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노란 꽃 24화

풀밭

by 문창승

황홀하게 눈부신 꽃밭 찾으려

사방을 헤매다 도착한 풀밭

기대하던 빨강도 하양도 없는

초록뿐인 황량함에 풀이 죽는다


어딘가에 숨어 있겠다는 마음으로

온 풀밭을 뒤지고 뒤져도

들꽃 한 송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풀, 풀, 풀뿐이다


시무룩한 기분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은 주변엔, 역시나 풀

짧고 가느다란 풀, 끝이 뭉툭한 풀

뾰족하게 긴 풀, 손처럼 갈라진 풀


시야에 가득 흘러 들어오는 다양(多樣)

슬며시 고개 들어 올리니

거친 숨이 가로막던 풀 내음의 마법이

코끝에서부터 뭉클하게 스며든다


저 멀리 능선이 때맞춰 준비한 서풍(西風)

제각기 흔들리는 수만 개 풀잎들은

저마다의 반짝임으로 초록빛 은하수를 그린다

눈부시게 황홀한 녹색의 프리즘


채비를 위해 다시 몸을 일으킨다

연이은 방랑의 준비는 아니다

이 풀밭, 이 드넓은 신비의 곳곳 거닐

진득한 여정을 시작할 뿐이다

keyword
이전 23화법학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