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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Oct 15. 2021

따상상 가즈아~

보카

인간은 본능적으로 좋은 정보는 축소하고 나쁜 정보는 과장되게 기억한다고 한다. 나쁜 정보는 생존과도 직접적인 영향이 있기 때문에 위험이나 사고에 대비할 수 있도록 더 강하게 기억에 남긴다. 그렇기에 어느 한 사람의 단점에 집중하는 것 보다 장점은 장점이라고 인정하고 단점에서도 강점을 찾아내서 양면을 고루 봐주면 좋겠다.


내게 없는 것만 집중하면 평생을 가도 만족하지 못한다. 내게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남편에게도 마찬가지, 남편이 이미 갖고 있는 장점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 좋게만 보면 남편은 장점이 정말 많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한가지 일에 집중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뚜렷하게 알고 그것만을 추구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의 취향과 선호도를 정해놓고 자신에게 최고의 것들로 대우하여 줄 줄 아는 사람


내가 남편에게 화만 내고 부정적인 말만 했다면 내 스스로를 남편에게 부정적인 사람으로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남편에게 예쁜 말만 한다면 내 스스로를 남편에게 예쁜 사람으로 내가 만드는 것이다.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면 부정적인 것만 보이고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면 긍정적인 것만 보인다. 예쁘다 예쁘다 해주면 진짜 예뻐지는 것처럼 잘한다 잘한다 해줘야 한 번이라도 더 잘 해주려는 마음이 생길 것.


단점보다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부정적인 평가보다는 긍정적인 표현으로 칭찬한다면 그렇다. 이런저런 장점과 특기를 살려서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해줬을 때 더욱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면, 얘는 이거만 빼면 다 좋은데 이런 식으로 단점에만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보다 상황은 똑같을지라도 장점을 극대화한다면 더욱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마음은 더 편할 것 같다.


그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놔두는 것. 그게 나에게는 얼마나 상식 밖이고 말도 안되게 느껴지고 한심해 보여도. 내가 남편을 무시하고 깎아내리면 나는 그만큼 못난 남자랑 살고 있는 거다.







남편의 장점에 집중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 바로 배우자 충족 예언 (Spouse-Fulfilling Prophecy). 지금의 남편이 너무나도 못나 보인다면, 내가 원하는 남편의 모습을 적어서 그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나에게 최면처럼 거는 것. 남편이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문장들을 외워서 매일 남편에게 표현하기.


내가 이 인간과 결혼을 결심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분명 좋은 사람이었기에 결혼했지 애초에 나쁜놈이었으면 결혼하지도 않았을 것이니까. 내가 집중하는 것은 증가하기 때문에, 내가 남편의 단점에만 집중하면 단점만 보여 그는 천하의 재활용도 안되는 쓰레기가 되고 장점에만 집중하면 이세상 최고의 남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굳이 부정적인 면을 언급하면서 남편에게 실패자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줄 필요는 없다. 남편이 상처받을 것이 분명한 말들을 내가 알면서도 내 입으로 내뱉는다면, 그것은 그냥 나 스스로를 남편에게 상처주는 사람으로 만들 뿐이다. 


남편에게 있어서 아내의 모습이란 꽃 같은 예쁜 말만 해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해주는 그런 긍정적인 모습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남편도 나에게 더 기대고 싶고 나에게 자꾸 오고 싶어할 것이다. 


모든 사건에는 양면이 있으니, 단점도 강점이 될 수 있고 장점도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좋은 면을 보기로 선택하자. 사람들은 누구나 칭찬받기를 원하지 잘잘못을 따져가며 비난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게 어느 누구의 시선에서는 상대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매우 불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겠다. 조금만 시각을 다르게 보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고마워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어쩌면 상대의 성의를 제대로 받지 못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일부러 거절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 만이 미덕이 아니라 그 순간에 상대의 호의에 감사를 표현하며 그 사람이 주고자하는 좋은 의도가 잘 전달되었다고 말씀드리는 것.


그리고 상대의 자존감을 세워준다고해서 나의 자존감이나 나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를 위해서 그가 행복하다면 그 정도는 기꺼이 해줄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남편이 우쭈쭈 받고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사랑스럽게 보인다면 그까짓 거 넓은 아량으로 열두번도 더 해줄 수도 있다 뭐 돈드는 것도 아니고.




예쁜 말의 위력 중 가장 대단한 사실은 바로 상한가가 없다. 미국주식이라 생각한다면 아주 잠깐의 시간 내에 끝없이, 제한없이, 한계없이 훨씬 더더더더더 좋아질 수도 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내가 오그라든다고 쑥쓰럽다고 표현을 자제하는 순간, 그 순간이 내가 경계를 쳐버리는 것이다. 손발이 오그리토그리가 되더라도 그 순간을 버티고 예쁜 말 한마디 더 해준다면 그 경계선를 넘어선다. 


마찬가지로 미운 말을 한다면 하한가도 없다. 미운 말 상처주는 말 단 한 마니 만으로도 우리 집을 찬바람 쌩쌩 부는 시베리아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어떤 말을 하는지는 나의 선택이다. 상한가를 칠지 하한가를 칠지, 따상상을 칠지 개미가 될지는 내 총알에 달렸다. 내 입에 달렸다. 내가 하는 말에 달렸다. 내가 하는 생각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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