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상 특징: 백화체, 조선한자, 속담 등을 사용하여 사실적 표현을 함.
1. 넓은 들판이 넓게 탁 트여 있었다. 비록 개간은 하지 않았지만 군데군데 땔감을 해 가서 나무 조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풀밭에는 소 발자국과 수레바퀴 자국이 이리저리 나 있는 것을 보니 가까이에 책문柵門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이 근 방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수시로 이곳 책문 안을 마음대로 드나들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原野平濶, 雖不耕墾, 而處處砍柴根杮狼藉。 牛蹄轍跡, 縱橫艸間, 已知其近柵, 而居民之尋常出柵, 亦可驗矣。
2. 다급하게 말을 빨리 몰아 칠팔 리를 가니 책문 밖에 이르렀다. 산언덕에는 양과 돼지가 가득했고, 아침을 짓는 연기가 온 마을을 푸르게 휘감고 있다. 나무를 길게 쪼개어 목책木柵을 세워서 대충 경계선을 알아볼 수 있게 해 두고 있었다. 이른바 『시경詩經」에서 “버들가지를 꺾어 과일 밭에 울타리를 만든다.”라고 했던 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책문은 이엉으로 덮여 있고, 널빤지 쪽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책문에서 수십 보 떨어진 곳에 삼사三使(정사, 부사, 서장관)의 임시 천막을 치고 잠시 쉬는 사이에 방물이 다 도착하여 책문 바깥쪽 노지에 수북이 쌓였다.
疾驅行七八里, 抵柵外。 羊豕彌山, 朝烟繚靑, 刳木樹柵, 畧識經界。 可謂,折柳樊圃矣。 柵門覆以苫草, 板扉深鎖。 離柵數十步, 設三使幕次。少憩, 方物齊到, 露積柵外。
3. 책문 안쪽에는 한 무리의 되놈(만주족)들이 쭉 늘어서서 구경을 하고 있다. 입에 담뱃대를 물지 않은 자가 없었고, 모두 변발한 대머리에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어떤 자는 흑공단黑貢緞(검은색 고급 비단)으로 지은 윗도리를, 어떤 자는 수화주秀花紬(품질 좋은 비단)로 지은 윗도리를 입고 있었다. 또 어떤 자는 생포生布(잿물에 삶지 않은 생베) 윗도리를, 어떤 자는 생저生苧(잿물에 삶지 않은 생모시)로 지은 윗도리를 입고 있었다. 어떤 자는 삼승포三升布(성글고 굶은 삼베)윗도리를, 어떤 자는 야견사野繭絲(산누에 고치 실)로 지은 윗도리를 입고 있었다. 바지도 같은 옷감으로 만든 것을 입고 있었다. 허리에도 물건을 너저분하게 주렁주렁 달고 있었는데, 자수 주머니, 작은 패도佩刀 서넛 자루, 젓가락 한 쌍이 달려 있었다. 담배쌈지는 호로병처럼 생겼는데, 화조화花鳥畫(꽃과 새를 그린 그림)나 옛 문인들의 뛰어난 글귀로 수놓아져 있었다.
역관과 여러 마두들이 목책 밖에서 자리를 앞다투며, 되놈들과 서로 손을 잡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여러 되놈이 물었다.
“당신은 언제 한성에서 출발했소? 오늘 길에서 비는 만나지 않았소? 집안사람들은 모두 평안하시오? 포은包銀(은자)은 넉넉히 갖고 오셨소?”
사람마다 제각기 인사말을 건넸는데, 마치 한 입에서 나오는 말처럼 다 똑같은 대화들이었다. 그리고 다시 앞다투며 물었다.
“한 상공韓相公과 안 상공安相公도 오셨소?”
한 상공이니 안 상공이니 하는 이 두서너 사람들은 모두 의주 사람들인데, 해마다 연경으로 장사를 다녔다. 엄청나게 교활한 장사치들이었는데, 연경 사정에 관해서도 훤히 아는 자들이었다. '상공'이란 말은 장사꾼들끼리 서로를 높여 부르는 말이었다.
