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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Feb 21. 2024

제2관 인생보험 - 11

  "아이고 그래, 아드님 이름이 상현이였구만. 그래 상현아 그 뭐냐 나는 형님이랑 같은 회사 다니면서 몇 년 동안 같이 일했던 후배야. 이름은 오호순데, 그냥 호수 삼촌이라고 불러."

  대뜸 반말로 상현에게 친한 척을 하는 낯선 손님이 썩 탐탁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상현은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정중하게 물었다.

  "네, 호수 삼촌, 아버지랑 어떤 얘기들을 하고 계셨던 거예요?"

  "아이고, 우리 상현이가 눈치가 좀 있네. 아 뭐 별건 아니고 내가 저기, 형님 나가고 얼마 안 있다가 나도 회사를 나갔거든. 나도 사장 명함 달고 좀 거들먹거리면서 살고 싶어서. 그래서 그냥 다니던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을 하나 차렸지. 근데 이게 생각보다 잘 돼가지고 요새 좀 확장을 했어. 옆에 땅도 좀 사서 공장 짓고, 기계도 더 사고 말이야. 근데 이게, 하. 공장이 커지니까 막 그 설비니 뭐니 이런 게 관리가 안돼. 나는 그래봐야 회사 다닐 때 라인하나 맡아서 관리할 줄만 알았지 전체를 관리해 본 적이 없으니까 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그리고 사장이 그거 할 시간이 어딨겠어. 그래서 관리자를 하나 뽑아야 하나 싶은데, 이게 또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이 딱 중요한 시긴데 아무나 뽑기는 또 뭐 하고 그래서 어떡할까 하다가 혹시나 해서 형님한테 전화를 해봤더니 웬걸, 딱 지금 쉬고 있다는 거 아냐. 그래서 형님 좀 꼬셔서 데리구 갈라고 왔지."

  호수 삼촌의 너스레에 상현의 아버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 다리로는 못한다니까."

  "아, 형님 또 그런다. 내가 뭐 형님보고 기계를 돌리라 할까? 그냥 와서 애들 관리해 주고 업체 관리해 주고 뭐 그런 거 해달라는 거지. 실제 발로 뛸 애들은 다 있다니까?"

  "공장 관리라는 게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고. 관리자랍시고 지 사무실에 앉아서 이래라저래라 명령만 내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니까."

  "아, 그럼 내가 그 뭐냐 전동 휠체어 하나 사드릴게. 그럼 되잖아."

  "공장에서 퍽이나 휠체어가 잘 굴러가겠다. 바닥에 부품들도 널브러져 있고, 단차도 있고 그런데 거길 어떻게 휠체어로 돌아? 그리고 나는 당뇨까지 있어서 그런데 다니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클나. 상처가 아물질 않는다고. 지금도 봐 아들놈이 나 다칠까 봐, 쓰러질까 봐 어디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데."

  "그러니까, 아들이 형님한테 배워서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지."

  "헛소리 말어. 멀쩡히 직장 잘 다니는 애를 뭐 하러 그래."

  그때가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상현은 아버지와 호수 삼촌의 대화에 갑작스레 끼어들었다.

  "저 직장 관뒀어요."

  상현의 충격 고백에 상현의 아버지는 깜짝 놀라 상현을 쳐다보았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상현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아니 녀석아. 들어간 지 얼마나 됐다고 직장을 그만둬?"

  아버지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상현을 쳐다보았다. 

  "제가 설명드릴게요."




  상현의 설명에 아버지는 차마 상현을 혼내지는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아니, 녀석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걸…."

  "아 그 자식이 맞을 소릴 했네. 부모욕하면 처맞아도 싸지 암. 형님이 상현이는 제대로 키웠구만."

  "그렇다고 사람을 때리면 쓰나…. 에휴."

  상현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호수 삼촌은 오히려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잘됐네 그럼. 형님이 가르쳐주고 상현이가 우리 회사 와서 일하면 딱이네."

  상현도 절박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 괜찮지 않을까요?"

