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추자도 나들이
기회는 일상 속에서 우연처럼, 전혀 뜻하지 않은 순간에 그렇게 찾아오고는 한다. 폭염이라 집안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이냐?”
“네.”
“주현이는?”
“옆에 있지. 폭염이라 홈캉스 중.”
“주현이도 내려와 신디 추자도나 갔다 올까?”
“소현이 때문에 못 가는데.”
“당일치기로 다녀 오민 되지. 아침 배로 가서 오후에 돌아오게.”
언니의 일사천리 추진력에 7월 주말 언니와 조카, 딸과 함께 추자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바람이 허락하는 섬 추자. 파도를 가르며 1시간여를 달려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 추자 탐험이 시작되었다. 상추자도 대서리에 위치한 알록달록한 추자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최영 장군이 제주에 있는 몽골군을 무찌르기 위해 가다 풍랑을 만나 잠시 추자도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그 당시 머물면서 추자도 주민들에게 어망 편법 등 많은 것들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후일 이곳 주민들이 이러한 장군의 위덕을 잊지 못하여 최영 장군 사당을 지어 매년 정월 보름날 장군을 기리어 제사를 지내다 오늘날에는 풍어제로 이어졌다고 한다.
최영 장군 사당 위로 오르막길을 한참을 걷다 보니 봉골레산 정상이 보였다. 그곳에는 방사탑, 표지석, 쉼터가 있었다. 표지석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 쉼터에서 간식을 먹으며 쉬는 사람들, 주위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들...... 산 정상이라 바람이 세차게 불어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왔다. 마을을 지나면서 추자 주민들 생활 모습들도 보였다. 집마다 놓여있던 멸치 젓갈 통, 그물망, 물이 귀해 빗물을 받아 저장했다가 농수로 사용하려고 밭마다 놓여있던 통들을 볼 수 있었다. 물에 소중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반겨주는 예쁜 들꽃들을 지나다 보니 나바론 하늘길이라고 불리는 ‘나바론 절벽’을 만나볼 수 있었다. 나바론섬을 닮았다 하여 나바론 절벽이라고 이름 붙여진 웅장한 절벽이었다. 2km의 트래킹 구간으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높은 경사와 아찔한 절벽으로 험하기로 유명하지만, 나바론 절벽의 정상에서 보는 경치는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놓은 것 같아서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정상 계단에서 내려갈 때 바람도 세차게 불어서 순간 너무 무서웠다. 다시 뒤돌아 가겠다고 소리 지르자 언니랑 조카가 다시 올라와서 내 손을 잡으면서 언니가 한마디 한다.
“여기만 내려가면 험한 길은 끝이여, 이모 보라, 50이 넘어도 막내라서 어쩔 수가 없다.”
겁에 질려 온 힘을 팔다리에 집중하다 보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렇지만, 정상에서 바라본 그림 같은 풍경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안개로 살포시 덮어진 숲과 바다, 주변 경치는 너무나 신비로웠다. 10분쯤 걸어서 내려오니 제주 해협과 부산, 목포 등 내륙을 오가는 여객선과 화물선, 동중국해를 항해하는 선박, 남해안 해역에서 조업하는 어부들의 나침반 역할을 하며 안전한 밤길을 인도하는 추자 등대 전망대가 있었다. 비 온 뒷날이라 바닥이 조금 미끄러웠고, 신발들은 흙으로 뒤덮인 터라 무거움을 감당해야 했다. 물기를 머금은 낙엽들을 밟을 수 있었다. 수정 옷을 껴입은 맑고 선명한 나뭇잎들은 우리들을 맞이해 주었기에 더없이 즐거웠다. 아름다운 숲길을 지나 내려오자 색색의 타일로 꾸며진 벽화와 주황빛 지붕들의 인상적인 영흥리 벽화 골목까지 두세 시간 정도를 걸었다. 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 또한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순간 유럽의 해안마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점심을 먹기 위해 대서리로 발길을 옮겼다. 주인장의 정갈한 손맛으로 한상 푸짐하게 차려진 굴비 정식과 전복 해물 뚝배기의 맛 또한 일품이었다.
점심을 먹은 이후에는 섬에 한 대뿐이라는 귀한 마을버스를 타고 하추자를 둘러보았다. 버스 기사님은 어찌나 친절하고 다정다감하신지 감동이었다. 주민들 탈 때마다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시고, 무거운 물건들을 들고 타시는 손님들에게는 손수 내려서 물건을 들어주시는 배려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들이었다.
바다 위에 다리! 한국 최초의 섬을 잇는 다리로써 상추자도와 하추자도 사이에 놓인 섬과 섬을 이어주는 연도교를 시작으로 구불구불 길도, 탁 트인 길도, 섬 전체를 아우르는 버스 바깥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울창한 나무숲과 넓게 펼쳐진 바다의 모습. 금세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라는 내 생각과 달리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예초리 종점이었다. 종점에서 내려 등대 앞에서 인증 사진도 찍고 바다도 둘러보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부두로 이동했다. 아름다운 추자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고, 또 다른 추자 여행을 계획하며 배를 타고 제주로 이동했다.
2019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