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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Mar 17. 2024

교사 엄마로서의 미안함

반에서 가장 잘하는 아이를 내 아이의 비교대상으로 삼지 말자

 우리 학년 신규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부장님은 왜 매일 야근을 하세요?"


 분명 모든 부장선생님들이 야근을 하는 것은 아닌데 매일 초과근무도 달지 않고 야근을 하는 나를 보며 신규 선생님은 그 이유가 궁금했던 것 같다.


 "근무 시간에 학년업무를 먼저 하다 보니 학급의 수업준비나 학급업무는 일과가 끝나야 할 수 있거든요. 대충 조금씩 하고 내일 다시 하면 될 텐데 저는 제가 원하는 정도가 안되면  퇴근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이것도 다 성격이에요, 하하."



 신규 선생님한테 대답하면서 다시 한번 성격이 팔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내가 학교에서 늦게 끝나다 보니 아들은 학원에 다녀와서 집에서 혼자 기다릴 때가 많은데 퇴근하고 오면 종종 아이가 먹은 과자봉지나 아이스크림 포장지가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있을 때가 있다.


 "간식 다 먹었으면 휴지통에 버려야지, 이렇게 놓으면 엄마가 또 치워야 하잖아."


 야근하고 와서 피곤한 마음이 그대로 말에 담겨 아이 앞에 툭 떨어진다. 아이는 주섬주섬 정리를 하며 "치우려고 했는데.." 하고 중얼거린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숙제검사며 일기검사를 철저하게 하고, 공부하는 방법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면서 정작 이제 고학년에 접어드는 내 아이에게는 그만큼 신경을 못 써줄 때가 많다.


 그래도 학교에서 내준 숙제는 해가야 하기에 주말에는 한 번씩 아이가 숙제를 했는지 검사하고 잘 안 되는 것은 같이 해주기도 하는데 아이의 일기나 독서록을 보면 나의 기대에 차지 않아 계속 잔소리를 하게 된다.


 "독서록을 쓸 때에는 네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를 써야지! 매일 '그림이 예뻐서 읽게 되었다.'라고 쓰면 안 돼. 책의 제목이 궁금해서라든지, 선생님이 추천해 주셔서라든지, 다양한 이유가 있잖아. 그리고 글밥이 적은 책만 읽지 말고 이제 고학년인데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해. 엄마 반에 00 형아는 어려운 책을 3학년 때 벌써 읽고 있더라."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가 말한다.


 "엄마,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면 안 되는 거잖아. 그 형은 형이고 나는 나인데.."


 순간 뜨끔했지만 내 입은 어느새 변명을 하고 있다.


"비교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거야."


 그리고 생각했다.

'이게 바로 교사의  직업병이구나.'

 매년 담임을 맡았을 때 우리 반에서 가장 우수하고 모범적인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는 내 마음속에서 어느새 내 아이의 비교 대상이 된다.


 내 아이가 쓴 일기장과 독서록 위에 모범적인 아이의 것이 오버랩되면서 자연스레 비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글씨를 잘 못써도, 이만큼도 잘한 거라고, 조금만 노력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칭찬과 격려를 쏟아내는 선생님이면서 집에서는 조금만 못해도 엄하게 화를 내는 나를 발견했을 때, 아이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다.


 문득 친한 선배 언니가 몇 년 전에 나보다 앞서 고학년 딸을 키우면서 조언해 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아이와 나 사이에 '좋은 관계'를 남겨야 해. 내 자식 공부를 가르치다가 자식과의 관계를 망쳐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특히 우리 같은 선생님들은 모범생과 자식을 비교하게 되니까 아이가 뭘 해도 만족스럽지가 않거든.

 나도 집에서 내 자식을 가르치다 보니까 자꾸 싸우게 되더라고. 그럴 땐 차라리 돈 주고 학원에 보내는 게 나아. 그러면 최소한 자식과의 관계는 지킬 수 있으니까."



 언니의 말이 맞다. 내가 제일 많이 칭찬해 주고 격려해줘야 하는 건 내 자식인데, 왜 나는 남의 자식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하면서 내 자식을 가르칠 때는 호랑이선생님이 되어 있는가.


 내 자식이기에 기대가 커서라는 이유가 크겠지만, 직업의 특성상 매일 보는 모범적인 아이들과 내 자식이 비교가 되니 나도 모르게 더 높은 기준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이의 말처럼 그 아이는 그 아이인 거고, 내 아이는 내 아이인 것을...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숱하게 모범생 형, 누나들과 비교를 당했을 아이에게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안해. 엄마가 나도 모르게 비교를 했나 봐. 엄마는 너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런 건데 네가 싫다고 하니 비교하는 말은 하지 않을게. 엄마는 네가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잘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우리 같이 노력해 보자?"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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