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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 이야기 Aug 29. 2021

바다 빛 당신 7. 친구에게 던진 돌은 내 안에 쌓인다

7. 친구에게 던진 돌은 내 안에 쌓인다.

  

1943년. 11월.         

종소리는 새벽하늘을 가득 담아 동길의 잠든 얼굴 위에 쏟아져 내린다.


신학교 뒤편 언덕에 자리한 4층짜리 벽돌 건물. ‘베네딕도 수도회 입회 지원자 기숙소’에서 열일곱 명의 소년들이 종소리에 눈을 뜬다. 규칙적인 일과에 익숙한 듯 반쯤 뜬 눈으로 이불을 개는 지원자들 사이엔, 제일 먼저 일어나 다락방 창문으로 수도원 종탑을 내다보다는 유태주 하비에르가 있다.    


“오늘 날씨. 흐림!

원장 수사님께서, 112명의 신학생들과 50명의 분원 수녀들. 60명의 선교사들을 먹여 살릴 돈을 달라고

오늘도 하느님께 경종을 울리고 계십니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세수를 하러 나가며 동길은 웃고 만다. 태주는 밤톨같이 단단한 홍태화 원장 수사님을 아침마다 놀려 먹는다.


물론, 이 수도회에서 두 번째로 높은 장상인 원장 신부님께서 다락방에서 보도되는 날씨를 알 리 없다. 그분은 남을 편하게 해 주려고 자신을 모룻돌로 두는 분이시라, 어린 지원자의 주전부리가 귀에 들어간다 한들, 당신의 근면 성실한 태도에 어떤 영향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원장 수사님의 안색이 며칠 째 흐린 것은 문제다. 그것은 수도원이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사무엘 아빠스님께서 앓아누워 계시니, 사실상 수도원의 총경영은 홍태화 원장 신부님께 맡겨진 것이나 다름없다. 거대한 수도 공동체의 머리이면서, 덕원과 흥남, 훈춘과 연길에까지 포진한 천여 명 신자들의 아버지인, 원장 수사님의 안색은 늘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된다. 자신에 대해서는 칭찬하는 말조차 극히 싫어하시는 성품을 생각한다면, 날씨에 빗대어 신부님의 안색을 알려주는 일 따위는 그만두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들 눈만 뜨면 그것이 궁금한 것이다.        



620여 명 애국열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3.1 운동 이후, 일본인들은 식민지인에 대한 지배 방향을 바꾸어  폭압 대신 조용한 목조르기에 들어갔다.    


부락마다 순사를 배치하고, 사람들을 감시하는 구조를 만들어, 대동아공영에 반항을 획책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은  따로 잡아가 경찰서에서 고문했다. 조선어를 집 밖에서 사용할 경우 엄벌에 처했으며, 일본 천황제와 황제 가족의 날, 일본군 승리의 날 등을 모든 식민지 조선인들도 함께 기념하게 만들었다. 조선 땅에서 나는 쌀이며 곡식, 광물과 어획물들의 공출로도 성이 차지 않아, 굶주린 조선인들을 각종 노역에 조달했다. 작년에는 경원 지방에서만 100여 명의 청년들을 전쟁 전선에 강제로 투입시키기까지 했다.    



그렇게 20여 년을 넘게 서서히 조아가던 마수를 이제는 천주교에까지 뻗치고 있었다.    


일본 당국은 가톨릭을 적성 종교(敵性宗敎)로 분류했다. 당국의 신식민지 정책에도 흔들림 없이 높이 노는 그 줄을 끊어 버릴 기회를 노려오다가, 조선 가톨릭을 어용종 교화하기 위해 각 교구의 교구장에 일본인 주교가 임명되도록 공작을 펼쳤다. 동길이가 덕원 수도원을 찾아온 작년에, 대구 교구 주교를 일본인으로 바꾸고, 용산 가톨릭 신학교를 폐쇄했다.    


8년 전, 안셀모 로머 학장 신부님의 결단으로 신학교 개교식에서 메이지 천황이 반포한 ‘교육 칙령’을 낭독하고, 일본 국가를 부른 덕분에 덕원 신학교는 아슬아슬하게 폐교의 위기에서 살아남았다.    