  하시만 아버지는 영 마뜩잖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가르쳐 줄 수야 있다만 그게 또 쉽지가 않어. 이게 말로만 그러는 거랑 실제로 보면서 배우고, 문제 생겼을 때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보고 그러는 게 다르거든. 집에서 백날 말해봐야 이게 실제로 할라 그러면 잘 안 될 거야. 아니 그리고 말로 가르친다고 될 거면 그냥 호수 너를 가르치는 게 낫지."

  상현은 아버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장 수입이 없는 상현으로썬 어떻게든 호수 삼촌의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호수 삼촌이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안 그래도 우리 경비도 새로 뽑거든? 거기에 형님이 들어오면 어때?"

  "무슨 경비?"

  "아 뭐 별건 없고 그냥 게이트 앞에서 손님 오고 그러면 전화해서 손님 맞는지 확인하고 차단기만 올려주면 되는 일인데, 이게 좀 야간에도 사람을 드려다 보니까 오후랑 야간에는 사람이 있는데, 오전 파트타임 경비를 아직 못 구했거든."

  상현의 아버지는 질색하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이 그걸 어떻게 하냐. 다리도 성치 않아가지고 힘들어 야."

  "아니 아니, 진짜로 형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다니까? 오전이라 순찰 돌 필요도 없고 그냥 입구 옆에 경비실에 앉아만 있으면 되는데? 딱 오전 4시간 하고 점심 먹고 교대한 다음에, 오후에는 상현이랑 같이 공장 돌면서 가르쳐주면 되잖아. 상현이가 형님 휠체어에 앉혀서 같이 다니면 형님도 상현이 잘 가르쳐 줄 수 있고, 다칠 위험도 없고 좋지 않아?"

  "아이 그래도 너무 민폐야 그건."

  "아니, 민폐가 아니지. 나는 형님 노하우가 필요하고 형님도 상현이랑 같이 둘이 벌면 살림이 더 나아지지 않겠어? 그리고 나도 형님 고용하면 딱인 게, 안 그래도 요새 나라에서 장애인 고용하라고 난린데 엄한 사람보다 형님이 와주면 나야 땡큐지. 형님 월급도 나라에서 보태준다니까? 완전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우리끼리 다 할 수 있어."

  호수 삼촌의 말에 상현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아빠, 호수 삼촌이 말한 거 되게 좋은 것 같은데, 같이 해봐요 우리. 안 그래도 나 지금 잘려서 당장 먹고살게 걱정인데 저렇게 되면 너무 좋지 않아요?"

  "그래, 상현이가 뭘 좀 아는구만. 그래 형님, 상현이 말 들어. 내가 섭섭지 않게 잘 챙겨드릴게. 오후에 상현이랑 돌아다니면서 하는 것도 내가 다 근무시간으로 쳐드릴게. 그러면 둘이서 넉넉하게 살 수 있지 않겠어? 그리고 막말로다가 지금 형님 상태 보면 상현이가 평생 뒷바라지해야 할 꼬락서닌데 애 부담도 좀 덜어줘야지. 형님이 이렇게 있으면 애가 형님이 눈에 밟혀서 뭐 결혼이나 하겠어?"

  "…"

  상현의 아버지는 묵묵히 호수 삼촌의 말을 들었고, 상현은 그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상현의 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말없이 상현을 쳐다보았다. 상현은 최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소리를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만 '제발'이라고 말했다. 그런 상현을 본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며 피식 웃고는 말했다.

  "나참, 그래 니들 말대로 한번 해보자."


  그렇게 상현과 상현의 아버지는 호수 삼촌의 회사에 취직을 했다. 공장 사람들이 혹여 어린 상현을 보고 텃세를 부리거나 무시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지만,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이기도 하고 호수 삼촌이 나이 많은 사람을 뽑는 걸 기피했기 때문에, 상현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간혹 상현보다 나이가 많고 경력이 있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런 사람들은 상현을 탐탁지 않게 보았으나, 상현의 아버지와 몇 번 얘기를 나눠보면 아버지의 경험과 노련함에 감탄하고는 상현에게도 호의적으로 변했다. 