群胡觀光者列立柵內, 無不口含烟竹。 光頭搖扇, 或黑貢緞衣 或秀花紬衣, 或生布生苧, 或三升布, 或野繭絲。 袴亦如之。 所佩繽紛, 或繡囊, 三四小佩刀, 皆揷雙牙箸。 烟袋, 如胡盧樣, 或繡刺花草禽鳥, 又古人名句。 譯官及諸馬頭輩, 爭立柵外, 兩相握手。 殷勤勞問, 群胡問,「你在王京那日起程, 在途時得免天水麽。家裏都是太平麽。 充得包銀麽。」 人人酬酢如出一口, 又爭問 「韓相公安相公來麽。」 此數人者, 俱義州人, 歲歲販燕, 皆巨猾, 習知燕中事。所謂相公者, 商賈相尊之稱也。
[해설] 표현상 특징 1 백화체 사용
김명호 교수는 『열하일기』 속 백화체 표현이 단순한 사실 기록을 넘어, 연암 박지원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문학적 장치임을 강조한다. 필담, 지문, 대화에 구어와 백화체를 혼용함으로써 현장감과 소설성을 극대화했으며, 중국어뿐 아니라 조선어의 속어, 속담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문체 실험을 펼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백화체와 속담의 활용은 연암의 문학이 고문 중심의 문언체에 얽매이지 않고, 실생활의 언어를 문학적 표현의 중요한 자원으로 끌어들인 점에서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가능케 한다.
“당신은 언제 한성에서 출발했소? 오늘 길에서 비는 만나지 않았소? 집안사람들은 모두 평안하시오? 포은包銀(은자)은 넉넉히 갖고 오셨소?”
「你在王京那日起程, 在途時得免天水麽。家裏都是太平麽。 充得包銀麽。」
김명호 교수는 이 문장은 『노걸대』초두에 나오는 것과 유사하다고 한다.
大哥你從那裏來?我從高麗王京來.···你幾時離了王京?我這月初一日離了王京.
형님, 당신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나는 고려 서울에서 왔습니다. ···당신은 언제 서울을 떠났습니까? 나는 이달 초하루에 서울을 떠났습니다.
『열하일기』의 백화체 사용과 연암 박지원의 문학적 실험
1. 백화체 사용의 배경과 의의
『열하일기』에서 중국인과의 필담에 백화체가 등장한 것은 단순히 구어적 표현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결과일 뿐 아니라, 송대 이후의 주소어록체(註疏語錄體)의 영향도 작용한 것이다.
연암은 필담을 문언체로 고치지 않고 백화투를 그대로 살림으로써 현장의 생동감을 재현하려 했다.
대화뿐 아니라 지문(地文)에서도 백화체가 등장하는데, 이는 소설적인 문체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준다.
2. 구체적 예시: 소설적 구어체
예: “主人堆着笑臉道”(주인은 웃는 얼굴로 말한다), “余心裏暗忖道”(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등.
특히 「성경잡지」의 전당포 장면은 완연한 소설식 문체를 보여준다.
이는 연암이 단순한 구어 구사가 아니라, 소설 문체를 의도적으로 구사한 결과임을 시사한다.
3. 연암의 중국어 구사 능력
연암은 관화(官話)를 유창하게 구사하진 못했지만, 『수호전』 등의 명대 소설을 탐독함으로써 소설적 백화체에 익숙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어록체 표현이나 『노걸대』, 『박통사』에서 접할 수 있는 초보적인 문장과 달리, 『열하일기』에는 고급스러운 소설 어휘(예: 鴛鴦脚, 白喫, 殺威棒 등)가 다수 등장한다.