수업을 라틴어로 진행하는 루페르토 클링 자이스 철학지도 신부님 덕에, 공식 교육 기관의 모든 수업을 일본어로 대체하려는 당국의 정책도 비껴갈 수 있었다.

미사 역시 라틴어로 드렸기에 일본인들이 ‘내선 일체’를 들먹이며 간섭할 공식적 명분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수도원 인쇄소에서는 한국인 신자들을 위한 한국어. 일본어 겸용 < 미사 경본 >과 < 독어. 한국어 사전 > < 아이들의 미사 고해 성체 안내> 등을 출판해왔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만 빼고, 한국어로 된 출판물이 더 이상 발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동길이, 덕원의 인쇄소에서 우리말로 된 책들이 몰래 사고 팔리는 현장을 보았을 때 받은 충격은 한 마디로 표현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혜로운 원장 신부님 이하 모든 수사들의 성실한 결행들로 살아남은 덕원 수도원도 갈수록 심화되는 목 졸림에 태연하기는 어려웠다.


가톨릭 신학교 폐쇄 조치로 갈 곳이 없어진  신학생들까지 덕원이 받아 안게 되면서, 서울과 평양, 대구에서 온 신학생들로 인해 가르쳐야 할 학생 정원이 50명에서 갑자기 112명으로 불어났고, 재정난은 갈수록 가중되었다.     

    

조선 거류지를 부쩍 늘리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일자리와 경제주권을 빼앗긴 조선인 아버지들이 일거리를 달라고 수도원을 하루가 멀게 찾아왔다.


미사주 생산을 위한 포도 농사부터, 감자 농사, 염소사육과 양봉 등. 농장 소임을 담당하시는 파스칼 팡가 우어 수사님이 일꾼들에게 삯을 고루 배분하기 위해 보름을 간격으로 인부들을 바꾸어 쓰지만, 조선인의 굶주림을 면피시킬 뾰족한 방도가 없었다.

       

재정담당 수사님이나 알 것 같은 이 사실을 수도회 지원자들에게 알려 준 사람은 태주다.


태주는 수도원 진료소에 매주 도움을 주러 나오시는 유 박사님의 아들로, 올 초에 동길과 함께 베네딕도회의  지원자로 입회하였지만, 자신의 여동생 미옥이와 사적인 편지를 주고받으며 세상 소식을 놓치지 않고 있다.   

      

동생 미옥이는 식사 때에 어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모아 오빠인 태주에게 몰래 주는 일을 재미로 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원자 중 누구도 이 소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옥이 어떻게 생겼냐는 둥, 혹시 사진이 있냐는 둥의 한갓진 질문을 하는 동기생들은 없다. 왜냐하면 육신과 마귀와 죄의 사슬을 끊고 천국을 지향한다는. 철저한 신학교육 덕분에. 여자는, 어머니와 수녀님 빼고, 걸리면 넘어지는 돌 같은 존재라 여기며, 미옥에 대해 먼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이다.    



여자에 대해서는 없는 셈 친다 하더라도. 기도하고 일하라 (ora et labora). 하신 베네딕도 성인의 말씀을 따라, 하느님을 섬기며 사는 이 수도원에서 세속적인 사고는 다반사다. 기도라면 몰라도, 일은  손발이 맞아야 치러지기 때문이다.   


“에헤라디야”    


입동이 다가오면, 팡가 우어 수사님이 개간해 놓은 수도원 밭에선 일꾼들과 신학생들이 함께 나와 무를 캐고 시래기를 엮는다. 동치미나 김장으로 담을 무는 유 박사님 차 편으로 수녀원에 보내져 신자들과 함께 김장을 담그는 것이 관례였는데, 무 바구니를 지고 옮기던 인부가 그만 발을 헛디뎌, 보리밭에 웃거름으로 줄 오줌통을 지고 오던 치호 형과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동치미를 담을 예정이었던 무위에 오물이 가득 쏟아졌다.    


버릇되겠네.”    


겨울 동치미가 날아가는 아까운 순간 모두들 탄식을 뱉을 때에 태주는 다른 걸 본 사람처럼 말했다. 혼잣말 같은 친구의 말을 들은 것은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동길뿐인 것 같았다.    


