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호랑이

by 카푸치노
매우 강해 보여도 실제로는 무서워할 것이 없소. 말하자면 종이 호랑이오. 호랑이처럼 생겼어도 종이로 만들어서 비바람을 견딜 수가 없소(마오쩌둥).


종이호랑이는 호랑이처럼 위협적으로 보여도 실제로는 위협적이지 않은 대상을 뜻한다. 마오쩌둥이 1956년 미국을 대상으로 이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많은 두려움들도 사실은 이런 종이호랑이가 아닐까.


입사 후 3년쯤 되었을 때 처음 일하던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처음 부서에서는 석사 출신인 나는 나름 고학력자로 통했다. 그러나, 내가 옮겨가게 된 부서는 해외 및 국내 유수 대학의 박사들이 즐비한 나름 회사의 핵심 부서였다. 특히 부서 내의 세미나 시간이 공포의 대상이었다. 학벌이 쟁쟁한 사람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내는 통에 발표자가 진땀을 흘리기로 유명했다. 부서를 옮기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두려움이 앞섰다.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부서를 옮기고 몇 달이 지나서 나는 내가 종이호랑이 때문에 겁을 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쓸데없이 기죽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외에도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기 전에, 처음으로 해외 학회 발표를 앞두고, 처음 특허 작성을 앞두고도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잘 해내는 모습을 보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 없어했고 겁을 먹곤 했다. 그러나, 한 가지씩 경험이 쌓이며 나는 새로운 경험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이 들 때마다 종이호랑이를 생각한다. 내가 두렵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내가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는 종이호랑이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하곤 한다.


무슨 일이든 겪기 직전의 두려움이 가장 큰 법이다. 놀이 기구를 탈 때도 직하 전이 가장 두렵다. 막상 타고나면 별것 아닌데도 말이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고 겁이 날 때는 종이호랑이를 떠올려보자. 지나 놓고 보면 '그래 별거 아니었어.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고.'라고 말할 수 있을게다.


지금 내게는 책을 한 권 내는 일이 그렇다. 과연 내가 책을 써서 출판할 날이 있을 수 있을지 너무 요원하고 대단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언제가 책을 내는 일도 결국은 종이호랑이였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심호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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