 점심에도 도시락을 먹으며 공부했고 저녁에도 혼자 남아 9시까지 공부를 하고 돌아갔다. 침대에 쓰러져 눈을 감았고 스스로를 달래며 겨우 일어났다.
회사 동료들도 도대체 무얼 하기에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물었다.
항상 얼렁뚱땅 얼버무리며 넘어갔었는데 그 이유는 부끄러운 것도 있었지만
정말 '이유'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나는 개발자로서 사실상 국제공인재무사 자격증은 필요 없다.
굳이 왜 취득하려 했냐고 하면, 처음 입사할 때 막연히 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일상이 무료하고 시간도 한가했다. 그래서 그냥 취득하게 되었다.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끝이다.
분명 시험이 끝나기만 하면 하고 싶은 것들을 나열하고, 아무 고민 없이 흘러가는 숏츠를 보고 싶었다.
다시 아침에 운동도 하고 싶었고, 저녁에 러닝 후 이마트에 들려 먹을거리를 사서 오고도 싶었다.
나의 소중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빨리 다시 느끼고 싶어 시험이 끝나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시험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당산역 11번 출구 앞에 서서 방황했다.
쏟아지는 피곤함에 당장이라도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너무 긴 마라톤을 달린 탓에 갑자기 멈추는 건 어쩐지 적응되지 않았다.
이제 쉴 수 있음에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더 이상 달려야 할 목적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목적이 없어진 인간이 되어버린 나는 어떻게든 다시 목적물을 만들려 애썼다.
취미활동이라도, 어학공부라도 아님 영화를 보거나 쇼핑이라도 하며
그냥 흘러가지 않는 하루를 채워야 하는 압박에 사로잡혔다.
심지어 오늘은 쉬어야지 라며 '쉬는 활동'조차 계획의 범주에 넣곤 했다.
예기치 못하게 잠을 자버리거나 쇼츠를 보며 하루가 지나버리고 나면
그냥 오늘 하루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려 무언갈 놓치고 있다는 좋지 않은 느낌이 나를 괴롭혔다.
열심히 살다 보면 일상의 순간이 그립고,
일상의 순간을 즐기다 보면 이 소중한 시간을 열심히 보내지 않는 나에게
스스로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든다.
열심히 사는 것과 순간을 즐기는 것 그 중간의 균형이 참 어렵다.
그럼에도 시간은 지나가고
목표를 달성하고, 실패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크리스마스가 오고 새해가 밝는다.
목표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 걸까.
목표를 쫒는 삶을 살지 말라고 하지만 사실 우린 목표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성공한 기업가도, 행복한 백수도 방향이 다를 뿐
추구하는 삶이 그들의 '목표'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