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파이낸스 강의/제4강(2)
딜 떴다. 뭐부터 하나?
4-2. (법률)자문사 선임 – 갑이냐 갑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위에서 ‘프로젝트의 특정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bankability를 판단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그리고 bankbability와 여신 심사가 오십보백보 관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PF 거래는 워낙 들여다볼 사항들이 많고 금융인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기술적인 내용들도 많기 때문에,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대주단 자문사들을 선임합니다.
사업주는 이를 매우 번거로운 절차라고 느낄 것입니다. 이미 사업주 차원에서 충분히 검증된 자료를 다시 들여다본다는 것은 시간낭비 아니냐는 거죠.1) 게다가 비용도 만만찮게 발생합니다. 그러나, 대주단이 자문사를 선정하는 이유는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장점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제3자의 엄격한 심사를 통해 프로젝트 계약의 모든 의무들이 확실하게 이행될 수 있는지, 그리고 거래 관련 리스크들이 적절히 분산되어 관리 가능한지 여부를 거듭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확인 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프로젝트 파이낸스는 기업금융 대비 레버리지(leverage)를 높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자문사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프로젝트의 기술적인 측면을 검토하는 기술자문사(technical advisor), 프로젝트가 도입하는 원재료 또는 프로젝트가 생산하는 생산물의 가격이 시장에 노출되어 있다면2) 이러한 리스크를 검토하는 시장자문사(market advisor), 점점 더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환경사회자문사(environmental & social advisor), 회계적 이슈 및 세무 이슈와 관련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계/세무 자문사(accounting/tax advisor), 불가항력(force majeure)3) 등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프로젝트가 가입하여야 하는 보험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는 보험자문사(insurance advisor), 그리고 법률자문사(legal advisor) 등이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프로젝트 종류별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리스크를 검증하기 위하여 별도의 자문사를 둡니다.4)5)
이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주단 자문사는 뭐니 뭐니 해도 법률자문사입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스 업무의 상당 부분이 수많은 계약6)들을 구조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업무는 현재 미국과 영국의 소수 법무법인들이 과점하고 있습니다.7) (물론 사업소재지국 법률환경을 검토하기 위해 현지 로펌도 필요합니다만, 현지 로펌이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게다가 타 자문사에 비해 법률자문사의 비용이 절대적으로 많이 듭니다. 복잡한 PF의 경우 실사 개시부터 금융종결까지 1년 이상 걸리는데, 변호사들은 시간당 비용8)을 청구하기 때문입니다.9) 그러므로 사업주들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변호사가 개입하는 것을 희망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변호사들은 항상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이 낄 경우 시원하게 진도를 빼기 어렵습니다. 갑갑함을 느끼는 이들이 ‘변호사 빼고 우리끼리 따로 좀 얘기하자’고 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말이 좀 길어졌는데 어쨌든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딜 초기에 법률자문사를 선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딜 초기에 PIM과 Term Sheet을 읽으면서 ‘감’을 잡은 후, 법률자문사까지 선정하면 대주단 입장에서는 향후 실사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절차를 마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법률자문사들은 대주단 자문사로 선정되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PF 딜 한 건 자문하는 것이 CF 딜 몇 건 자문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수익성이 좋기 때문입니다. 장기간의 일감을 미리 마련해놓은 조선소와 비슷하다고나 해야 할까요? 한편, 금융거래에 있어 수익자 부담 원칙 때문에 법률자문사 고용계약은 사업주가 체결하지만, 실제로는 대주단이10) (호선으로) 법률자문사를 선정합니다. 그러니 자문사 선정에 국한하여 본다면 대주단은 분명 갑입니다.
물론 사업주도 의견을 제시합니다. 해당 법률자문사가 비용을 저렴하게 제시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기존 거래관계를 통해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업주에게 유리한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때 우호적인 관계 형성을 위해 사업주가 제시하는 안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갑은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갑은 자기만의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그 제안을 허용해야 합니다. 이는 제2강에서 얘기했던 ‘왜냐하면’의 연속선상에서 논의할 수 있습니다. 아래 사례를 함께 살펴보시죠.
모 사업주는 대주단 법률자문사로 A사를 추천했습니다.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A사가 더 낫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 A사는 사업소재지국에 사무소를 보유하고 있다. (B사는 그렇지 않다11))
◦ A사의 비용이 (B사에 비해) 합리적이다.
PF 거래에서는 현지 로펌이 반드시 필요하니, 사업주가 제시한 사항만 보면 A사가 B사 대비 경쟁력을 보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사업주의 설명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하고, A사와 B사가 제출한 제안설명서 원본을 상세히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둘 다 유사 딜 경험은 비슷했습니다)
◦ A사가 보유하고 있다는 사업소재지국 사무소는 최근에 인수 합병한 현지 로펌이다. 이 경우 현지 로펌과 파트너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B사 대비 명확하게 어떤 장점이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 A사와 B사의 프로젝트 리드 변호사의 역량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 글로벌 변호사 자질을 평가하는 Chambers and Partners에서 발표한 순위를 보면 B사의 리드 변호사가 A사의 리드 변호사 대비 두 단계 높은 순위로 랭크되어 있으니, B사에게 가점을 더 줄 수밖에 없다. (전반적인 딜 경험은 양사 간 비슷하다만)
◦ A사 한국사무소에는 PF 전문 변호사가 없다. 코로나 시기라 해외출장이 제한적이므로 사업소재지국 사무소보다는 오히려 한국사무소에 PF 전문 변호사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할 것으로 판단한다.