  상현의 아버지는 적당히 먹고살만한 월급을 받았고, 상현은 꽤나 많은 월급을 받았다. 전 직장에서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았다. 상현은 자신이 아무 경력도 없이 이런 월급을 받아도 되냐 물었지만, 호수 삼촌은 그게 다 상현의 아버지 노하우에 대한 대가라며 암말 없이 받으라고 했다. 상현은 그러면 그 부분은 아버지께 드려달라 말했지만, 호수 삼촌은 그 돈을 상현에게 주나 상현의 아버지에게 주나 어차피 둘이 같이 쓰는 거라 누구에게 주든 상관없겠지만, 앞으로 상현이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 이직을 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지금 연봉을 많이 올려놓아야 그보다 많이 받고 이직을 할 수 있다는 말로 설득을 했다.

  상현은 호수 삼촌의 씀씀이에 마음속 깊이 고마워하며 이런 좋은 후배를 둔 아버지의 됨됨이에 감탄을 했다. 경력으로 칠 수도 없이 짧게 회사를 다닌 상현이었지만, 그럼에도 회사에서 맺은 인연이 회사 밖에서도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상현이 회사를 나왔을 때, 회사에서 알게 된 사람들 그 누구도 연락을 해오지는 않았었다. 상현은 살짝은 아쉬웠었으나, 이미 징계 위원회에서 사람들이 많이 변호를 해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을 담은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그들과의 인연은 마무리가 되었었다.


  그렇게 호수 삼촌의 회사를 다닌 지 반년쯤 지나, 상현의 업무 능력은 꽤나 많이 안정되었다. 상현이 막상 회사를 다녀보니, 여전히 호수 삼촌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초면부터 반말을 하는 무례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생각보다 꽤 사람들을 잘 챙겼고 사람들에게 신망도 두텁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덕분에 호수 삼촌이 사람들에게 상현을 예전에 도움을 많이 줬다던 선배의 아들이라고 좋게 소개를 한 것만으로도 사람들과 쉽사리 친해질 수 있었다. 

  그즈음 마음에 여유가 생긴 상현은 전에 계약한 인생 보험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보험 계약을 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으니 상현의 인생이 망했던 것은 분명해 보이나, 상현의 인생이 망했다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과연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했을지가 궁금했다. 상현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돈과 여자친구, 그리고 직장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한들 신의 대리인이라는 2호를 다시 만나서 물어보지 않는 한, 어디까지나 상현의 추측일 뿐이었다.

  또, 어떤 보상을 받은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아 보였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호수 삼촌이 찾아와 상현과 상현의 아버지를 채용한 것이 그 보상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게 보상이 맞다면, 전에 2호가 보험금 혹은 보상 지불 당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른 보상을 해준다고 했었으니, 상현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가장 필요했던 게 직장이었다는 말이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상현은 그 사실을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상현에게 직장은 어디까지나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 아버지를 부양하고 여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한 돈벌이 수단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상현의 머릿속에 떠오른 마지막 의문점은 자기 외의 계약자들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상현이 보기에 호수 삼촌의 공장에는 상현처럼 인생이 망했었다고 할만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 중 몇은 상현처럼 인생 보험에 가입할 조건을 만족했었을 것이고 거기에 가입해 보상을 받은 사람도 있을 법했다. 그래서 상현은 전체 회식자리에서 재미난 꿈을 꾸었다며 슬며시 인생 보험에 대한 얘기를 꺼내보았으나, 다들 재밌는 꿈이라고만 할 뿐, 본인이 실제로 겪은 일이라며 반응하거나 따로 상현에게 귀띔하는 사람은 없었다. 분명 2호가 말하길, 인생이 망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가 보험을 권유한다고 했는데, 그런 것 치고는 상현이 자기 외의 보험 가입자를 마주친 적이 없었으니, 그저 어떤 이유에서인지 계약자의 수가 꽤나 적은 게 아닌가 추측만 할 뿐이었다.

  상현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생각을 해보았지만, 도저히 이 의문점들을 해소할 수는 없었다. 다만 2호가 자신들은 그저 도움을 줄 뿐이고 이를 어떻게 쓸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고 했던걸 떠올리며, 다시 한번 얻은 이 기회를 허투루 날려버리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으로 상현의 생각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상현은 상현의 삶에 있어서 처음으로 깊은 안정감을 느끼고, 그로 인한 행복을 누리며 하루하루 힘차게 살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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