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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3

by 홍재희 Hong Jaehee Mar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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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서 최초로 인식하게 된 순간이 언제였을까.

아마 여덟 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 동네 이웃집 아저씨가 위암으로 죽었다. 그날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골목을 돌아 돌아 그 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소복 입은 남자의 아내는 눈시울이 시뻘게져 있었고 그 주위로 사람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기억 속에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아주머니의 무릎 아래 곤히 잠들어 있었던 갓난아기와 네댓 살이 될까 한 개구쟁이 아들이 조문객들 사이로 신나게 뛰어다니던 모습. 골목에서 종종 애들끼리  놀 때 끼워주기도 했던 꼬맹이. 울고 있던 어른들 틈에 놀아달라고 떼쓰고 칭얼대며 아빠 어디 갔어?라고 묻던 그 아이.

당시 암으로 죽은 아저씨의 나이를 헤아려보니 아마 서른 언저리 삼십 대 후반 많아도 마흔 언저리였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 엄마는 내게 말했다. 그 젊은 나이에. 사람 좋은 호인이 아깝게 갔어. 남자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매일 말술을 먹었다고. 피를 토하고 죽었대. 그 순간 내 머릿속엔 싱글벙글 웃는 뚱뚱한 남자가 술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장면이 정지 화면으로 각인되었다.

똑같이 술을 마셨어도 누구는 암으로 죽고 누구는 우울증으로 죽는다. 아버지는 평생 술을 먹었어도 위장도 간도 깨끗했다. 아버지는 회한에 싸여 우울증으로 죽었다. 사람이 병에 걸리는 원인도 다르고 결과도 다르다. 죽는 이유도 죽음에 이르는 길도 제각각 다르다. 죽는다는 진실만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짧아진다. 세월에 시간에 속도가 붙는다. 시간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에게 주어진 삶이란 시간은 모래시계와 같다. 다만 진짜 모래시계와 다른 점은 결코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삶에는 2부도 재방송도 없다. 인생은 러시안룰렛 게임과 같다.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 법칙 한 가지. 인생극장의 입장권은 언젠가 반드시 반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결국은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어쩌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한 모두가 늙고 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아닌 다음에야 젊은이도 늙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쉴 새 없이  나이 들고 늙고 있다. 심지어 누구에게는 어느 순간 그 생명이라는 시간이 불현듯 죽음으로 단절되기도 한다. 사고로 병으로 우연으로도 우리는 죽는다. 따라서 늙음을 특별히 긍정하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다.  나이 듦은 인생의 여정이므로, 죽어야 낫는 병 또는 죽음으로 완성되는 이야기이므로.

'젊은이는 자신이 시간을 앞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젊은이 앞에 놓여 있는 것은 그가 자신 안으로 받아들이는 세계일 따름이다. 반면 노인은 대부분의 인생을 등 뒤에 두었다. 노인의 인생은 다름 아닌 모아놓은 시간, 갈아진 시간, 이미 살아 생기를 잃은 시간이다.' ​

- 장 아메리 <늙어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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