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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Apr 21. 2024

후기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작년 여름쯤이었습니다. 한 보험회사에서 보험과 관련된 에세이, 소설에 대한 공모전이 열렸었습니다. 소식을 너무 늦게 접해서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그 공모전 안내를 보면서 '보험과 관련된 에세이는 어렵지 않겠지만 소설은 대체 어떤 소설이 나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며 스스로 보험과 관련된 소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생각 끝에 나온 초안은 중세 판타지 세계관에서 보험을 파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번 소설에도 그 얘기를 넣어보려 했지만, 이미 소설은 현실에 판타지를 조금만 섞어 최대한 사실적인 이야기를 지향하고 있었기에, 중세 판타지 세계관이 들어와 버리면 급격하게 비현실적인 얘기로 기울어질 우려가 있어 이번 소설에서는 빼버렸습니다.

  소설의 전체적인 컨셉을 정한 다음 시놉시스를 구상하는 과정에서는 과연 보험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 끝에 보험이란 결국 위험 상황을 대비하여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랐고, 그렇다면 한 번뿐인 인생에도 보험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서 인생보험의 컨셉을 짜고 시놉시스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좋은 제도가 생긴다면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이 뒤따를 테니, 인생 보험을 통해 한몫 잡으려는 사기꾼의 이야기가 떠올랐고, '사람마다 인생의 가치는 다를 테니 사랑이 인생의 전부인 사람이 있지도 않을까 '해서 마지막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시놉시스가 완성된 후 소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써본 장편은 소설은 정말이지 쉽지가 않았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 내적으로 보면 이미 시놉시스는 다 짜놓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마음이 자꾸 급해져서 내용을 생략하려 하거나, 가끔은 정신 놓고 쓰다가 전개가 늘어져 지루해지려 하는 걸 막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완급조절이 능숙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나마 시놉시스를 짜놓은 덕분에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는 했지만 각자의 이야기는 사실 시놉시스와는 다르게 제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아무래도 쓰다가 보면, 시놉시스와는 다르게 극대화를 위해, 혹은 개연성의 강화를 위해 저도 모르게 다른 쪽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을 때가 많더군요. 

  소설 외적으로는 본업과 병행하는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여유가 있을 때는 꼬박꼬박 마감을 지켜가며 잘 써나갈 수 있었고, 세이브 원고까지 있었지만, 연재가 계속됨에 따라 세이브도 떨어지고 점점 마감을 지키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마지막에는 어떻게든 끝을 내야 한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겨우 다 써 내려간 것 같습니다. 100리를 가는 자는 90리를 중간으로 친다는 말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번 소설은 95리 정도가 중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지막 5%를 채워나가는 게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에세이나 단편 소설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기나긴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당초 목적은 장편 소설이기에 소설 전체의 흐름을 놓고 기승전결을 따지게 된다면, 부득이하게 중간중간 조금은 지루한 부분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연재를 따라와 주며 읽어주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 지루한 부분을 최소화하고 한 편 안에서도 기승전결을 유지하며 최대한 다음 편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쪽으로 쓰려 노력했습니다. 


  소재와 이를 담아내는 과정에 대한 것에서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마지막에 영혼의 1%가 출산율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중간중간에 복선들을 넣어놨지만, 주변 지인들이 모두 마지막 장에서 알아챈 걸 보면 아무래도 그 복선은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긴 합니다. 글을 쓰다 보니 작가의 입장에서는 복선을 너무 노골적으로 넣었다가 사람들이 미리 눈치채면 흥미가 떨어질 것이 우려되기에 최대한 숨겨가며 넣었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단편소설인 리노베이션에서도 복선을 너무 은근하게 넣어버린 바람에 마지막에 반전에 대해 직접 설명했어야 했기에 이번에는 조금 더 노골적으로 넣어보려 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노골적으로 넣어야 하나 봅니다.


  예전에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었습니다. '어차피 작가는 상상력을 통해 글을 쓰고 자료 조사만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가능한 것 아닌가'하는 마음에 귀담아듣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단편소설들과 장편소설을 써보니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료조사만으로는 사실 관계에 대하서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이야기의 진행이나 배경, 인물들의 모습이나 행동에 대해선 별로 참고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건 제 경험에서 우러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제 머릿속에 그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경험한, 또는 최소한 들은 것을 기반으로 상상해야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도 꽤 많은 부분이 제 머릿속에서는 모티브가 된 장소들이 존재합니다. 상현의 회사는 현재 제가 다니는 회사의 본사 모습을 상상하며 썼고, 편의점은 제가 다니던 학교 뒤 편의점을 상상했습니다. 상현이 거닐던 다리는 전에 살던 집 근처의 양화대교를, 명석의 회사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왔던 로펌의 모습을 참고로 상상한 것이며, 혜연이 선배를 기다리던 벤치와 데이트를 하던 도서관도 모두 제가 다니던 학교를 떠올리며 썼습니다. 결국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로 많이 부족했던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끝을 냈다는 사실에 조금은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잘 만든 작품이어도 끝을 맺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적어도 끝을 냈다는 점에서 중간에 내팽개친 그런 작품들보다는 나은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머릿속에는 벌써 다음에 쓸 이야기들이 둥둥 떠다닙니다. 아직까지 구체화하지는 못했거나, 장편보다는 단편으로 쓰면 좋을만한 내용들이기에 여러모로 머리를 굴리며 신중하게 고르고 있습니다. 본업을 소홀히 할 수는 없기에 아마 6월이나 7월쯤에 쓰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부족한 저의 첫 장편 소설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스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참 많았지만, 읽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독자분들과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주는 소중한 지인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늘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며 죽을 때는 누구나 혼자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럴 때마다 역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며, 곁에서 도움을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고마울 따름입니다. 

  지금까지 상현, 명석, 혜연의 얘기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평안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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