일단 넘어진 치호 형이 괜찮은지부터 뛰쳐 가 보신 팡가 우어 수사님은. 키가 크지만 허약체질인 치호 형을 먼저 일으켜 세우시고, 미안해하는 인부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으시더니, 그 버린 무를 인부들에게 넘겨주셨다. 치호 형은 안경을 닦으며 인부들과 함께 개울로 향해 갔다. 오물 범벅 무를 짊어진 둘의 어깨는 언뜻 보기에들떠있었다.


서양인의 관점에서는 위생상 팔 수 없게 된 먹거리를 치운 것이고, 조선인의 관점에서는 그깟 오물이야 씻어내면 그만인 횡재였으니.  마음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곧 겨울 철 일자리가 끊어지는 인부들로썬 어떻게든 입구 멍에 풀칠할 것들을 쟁여두어야 했다. 그런 궁핍한 사정을 모르지는 않으니, 알아도 모르는 척 버린 무를 건네는 독일인의 마음엔 베려가 있었다. 벌써 조선에 도착한지 30년가까이라 어느 새 조선사람 다 되어 버린 독일인도, 미안하지만 이렇게라도 받게 된 게 고마운 조선인도 침묵으로 상부상조하며 일을 치뤘는데, 태주가 작정한 듯

한 마디를 했다. 혼잣 말처럼 한 말이지만 들으라는 듯 한 태도였다.


베풀고 받아내는 아량도 일을 치러야 하는 게 쩨쩨하구나.

 나라면 차라리 1 전이든 2 전이든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붙여서라도 돈으로 거래를 하게 할 거야. 

 어차피 여기도 다 남의 돈으로 시작해 먹고사는 곳인데.

 버릇만 나빠지지. ”   


녀석의 말이 동길이 귀엔 곡해되어 들린다. 누구의 피를 빨아서 얻어낸 돈으로 개인의 품위유지비로나 쓰는 세계의 사람들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돈으로 먹고사는 건 수도자들도 똑같으면서, 차라리 싼 값에라도 돈을 받고 팔 것이지 그렇게 밖에 못 주냐는  그 교만스러운 태도에 발끈하고 만다.  

   

그 무슨 뜻이니?

 수도원을 움직이는 힘이  보기엔 돈이라는 거니?”

"돈? 

  아니어야 할 이유라도 있니?”    


수도원을 움직이는 힘이 침묵 속 작은 려라고 결론 지었던 동길은 순간 말문이 막힌다. 나도 꼭 돈이라서 한 말은  아니지만, 돈이면 또 어떤가? 하는 녀석의 태도에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네 말이 그렇잖아. 수도원 문간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그들을 돕는 이곳마저 실은 돈이 아쉬운 데 아닌척하는

파렴치한이요 쩨쩨한 이란 말 아니냐?”   


난데없이 나간 동길의 엇반응에 태주는 잠시 놀란다.   

서로 간에 오해가 생겼다는 걸 알았는지, 친구와 어색하게 사이가 벌어지지 않으려고 녀석은 웃는다.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서로간에 문제의 해결 방식을 바꿔보자는 거지.

 게다가 파렴치한이라고?”    


파렴치한. 그 말은 동길이 마음속에서 나온 단어임을 알기에. 동길은 더 말하기 싫어졌다. 아니, 그 웃음을 받아 주기가 싫다.


동길은 휙 돌아서 가버린다. 녀석의 말을 곡해해서 과장되게 이해하고 더 과격하게 반응해 버린 자신이 모두 앞에서 못난 놈이 되어 버린 것을 알았지만, 지고 싶지는 않았기에 태주에게 등을 돌려 버린 것이다.       


태주는 한 번도 쩨쩨해져야 하는 위치에서 삶을 살아 본 적이 없으니 쩨쩨하게라도 버티는 모습들이 합리적으로  고쳐야 할 대상쯤으로 보이는  것이다.


의사 아버지를 둔 덕에 매국질을 할 이유도 없었거니와, 굶주리고 힘든 사람들을 힘껏 도와주며 당당하게 살아온 탓에, 인간사 서로 간에 합리적으로 존중하면 해결되지 못할 관계들이 없다고 믿는 구김살이 없는 친구.  태어날 때부터 바르고 정당한 삶으로 인도된 태주에게는 동길이가 품어 온 부모에 대한 원죄의식이나, 운명으로 드리워진 구차한 삶에 대한 불가피한 수용을 이해할 감성이 다.