4. 조선식 한자어와 속담의 병치
연암은 중국어 대화에는 백화체를, 우리말 대화에는 조선식 한자어와 속담을 섞어 쓰며 사실성과 생동감을 더했다.
예: “使道”(사또), “伈伈”(심심하다), “入丈”(장가들다) 등은 조선의 현실 언어를 반영하는 장치다.
5. 조선 속담 활용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다”, “웃는 낯에 침 뱉으랴” 등 당시 민간의 속담이 다수 등장하여 문체에 해학과 현실감을 더하고 있다.
이는 연암 문학의 일관된 특징으로, 고전의 문어보다 현실 언어가 진실한 묘사와 사상 전달에 더 유효하다는 진보적 문학관을 반영한다.
4. 사행을 갈 때는 정관正官(정식 관원)에게는 팔포八包(사신들이 비용으로 쓰려고 가져가는 은 또는 인삼)를 내리는 것이 관례였다. 정관이란 것은 비장과 역관 등을 합하여 모두 서른 명의 관원을 말하는 것이고, 팔포라는 것은 예전에 관에서 정관에게 인삼 몇 근씩을 내렸는데, 그것을 팔포라고 했다. 지금은 이것을 관에서 지급하지 않고 각자가 알아서 은자를 챙겨가게 했고, 단지 그 팔포(은자)의 수량만을 제한했다.
당상관堂上官(정삼품 이상 벼슬아치)은 삼천 냥, 당하관堂下官(정삼품 이하 벼슬아치)은 이천 냥까지 가져갈 수 있었는데, 이것을 연경으로 가져가서 다른 물건과 바꾸어 이익을 남겼다. 가난해서 은을 챙겨갈 수 없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할당된 팔포의 권리를 송도, 평양, 안주安州 등지의 상인들에게 팔았고, 연상燕商들은 그 포를 사서 그 양만큼 은을 챙겨갔다. 그러나 모든 지역의 연상들이 합법적으로 연경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팔포의 권리를 대부분 의주 상인에게 넘겼다. 한상공이나 임상공林相公 같은 장사꾼들은 해마다 연경에 드나들기 때문에 연경을 제집 앞마당처럼 여겼다. 그들은 연경 시장의 소매상인들과는 위와 창자가 맞붙어 있는 듯한 관계였다. 물건을 사고팔 때 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은 모두 그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조선에서 연경 물건의 값이 나날이 올라 놀라 자빠질 정도의 가격이 된 것도 확실히 이놈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온 나라가 이런 사실을 전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전적으로 역관들만 책망하고 있다.
역관들도 의주 상인에게 자신들의 실권을 빼앗기고 있었지만, 그저 팔짱만 끼고 있을 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른 지역의 연경 상인들도 비록 의주 상인이 하는 모든 농락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일을 제 눈으로 직접 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저 속으로 분을 삭일 뿐이지 무어라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지는 이미 오래된 일이었다. 요즘 의주 상인이 잠시 몸을 숨기고 서로 만나지도 않은 것도 또 누군가를 한 사람 낚아 보려는 술책이었다.
使行時, 例給正官八包。 正官者, 裨譯共三十員。 八包者, 舊時, 官給正官, 人人蔘幾斤, 謂之八包。 今不官給 令自備銀, 只限包數。 堂上包銀三千兩, 堂下二千兩。 自帶入燕, 貿易諸貨爲奇羡。 貧不能自帶, 則賣其包窠松都, 平壤, 安州等處, 燕商買其包窠 充銀以去。 然諸處燕商, 法不得身自入燕, 將包交付灣人, 貿易以來。 如韓林諸賈, 連歲入燕, 視燕如門庭, 與燕市裨販, 連膓互肚。 兌發低仰, 都在其手, 燕貨之日增厥價, 亶由此輩。 擧國都不理會, 專責譯官。 譯官失權於灣賈, 拱手而已。 諸處燕商, 雖知爲灣賈之所操縱, 而事非目覩, 則敢怒而不敢言。 其來已久, 今者灣賈之蹔爲隱身, 不卽相見, 亦一鉤引小數也。
5. 책문 밖에서 아침밥을 먹고 행장을 챙기는데, 행낭의 두 주머니 중에 왼쪽 주머니에 넣어둔 열쇠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온 풀밭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나는 장복을 꾸짖으며 말했다.
