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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Apr 20. 2022

초빼이의 노포일기 [들어가며]

나는 노포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IMF가 터졌던 98년 즈음,

서초동의 인터넷 무역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시작했던 내게,

노포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 곳은 한국이 아닌 중국의 천진의 오래된 만두집이었다.


입사 후 2~3개월 흐른 뒤, 몇몇의 사건을 해결한 포상으로 첫 해외 출장을 중국으로 갔었는데, 천진으로 가 처음 만났던 거래처 대표께서 한국에서 온 바이어에게 처음으로 식사를 대접해 준 곳이 바로 '천진 구부리'였던 것.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물음은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노포가 없을까'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하루 벌어 하루 정도는 먹고살만한 수준이 되어 시작한 소소한 취미생활은 소위 '맛집'을 찾아다니는 기행을 시작한 것. 그중에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가게들도 있었고, 나름 꽤 오랜 역사를 가진 가게들도 꽤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서 '아 우리에게도 소중한 오래된 가게들이 꽤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수 백여 곳의 가게를 돌아다니며 서서히 자리 잡은 '맛집 또는 노포'들에 대해 하나의 기준은 결코 이들이 번쩍이는 아이디어나 마케팅에 의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시간이라는 큰 흐름 위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태어난 그들의 성과가 '깊은 맛'과 '짙은 중독성'이라는 형태를 가지게 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무형의 자산이 되어 그들만의 독특한 경쟁력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런 경쟁력들이 대중의 기호를 만나 커다란 샐러드 보울 안에서 섞이게 되면 결국엔 '맛집'으로 소문나게 되고, 그 위에 다시 '시간'을 겹겹이 쌓아 '노포'라는 명예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점이 내가 아니 우리가 노포를, 노포라 불리는 가게를 사랑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또한 이런 과정들을 통해 조금씩 눈을 뜬 것은 썰물처럼 금새 문을 열었다가 밀물처럼 사라진지도 모르게 간판을 내려버리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수많은 요식업장들의 모습들과 겹치며 들게 되는 안타까움도 일부 생겼다.


게으른 성품이지만 조금씩 쌓아가고 싶은 글 뭉치들에서 평소 자주 찾았거나, 주위 분들에게 소개받아 일일이 찾아가 본 어래된 가게들을 모아 소개하고자 하고 그들이 그 자리를 지켜온 방식과 그들의 존재의 이유인 음식을 소개해 나가는 내용으로 채울 예정이다.


남들처럼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부지런하지도 않은 사람이라,

살아온 시간에 쌓은 경험의 높이보다 툭 튀어나온 배의 높이가 더 높은, 매일 병원 쇼핑을 하면서 이런저런 병을 달고 사는 아재의 끄적임을 모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미리 훌륭한 사진이나 문장의 유려함, 완벽한 문장들이 주는 만족감 등은 쉽게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초빼이 아재의 불필요한 친절함으로 미리 알려드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나를 아는 사람들이 무언가 정말 맛있는 걸 먹고 싶을 때, 좋은 술안주에 편안히 소주 한 잔 들이키고 싶을 때 소소하게 슬쩍 들춰보고 참고할 수 있는 그런 무언가를 남기면 좋겠다 하는 그런 작은 욕심도 슬그머니 내 본다.  


아, 그리고 첨언을 하면, 싸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라

외국을 갔을 때 많은 아쉬움을 느꼈던 것 중 하나가 '현지인들만 아는 로컬 맛집' 또는 '노포'를 찾는게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정된 정보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외국인들이 흔히 찾는 식당들은 관광객 대상의 식당이거나, 번화한 곳에 위치한 곳들이 대부분이라 남들이 다 아는 '정형화된 경험'을 강요하는 곳이 많다고 생각한다. 또한 론리 플래닛과 같은 곳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에디터의 취향에 극도로 의존하는 경향이 많거나, 가난한 여행자에겐 부담스러운 곳이 많아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진 곳도 많았다. 그래서 외국어를 잘 아는 누군가 이 모음집을 번역해서 외국인들이 볼 수 있게 제공하면 그들에게 또 다른 식도락의 기쁨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맛있는 고기를 대하는 진솔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다.(종로3가 한도삼겹살)


2021년 10월 20일

서문만 일주일을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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