그런 녀석과는 애초에 친구가 될 수 없었을지도. 


동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끼리 등을 돌려 봐야 수도원 안이다. 태주도 더 이상 동길에게 다가 오지는 않지만, 수업시간에도 미사 시간에도 잠을 잘 때도, 씻을 때도, 밥 먹을 때도. 언제나 한 공간 안에 녀석이 있다.    


교리에서 사람은 모두 다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는데, 녀석에게는 도무지 죄의 그림자도 없어 보인다. 태주는 심지어 기도문을 바치다가도 어느 구절이 마음에 안 들면 욱하며 소리치기도 한다.    


“왜 자꾸 죄인. 죄인. 그러는 거야?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장난스러운 태도지만, 태주가 예수님께 버릇없이 굴 수 있다는 것이 동길은 놀랍기만 하다.  녀석은 정말로 태어나 죄라고 할 만한 것을 지어 본 적도, 누구를 미워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동길이 늘 예외의 사람으로 눈에 띠고 마는 태주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에도. 설상가상, 태주는 몇 분도 안 있다가 자신이 교만의 죄를 지었다며, 치호 형한테 달려가 고해성사를  본다.


치호 형은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배출한 첫 조선인 사제인데, 키가 너무 커서 허약해 뵈는 것을 빼고는 이 보다 완벽할 수 없는 신학생들의 모범이다. 뛰어난 외국어 구사 능력과, 피아노 실력, 깊고 온화한 인품까지 갖춘 거목 같은 존재이지만 수도원의 허드렛일도 스스럼없이 잘 해내 지원자들이 형이라 부르며 좋아한다. 그렇긴 해도,  이미 사제의 신분이라 격의 없이 친하지는 못했는데, 태주는 치호 형과도 스스럼없이 친했다.


녀석은 어느 때는 좀 무례하기까지 해서, 치호 형이 개인 고해 사제라도 되는 듯이 고해를 보고 싶으면 편리하게 치호 형을 찾곤 했던 것이다.    


그리곤 보속을 받아왔다며 성체 조배실에 가서 예수님께 밤샘기도를 하는데, 보속을 마치고 돌아온 녀석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하다.


마치 예수님과 사적인 대화라도 하고 온 냥.   


“베드로. 용서받은 자의 기쁨을 너는 아느냐?”   


예수님이 설법하실 때나 할 것 같은 말투를 꾸미며 한 동안 말도 하지 않은 동길에게 다가와 다시 웃으며 넘어가려 하는데, 동길은 그 말도 받아주기가 싫다.

모든 게 장난 같아서다.        



동길의 냉기에 태주는 말없이 떠나지만,

이내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웃고 떠든다.

그러면, 동길의 아니꼬움만 더해지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남의 삶에 괜히 내 배가 아플 때는 스스로를 돌아 봐야 한다. 는 격언에 따라 동길은 자기 성찰에 들어간다.


태주가 제 멋대로 맺어대는 예수님과의 관계엔 질투 나는 무엇이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친구를 시기하면, 죄인이 되는 것은 동길이다. 교리를 기준으로 7 죄종의 하나인 질투의 죄를 지은 셈이니, 이번엔 동길이가 고해성사를 봐야 한다.    


“예수님에게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하는 친구를 질투했습니다.”   


동길은 질투의 죄를 뉘우치는 척하면서 사실 친구의 잘못을 고발했다.    


“돈이 수도원을 돌리는 힘이라고 말하는 녀석을 제 마음은 자꾸 혼내주고 싶어 합니다.”   


하필, 맞은편에는 타인의 말 따윈 꿈쩍도 안 하면서 50년 내낸 근면 성실한 삶을 살아오신. 이 수도원의 모룻돌. 홍태화 루치오 로트 원장 신부님이 계셨고, 돌아온 것은 차돌 같이 단단한 신부님의 보속뿐이었다.    


“질투는 무엇보다 자신의 얼굴을 먼저 일그러뜨립니다.

