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나는 아이를 낳으면 예쁜 것만 보여주고 좋은 것만 사용해서 애지중지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세상의 온갖 풍파에서도 내 아이만큼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나길. 치사하고 더러운 꼴은 내가 볼 테니 너는 꽃길만 걸었으면 하는 마음. 아마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러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남편을 만나고 육아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바뀌었다.
남편은 아이를 사랑을 다해 키우겠지만, 부모가 매번 아이의 문제에 개입할 수는 없으며, 아이 스스로 어려움도 직접 겪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헬리콥터 맘이나 싸커 맘이 될 생각은 나도 없었지만, 아이가 상처받는 모습을 볼 자신도 없었던 나는 처음에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회복 탄력성 resilience. 마음의 근성. 칠전팔기의 정신. 바닥을 찍어도 다시 올라올 수 있는 근육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 같다. 부모가 매 순간마다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고, 쓰러지지 않게 받혀주기만 한다면 절대 키울 수 없는 힘.
인생을 살면서 마냥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다. 이 단순한 진리를 나는 회피했던 것이다.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행복과 고난이 교차할 때 그 고난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남편은 아이에게 그런 회복탄력성과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 (소극적 수용력) 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남편은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자연과 밀접하게 생활하고 자연에서 치유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자연과 어울리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자연이라고는 인공 식물원 밖에 가보지 않은 나는 큰 감흥이 없었다. 남편의 고향에서 미대륙의 광활한 자연 풍경을 보기 전까지는.
시댁에서 보았던 대자연을 떠올리면 그때의 느낌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 압도적인 풍경에 사로잡힌 느낌,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실감 나게 하는 그 느낌, 그러고 나서 현실 사회로 돌아오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을 하찮은 고민들. 그렇게 나의 시야를 더욱 넓혀주는 경험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탐험하는 경험을 충분히 갖는다면 나중에 커서도 자연으로 돌아가기가 더욱 쉬울 것 같다. 숲 속에서 몇 시간이고 야생 길을 걷는 훈련, 그 속에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 동물들의 흔적을 관찰하고 꽃과 나무의 이름을 기억하는 마음. 어렸을 때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이 사진으로만 영상으로만 봤다면 전혀 상상도 못 했을 순간...
https://brunch.co.kr/magazine/kim30064789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