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엎질러 놓은 리듬으로 세상은 출렁이고
중력을 거스르는 몸짓은 춤의 기원
몸을 붓 삼아 쓴 언어로 비상은 가능한가
허공에서 홀로 추는 설운 어깨춤
시인이 되려는 자들의 딱함이나 철없음.
시인의 고독 같은 것을 생각할 때가 있다.
대한민국에 시인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기현상을 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동인은,
시가 짧기 때문이다.
짧은 글은 어찌어찌하다 보면 잘 쓸 수 있을 것이고, 어딘가에 당선되어 등단(?)하면 시인 행세를 할 수 있다는 착각이,
자칭 시인들로 넘쳐나는 세상을 만든다.
나는 이런 현상이 매우 싫었다. 이런 흐름을 읽고 이용하는 비루한 장사꾼들이 싫었고, 그 장사꾼들에게 기꺼이 이용당하는 자칭 시인들이 싫었다.
등단이라는 정체불명의 제도가 싫었고, 문학을 강의실에서 소수가 가르치고 집단적으로 배우는 행위가 싫었다.
이런 행위들은 전혀 문학적이지 않다. 창의성과 이전에 없던 낯섦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들의 행위는 전혀 창의적이지 않았고, 낯익었다. 상투 범벅이었다.
요즘은 이런 생각에 몰입하지 않는다. 이상한 대통령을 3년 겪으며 세상의 희한한 세태들을 일별 하다 보니, 어떤 방식이든 시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쨌든 글을 써보겠다는 것이 아닌가.
도박이나 술과 같은 순간의 쾌락을 즐기겠다는 것보다는 몇천 배는 좋은 현상이 아닌가. 멍하니 자신이 구독하는 유튜브를 통해 편향된 정보만을 섭취하여 미몽에 갇힌 자들과는 다른 통찰을 획득할 기회가 많아지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 기술자를 지향하는 자들의 이상한 행태와
문학을 통한 진정한 성찰을 추구한다는 말과 실제 행위 사이의 우주 만큼이나 큰 간격. 그리고 문학인들의 무기력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을 떠올리면 우울해진다.
나는 시인도 아니고 선각자는 더더욱 아니므로 내 상상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시인이 된다는 건 기꺼이 외로워지는 일이고
뉴턴의 사과가 사과나무에서 떨어질 때
중력을 거슬러 홀로 춤추는 일이 아닐까.
무엇보다 시,
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제출하여 첨삭지도를 받는 행위에서 추출되는 것이 아니라,
제 온몸으로 생을 간신히 밀고 나가다가 상처 입은 자가 흘린 핏자국이 아닐까.
홀로 상상해 본다.
그런 것이기를 바라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