 보속은 감자밭의 돌을 전부 빼는 것으로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형제의 죄를 사하노니 평안히 가십시오.”  

  

고해 형식을 철저히 지키시는 딱딱한 말투로 고해소의 문을 닫아 버리는 원장 신부님.


고해소 안에서나마 잔뜩 털어놓고 싶었던 속 마음을 다 꺼내보지도 못하고 목구멍으로  도로 밀어 넣은 동길은 한층 더 무거워진 마음으로 고해소를 나와, 빼도 빼도 매해 새로운 돌이 생긴다는 전설의 돌 밭으로 가야 했다.


찬 겨울. 황량한 감자 밭에 앉아 호미로 돌들을 뽑아내다가 손등이 갈라져 피가 터진 동길은, 결국 호미를 집어던지고 만다.   


“치사빤스! 똥 빤스!”



돌밭을 헤집다 돌아온 밤.


동길은 기숙 소로 가지 않고 진료소로 향한다. 처음 들어왔을 때 자신을 안아 주었던, 요셉 수사님께 응석이라도 부려 볼 참이었다.    


“ 수사님. 배가 너무 딱딱해요.

  한 데에 쪼그리고 너무 오래 앉아 있었는지 배탈이 난 것 같아요.”   


동길은 다른 수도자 분들에게 하는 것과 달리, 요셉 수사님께 만은 아들마냥 굴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만. 수사님의 바쁜 하루 일과가 다 끝난 성무일도 이후의 자투리 시간에서만.   


정갈한 수도복 안으로 자신을 침묵시키며 내적 단련을 하고 계시는 것은 요셉 수사님도 다른 수사님들과 마찬가지라, 따스한 눈길 중에도 전혀 빈틈이 없는 베네딕도회 특유의 군인 같은 자태가 나신다.


그래도 덕원 신학원을 맨 발로 찾아왔을 때에 한 번은 품에 안겨 울어 보았던 그 정이 남아, 지원자 기숙사로 옮기기 전에 이곳 간이침대에서 먹고 자던 기억이 남아, 동길은 요셉 수사님이 마음으로는 제일 편했던 것이다.   


“손이 다 얼었구나.”    


수사님은 동길이가 무엇을 하다 온 것인지 이미 알고 계신 듯 겨울바람에 붉게 언 손을 따뜻이 잡아 주셨다. 환자를 위해 지펴 둔 난로에서 몇 개의 나무 숯을 덜어와 동길의 손 앞에 놓아주셨다. 


찬바람에 딱딱히 굳었던 손을 펴자 꼬였던 마음이 풀리며 동길의 입도 풀리기 시작했다.


“모든 게 불공평해요.... ”    

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태주에 대한 험담으로 끝났다.


아픈 데를 진찰하기 위해  청진기를 꺼내다가 책상 위에 놓아두고 돌아선 수사님은, 동길의 맞은편에 나무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으셨다. 동길이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을 참으로 정성 들여 들어주셨다.


모든 것을 이해하는 따스한 어른의 푸른 눈빛엔 걱정 어린 시선도 함께 담겨 있었지만, 루치오 로트 원장 수사님의 딱딱함에 비하면 천국 같은 포근함이라 느껴져, 동길은 하고 싶었던 모든 말을 해버린 것이다.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다고 느꼈던 순간, 수사님이 말씀하셨다.   


“돌을 다 못 뺐구나.”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챘지만,

수사님의 그 한 마디를 깊이 헤아려 보아야 하는 숙제를 다시 받기 싫었다.


“거긴 어차피...

 빼도 빼도 계속 나오는 전설의 돌밭이잖아요.

 빼도 또 생긴다는 밭인데 그럼, 빼다 말아야지 어떤 바보가 그 돌을 다 빼겠어요.”   


“동길아, 그 밭에선 왜 돌이 계속 나오는지 아니?”


무슨 말을 하실지 알 것 같았지만 일단 오늘은 듣기가 싫어서.


“아니요. "


했더니 결국 메스가 들어왔다.


“남에게 던진 돌은 결국 자기 안에 쌓이기 때문이란다.”


수사님의 푸른 시선이 냉엄히도 속을 꿰뚫어 버리자

동길의 얼굴엔 핑하니

눈물과 함께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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