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굴로 들어간 앨리스
“뛰어! “
아침 7시 기차를 예매한 나와 친구들은 부랴부랴 뛰어갔다. 마치 해리포터가 호그와트로 가는 첫날 9와 3/4 승강장을 향해 뛰어가는 것처럼.
“세이프”
출발 직전 가까스로 기차를 탄다. 물 한 모금에 간신히 헉헉대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빠르게 자리를 찾아 앉는다. 나는 지금 런던에서 옥스퍼드로 가는 기차 안에 있다.
“앨리스 상점 가야 돼”
영문학 투어를 하고 싶었던 찐전공생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배경으로 하는 상점에 뭔가 특별한 게 팔 거 같아 설렘에 가득 차 있다.
기차가 런던에서 벗어나니 초록초록한 풍경들이 눈에 띈다. 딱 그 순간 Banners의 ‘Someone to you’가 귓가에 흘러나온다. 처음 듣는 노래 가삿말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I don’t wanna die and fade away
나는 그냥 사라지고 싶지 않아
I just wanna be someone
나는 무언가로 남고 싶어
Dive and disappear without a trace”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진 않아
처음 가는 옥스퍼드에서 처음 듣는 노래 가사가 묘하게 어울린다. 이곳에서 무언가로 남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무언가를 남기고 올 것만 같다.
고풍스럽고 영화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건물들이 나를 반긴다. 여러 college로 이루어져 있는 옥스퍼드는 각 대학의 로고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연히 한 골동품 가게에 들어가게 된다. 토끼굴로 들어가는 앨리스처럼. 시간이 잠깐 멈춘 듯하다. 소품 하나하나가 감성적이고 오랜 시간이 묻어 있어서 비밀의 문을 통과해 다른 세계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앨리스 도장을 집는다. 대놓고 ’ 기념품 샵이에요’ 느낌이 나는 곳에서 사는 것보다 이런 로컬 한 곳에서 나만 살 거 같은 것들은 하나씩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앨리스 도장은 고민 끝에 결국 내 것이 되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앨리스 상점은 생각보다 작았다. 많은 것을 살 것이라고 기대했던 거에 비해 마음에 드는 게 별로 없어 스티커만 몇 장 샀다. 오히려 아까 간 골동품 가게가 진짜 옥스퍼드 느낌이었다.
내가 여행한 영국은 낭만과 판타지가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지하철 역에 그려진 셜록홈스의 한 장면, 영문학 아버지라 불리는 초서의 시, 그리고 여왕의 동상까지.
영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실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문학, 예술 그리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태도였다. 흔히들 현실을 살라는 말을 한다. 우리 삶에 낭만이 없었더라면 그 어떤 예술가도, 작가도 이 땅에 훌륭한 작품을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아까 들은 노래 가삿말을 빌러 나는 이날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Time disappears without a trace
시간은 흔적도 없이 흘러갈 테지만
(인간이 남기는 문명이라는 건 영원히 남을 테니
영혼이 깃든 내 작품도 오래도록 남았으면 좋겠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