그랬더니 다른 이들도 저의 의견에 동감을 표시했고, 결국 B사가 선정되었습니다. 사업주도 쿨하게 동의했습니다. (물론 B사의 비용이 너무 비싸다며 볼멘소리를 좀 했지만 말이죠)
여기서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갑’이 되어야지 ‘갑질’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수출입은행은 대주단 법률자문사 선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갑질 유혹 또한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갑 역할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갑질은 장기적으로 조직과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쉬쉬하더라도 내가 억지를 부리는 경우 그 내용이 결국 모두에게 알려지게 되고, 이 경우 거래상대방과 신뢰관계를 쌓기 힘들게 됩니다.
갑질에의 유혹(혹은 대충 하고자 하는 유혹)에 주문처럼 외워야 할 것은 전에도 얘기한 ‘왜냐하면’ 입니다. 제3자가 보더라도 수긍을 할 만한 명확한 이유를 댈 수 있으면 어떤 경우에도 갑질은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 주제와 비켜난 주제인데, 살다 보면 ‘나는 매번 을의 입장에서 일한다’면서 불평하는 이들을 봅니다. 저는 금융기관 직원들은 웬만하면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사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갑은 발주하는 사람이고, 을은 수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12) 그리고 금융은 기본적으로 모든 거래에 있어 끝판왕13)이기 때문입니다. PF에서는 말할 것도 없구요.
물론 실제로 매일매일 업무를 처리하면서 부딪히는 어려움이 많겠죠. 그래서 아마도 이들은 ‘하고자 하는 일이 마음대로 안되고, 항상 상대방의 눈치를 봐야 한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월급 받으면서 일하는 이들 중 ‘하고자 하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상대방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그러므로 PF를 취급하는 직원에 대한 자질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갑이냐, 갑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제가 참 좋아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노인은 너무나 소박해서 언제부터 자신이 겸손해졌는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이 겸손해졌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이 부끄러울 일도 아니며 진정한 자부심을 해칠 것도 전혀 없음을 깨달았다.
잘 모르는데 아는 척할 필요 없습니다. 또 잘 모른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실하게 하루하루 맡은 일을 하다 보면, 이 노인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실사에 임하다 보면, 언젠가 자신 또한 주위 동료로부터 PF 전문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1) 대주단뿐 아니라 자신들도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니 '너무 까탈스럽게 굴지 말라'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사업계약상 tariff 구조가 확정된 형태의 사업(주로 인프라 사업), 또는 take-or-pay 방식의 offtake agreement(가격 및 물량 리스크 모두를 구매자가 부담하는 계약으로, 물량 리스크만 제거하는 장기판매계약(long-term sales agreement)과는 다릅니다)에는 시장자문사가 필요 없습니다.
3) 영어로는 Act of God 정도가 되는데, 천재지변(natural force majeure)이나 내란/폭동 등과 같은 정치적 리스크(political force majeure) 등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4) 예컨대 Oil & Gas 프로젝트에서는 매장량 리스크를 추가로 검토해야 할 것이고, 교통 인프라 프로젝트의 경우 교통량 리스크를 추가로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5) 일본 ECA가 고안한 것으로 알고 있는 ‘ECA coordinator’라는 자문사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재무자문사인데, 재무분석 능력이 상업은행 대비 다소 열위한 ECA를 지원합니다. 또한 ECA는 각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들을 조율하는 역할도 합니다.
6) 제3강 < PF 계약서 종류 예시 : 중동 석유화학 프로젝트 > 참조
7) 다수 외국계 로펌이 한국에 진출해 있지만, 그중에서도 Milbank, Latham & Watkins, White & Case (이상 미국계), Allen & Overy, Clifford Chance, Linklaters(이상 영국계)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8) 직급에 따라 차등은 있지만, 2022년 현재 평균적으로 최소 1인당 시간당 1,000불 이상을 청구합니다. 넷플릭스 드리마 ‘Suits’에서도 associate 변호사인 마이크 로스가 자신의 직상관인 하비 스펙터 senior partner 변호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시간을 뺏자, 하비는 로스에게 ‘나 너한테 시간당 1천 불 청구할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드라마가 제작된 것이 2011년이니 지금쯤 많이 올랐겠죠?
9) 이에 비해 금융자문사(financial advisor)는 비용의 대부분을 성공불로 받습니다.
10) 통상 ECA들이 참여하는 거래에는 ECA들이 가장 큰 금액을 대출하기 때문에, 그리고 상업은행들이 참여하기 전에 사업주와의 협상을 통해 사업구조를 확정하므로(즉, pathfinder 역할을 하기 때문에) ECA들이 정합니다.
11) B사는 현지 로펌과 별도 파트너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 물론 금융자문/주선, 채권 발행 자문/주선 등 업무 자체가 딜을 따기 위해 다 금융기관과 경쟁해야 하는 부문도 존재합니다.
13) 물론 ‘선금융 후발주’ 등 금융이 선도적으로 시장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논리도 존재하지만, 저는 이 얘기는 맞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그리고 통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