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그렇지만 해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결혼 후, 애들을 낳고 키우면서 체험과 박물관 산책 등을 다니면서 제주 해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애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해녀 박물관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궁금증에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다. 해녀에 대해 각종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알면 알수록 제주 해녀들의 삶에 감동과 존경이 우러나왔다. 해녀들의 삶을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이다. 첫 번째, '불턱'에서 길러지는 빛나는 공동체 정신이었다. 두 번째, 목숨 걸고 왜놈들에게 저항했던 항일 운동이었다. 세 번째 삶의 현장성이 담겨있는 해녀 노래의 문학성이었다. 네 번째, 해녀와 바다가 일구어낸 자연과의 공존 지혜였다.
제주 해녀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나의 간절한 마음을 알았는지, 2021 년 10월 1일 강용준 작, 강명숙 연출 <좀녜>로 연극 무대에서 해녀 '덕자'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달 제주 작가 김순이 시인님의 해녀 강연도 듣게 되었다.
2016년 11월 30일,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에 등재했다.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은 인류를 위해 보호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인정받았을 때 지정되는데 현재 세계 무형유산으로 약 330여 종목이 지정돼있다. 무엇보다도 여성이 이룩한 문화로서는 세계에서 이것이 유일하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제주해녀는 한겨울에도 수심 20미터까지 잠수하는 강인한 체력을 지녔다. 단숨에 바다 밑에 이르기 위해 수압 조절도 없이 잠수한다는 것이 얼마나 몸에 충격을 주는 일인지, 그뿐인가, 해산물을 채취하고선 턱까지 차오른 숨을 비우려고 일렁이는 두꺼운 초록빛 유리벽을 단숨에 머리로 들이받아 깨뜨리며 올라와야 한다, 이때 올라와 내뱉는 소리가 '숨비소리'이다.
일제강점기에는 한반도 전 지역은 물론 일본 중국 소련까지도 행동반경을 넓혀 벌어들인 돈은 한때 제주경제의 활력소였다. 재주 해녀가 지닌 강인한 체력, 악착같은 경제력, 남자에게 기대지 않는 자립심도 남다르지만 세계 무형유산에 지정될만한 값어치를 가진 제주해녀의 가장 빛나는 덕목은 공동체 정신에 있다. '불턱'은 공동체 정신의 산실이었다.
열다섯 살이 되면 해안가에 사는 여자아이는 성인으로 인정받아 해녀 공동체의 일원으로 들어갔었다. 그때부터 해녀들이 작업하고 올라와 불을 쬐며 휴식하는 불턱에 끼어 곁불도 쬐며 선배 해녀들의 대화를 얻어들어가며 바다에의 지식과 경험을 쌓아간다. 해녀들의 군대와 같은 위계질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던 곳이 '불턱'이다. '불턱'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정해져 있다, 리더인 대상군의 좌석이다. 대상군을 중심으로 좌우에 상군이 앉고 중군과 하군이 자리 잡는다. 이곳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와 매너가 검증되며 도덕성과 리더십 자질이 은연중에 드러나게 된다.
제주해녀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착취와 강압에 저항했다. 대표적인 항일투쟁은 1932년 1월 12 일 일어났다. 제주해녀들의 항일운동은 제주에서 일어난 3대 항일운동의 하나이며 여성들만이 일으킨 항일운동으로는 이것이 유일하다.
오래전부터 제주해녀들은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를 위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해녀들은 해산물의 일정 기금을 각출, 공동기금을 조성해두고 상부상조는 물론 경로당, 복지회관, 학교 운동회 등 마을 전체의 복지에 대한 기부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이렇듯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아낌없는 사랑과 헌신을 베푸는 아름답고 따스한 전통이 제주해녀들에게는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제주해녀들이 부르는 민요인 해녀노래는 기원을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물질하는 장소로 이동할 때 배를 타고 이동한다. 이때 노를 저어가면서 부르는 노동요가 해녀노래이다. 해녀노래의 가장 큰 특징은 가사에 있다. 해녀노래에는 생생한 삶의 현장성이 담겨있다. 삶의 구차스러움, 인생의 서러움, 죽음의 공포, 가족의 비애 등등, 현세의 분노와 슬픔이 꾸밈도 감춤도 없이 토로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이 해녀노래의 문학성이다.
제주해녀들은 한 달에 약 15일간 물질을 한다. 물때가 좋은 일주일을 연이어 일한 후 약 8일간 쉬고 다시 일주일 정도 물에 든다. 쉬는 동안에는 농사일과 병행하는 직업이 해녀일이다. 이른 새벽에 밭에 나가 김을 매거나 추수를 하다가도 썰물이 가까워지면 바다로 내달린다.
2017년 9월, 통계자료에 따르면 제주바다를 활동무대로 하는 해녀는 4,000여 명이다. 제주 해녀의 예전의 그 아름답던 관행들, 포용력과 덕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던 멋진 '대상군' 리더는 보이지 않고 있다. 마을에서도 이기적인 집단으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실정에 이르고 있다. 제주해녀의 강인한 정신과 자연과의 공존, 공동체 세계의 여성들이 전승해 가야 할 중요한 정신적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