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잘 빨개지는 중년의 여인 어떤데?
오랜 내향인의 삶을 살다 보니 가끔은 이미지 세탁을 하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가령 전학을 가거나 혹은 상급 학교로 진학을 하거나 이사를 가거나 하는 순간 말이다. (결혼 포함)
어느 순간 자기소개를 하면 낯을 가린다거나, 지독한 집순이라고 소개하던 패턴을 벗어나 세상 외향인인 척하는 순간들이 가끔 찾아온다.
처음 가는 모임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어색함을 풀어 주느라 푼수, 혹은 광대 같은 웃음을 짓고 있다.
그 모임에서는 나를 외향인으로 알고 대하고 있다. 사실 낯 가려요 하면 “디디님이요? 에이” 하며 듣지도 않는다.
또 어떤 곳에서는 주로 듣는 편이다.
시댁 친척들 모임에서 특히 그렇다. 의도하지 않았으며 원래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니,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다. (시댁에서는 수다쟁이임)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을 보면 할 말도 없지만 그냥 어색하다. 오히려 처음 보는 사람이 더 편할 지경.
아니 조커여? 뭐여?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말이다.
길을 가다 정말 오랜만에 아는 얼굴이 저 멀리 보이면 사실 도망가기도 한다.(대체 왜? 나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가장 싫은 모임은, 학교 동창 모임이다.
거의 20년 만에 만나는 것이 어색해 죽을 것만 같다(동창회 간 적 없음).
길은 가던 길만 가고 여행도 가던 곳만 가고, 먹던 것만 먹고, 음식점은 사람 없는 곳만 골라서 가고 앉아야 할 장소에 가면 맨 뒷자리에만 앉고 하던 내가 그나마 극복하게 된 것은 어떤 것 때문일까?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1.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것 : 정반대의 남편을 만나니 내가 안 하는 행동들을 자꾸 하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사랑의 힘
2. 출산과 육아 : 강한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다.(연 년생 남아 둘) 인생이 판타스틱하고 모험이 절로 펼쳐진다.
3. 나이가 드는 것 :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다 보니, 얼굴에 주름이 지는 것처럼 어느새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내버려 두게 되었다 고나 할까.
위의 세 가지 이유와 더불어 성격을 고쳐야 된다는 일념으로 나름의 마인드 컨트롤도 해보고 모임도 만들어서 모임장도 하다 보니 어느새 극 내향인 중에 모임이 가장 많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보드 게임 모임을 주관하고 가게도 운영해 보고, 자격증도 적극적으로 취득하러 다니고 맘 카페에서 사람들도 만나고 차 모임도 가고 그림 모임도 해보고 등등등.
이제는 거의 극복했다고 나름 자부하지만, 사람들과 만나고 집에 오면 한두 시간은 쓰러져 에너지를 충전해야 된다.
내향인 외향인 어느 것이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내향인인 것이 창피하거나 나빠서 극복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 경우에는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는 정도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기에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굉장히 사회화가 잘 되어 있다)
수줍은 성격을 고치려고 보니 어떤 땐 나를 다그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괜찮다고 끝없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네기도 한다.
생각할수록 보드 게임은 내향인들에게 잘 맞는 취미인 것 같다.
왜? 여러 명이 모여서 하는 게임이고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거잖아?라고 이야기 하겠지만, 사실 각자 게임에 몰두하다 보면 혼자 게임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주로 고개를 숙이고 내 차례에 해야 될 행동들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게임이 끝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안녕 바이 다음에 만나요~ “하고 헤어진다.
보드 게임으로 수줍음 극복하는 방법이 여기 있다.
당근과 채찍의 두 가지 방법을 쓰고 싶다.
1. 위로 버전 보드게임
힘들고 괴로울 때 주로 어떤 것을 하는지 궁금하다. 제 경우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가장 위로를 받는 것은 음악을 듣고 한 시간 이상 걷기이다. 음악을 듣는 게임이 몇 가지 있는 데 그중에 행복한 바오밥의 <디스크 커버> 게임을 처방해 주고 싶다.
음악이 주는 위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위로를 안겨 줄 것이다. <디스크 커버>는 음악과 미술을 결합한 게임으로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랜덤으로 재생되도록 설정한 후 1곡을 재생한다. 그림 4장을 펼치고 듣고 있는 음악과 어울리는 그림 카드를 각자 선택하면 되는 게임이다.(앞선 스테레오 마인드와 비슷하다)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그림 카드를 한쪽에 배치하고 그림 카드가 9장이 될 때까지 반복해서 음악을 듣고 카드를 선택한다. 점수에 개의치 않고 우리가 만든 디스크 커버를 감상하고 이야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게임의 묘미. 각자의 플레이 리스트를 공개하고 서로의 취향도 알아보며, 음악이 주는 편안함을 느껴보자.
토닥토닥
2. 스파르타 버전 : 도망가기 없기! 쑥스러울수록 사람들 틈에 더 끼어들자! 내향인들이여!
보약게임의 <셀레스티아>을 추천하는 이유는, 게임 안에서 리더 역할을 맡았을 때 이끄는 경험을 하게 되고 서로 대화와 협상하는 과정 속에 나를 집어넣게 되는 게임이라 수줍음 극복을 위한 스파르타 버전 게임이라 추천해 본다.
게임 속으로 들어가 보면 선장 또는 여행자가 되어 신비한 셀레스티아 섬들을 여행하며 보물을 수집해야 된다. 도시를 멀리 여행할수록 보물을 얻으니 집에만 있지 말고 여행을 떠나자. 일단 가치 있는 보물을 많이 모아 점수를 높이자. 각자 돌아가면서 선장을 맡아야 하므로 한 번씩은 주목을 받으며 여행자들을 이끌어야 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선장은 비행선을 운항하며 비행선이 마주한 위험을 극복해야 한다. 여행마다 선장이 바뀌게 된다.
여행자는 선장과 여행을 함께하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말하며 여행마다 여행을 계속할지 배에서 내려 그 도시의 보물을 수집할지 결정한다. 만약 선장이 위험을 극복하지 못하면 비행선은 난파되고 보물을 얻지 못하고 첫 번째 도시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선장은 고독한 결정도 해야 되고, 여행자들은 서로 배에서 내릴지 토론도 하게 되는 <셀레스티아> 게임은 혼자 고개 숙이고 할 수 없는 게임으로 단연코 재미와 웃음을 안겨 준다. 내향인들도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그런 게임이니 놓치지 말고 <셀레스티아>로 여행을 떠나보자.
각자 원하는 캐릭터를 선택
우리가 같이 여행할 하늘 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