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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선택의 기로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by RIZ

결혼 생활에 안착하고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물론 원한다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현재의 고민은 좀 더 근본적이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결혼을 결정할 때도 수많은 고민의 연속이었다. "정말 이 사람이 나의 마지막 사랑일까? 운명의 상대가 맞을까? 영원한 나의 동반자인가?" 다행히 지금 나는 남편과 함께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때 왜 그렇게 깊이 고민했을까 싶다. 결혼이란 결국 하나의 큰 행사에 불과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이는 다르지 않은가?


아이의 존재는 단순한 사건이나 행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뭐랄까. 마치 '제2의 인생'이자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나의 선택으로 세상에 태어날 존재가 생긴다는 것, 누군가에게 유일한 ‘엄마’라는 존재가 된다는 것.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책임감이 따르는 중대한 일이다.



물론 우리 둘을 닮은 아이가 생긴다면 신기하고 이쁠 것이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겪어보지 못한 행복이야.라는 선배의 말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행복이고 어디까지나 내 기준일 뿐이다. 정작 그 아이는 행복할 수 있을까?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최소한 20년 동안 아이에게 안정적인 삶과 인생을 줄 수 있을까?



전형적인 '모성애로 헌신하는 엄마'가 아닌, 아직 20대의 열정과 꿈을 간직하고 있는 내가 어떤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가끔 회사도 그만두고 싶고, 유학을 가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을 여행하며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는 엄마로서 말이다.


혹시라도 아이를 선택한 삶이 후회스럽다면, 그 후회를 혹시 아이에게 투영하지는 않을까? 그 선택이 비록 나의 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탓하는 일이 생기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노산이라고 한다.

모든 기술이 발달했는데 왜 노화를 늦추는 기술은 발달하지 못했을까.

그래서 나의 고민은 더 조급해진다.


노산이라는 시간의 제한과 앞으로의 선택이라는 갈림길 앞에서, 오늘도 많은 고민을 안고 있는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아직도 나의 삶과 아이와 함께하는 삶 그리고 나의 행복과 아이의 행복 둘 사이 가치를 재는 저울에서 답을 확인하지 못했다.


미래의 아이를 만약 만나볼 수 있다면 동의를 구하고 싶다.



나는 조금 다른 엄마일 텐데 괜찮을지.

매번 데리러 갈 수도 없고, 원하는 것을 다 이뤄주지도 못할 수 있고

이기적인 행동을 할 때도, 스트레스에 화를 낼 때도 있을 텐데.


이런 나를 '엄마'로 맞아줄 수 있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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