“너는 행장은 마음에도 두지 않고 수시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구경만 하더니, 이제 겨우 책문에 도착했을 뿐인데 벌써 흐리멍덩하게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겼구나. 속담에 '사흘 길 하루도 못 가서 가서 돌아선다.라고 하더니, 앞으로 이천 리를 더 가서 연경에 닿을 때 즈음이면 네놈의 오장까지도 잃어버릴까 염려스럽구나. 내가 들으니 구요동舊遼東과 동악묘東岳廟에는 평소에도 좀도둑이 출몰한다던데, 너는 또 한 눈 팔다가는 무엇을 잃어버리고도 알아채지 못하겠구나”라고 했다.
장복은 민망해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소인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두 곳에 가서 구경할 때는 제 두 손으로 두 눈알을 꼭 붙들고 있으렵니다. 그러면 어떤 놈들이 뽑아가겠습니까요?”
나도 모르게 한심한 생각이 들어서 생각을 하면서 “그래 자알 한다.”하고 대꾸를 해 주었다.
아마도 장복은 어린 나이에 처음 가는 연행 길인 데다가 성격까지도 아주 어리바리해서 동행하는 마두들이 자주 농담으로 그를 속였는데, 장복은 놀릴 때마다 그 말을 참말로 믿었다. 그는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먼 길을 이런 녀석에게 의지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朝飯於柵外, 整頓行裝, 則雙囊左鑰, 不知去處。 遍覔草中, 終未得。 責張福曰 「汝不存心行裝, 常常遊目, 纔及柵門, 已有閪失。 諺所謂,‘三日程一日未行’, 若復行二千里, 比至皇城, 還恐失爾五臟。吾聞, 舊遼東及東岳廟, 素號姦細人出沒處, 汝復賣眼, 又未知幾物見失。」 張福閔然搔首曰, 「小人已知之兩處觀光時。小人當雙手護眼, 誰能拔之。」 余不覺寒心, 乃應之曰, 「善哉,」 葢福也。 年少初行, 性又至迷, 同行馬頭輩, 多以戲語誑之, 則福也眞個信聽。 每事所認, 皆此類也。 遠途所仗, 可謂寒心。
[해설] 표현상 특징 2 우리 속담 사용
김명호 교수는 『열하일기」에는 조선 속담 역시 빈번히 등장한다고 지적하며
"예컨대,“三日程一日未行"(사흘길 하루도 아니 가서) “觀光但喫餠”(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다) “廣州生員初入京"(광주 생원의 첫 서울이라)“罡鐵去處秋亦為春"(강철이 간 데는 가을도 봄이라) “笑臉不唾”(웃는 낯에 침 뱉으랴)“曉夜行不及門”(밤새도록 가도 문 못 들기) “石人回頭”(돌부처도 돌아앉는다) “奪小兒染涕餠”(어린애 코 묻은 떡 뺏기) “踢矮痤頤”(난쟁이 턱 차기)“官豬腹痛”(관돌 배 앓기) 등과 같은 속담들은 조선식 한자어와 마찬가지로 우리말 대화 가운데에 섞여 토속어의 정취를 돋우는 구실을 할뿐더러, 때로는 적재적소에서 해학적인 효과를 고조시키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라고 한다.
이처럼 연암은 『열하일기』에서 백화체, 조선식 한자어, 속담 등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현장감 있고 사실적인 표현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는 구어체와 소설 문체를 능란하게 구사한 의도적 문학적 실험으로, 기존 문언체의 틀을 깨고 현실 언어를 생생하게 살린 진보적인 문학 태도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