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두려웠다.
과거를 들추는 것이.
추억상자에 담긴 편지들과 사진들을
언젠가 정리해야 하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그 시간이 와 버렸다.
이대로 태워 버리면 좋겠는데
좋았던 기억들도 섞여 있기에
아묻따 버릴 수 없는 노릇이다.
삶에서,
어떤 관문이나 중요한 거점을 지나가는
순간들이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고등학교 졸업이, 회사의 입사가, 결혼이 그런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이 또 그런 순간인 것 같다.
39살, 꽃 청춘이 지고 있다는 생각에
호르몬이 이상해지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싫든 좋든 들여다보기로 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삶의 정리라고 하자.
나는 처음부터 슬픈 사람은 아니었을 텐데
그 깊은 심해를 마주할 생각에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뱉는다.
들여다본 후에는
아픈 과거로 남지 않을 것이다.
용기를 내 상자를 열어
어린 나를 안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