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파이낸스 강의/제5강(1)
실사(Due diligence) 준비
5-1. 실사에 임하는 마음가짐 – 힘들 때 10개 더 해야 근육이 생긴다.
사실 대부분의 책이나 강의 자료는 이 시점에서 프로젝트 리스크 파악 및 리스크 경감 방안으로 주제를 옮겨갑니다. 하지만 이 강의의 목표가 PF에 대한 지식(이는 책을 읽고, 그리고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현실감각을 보완하고, 그리고 결국은 딜 경험을 축적해가면서 자신만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믿습니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PF 업무를 어렵게 여기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 업무를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업무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에 대한 저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잔소리를 조금 더 이어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방법이 좀 더 솔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솔직하지 않은 부분이 있냐구요? 네, (이를 인지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PF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내용이 어렵고 많네요’라는 얘기를 할 순 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라는 얘기를 지속해서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법률자문사 선정에 대하여 오래 얘기를 했던 것은 금융기관 직원들이 법률자문사의 서비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상의 PF 강의자료에는 ‘실사는 광범위한 내용을 커버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자문사들과 함께 작업한다’는 정도로만 자문사의 역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문장만 봐서는 마치 대주단이 여러 자문사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주체적으로 검토한 후, 이슈가 될 수 있는 부분만을 자문사와 함께 점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법률자문사는 마치 법률적/계약적 이슈만 검토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법률자문사는 통상 타 자문사들이 작성한 실사보고서까지 자체적으로/우선적으로 검토한 후 ‘issues list’를 만들어서 대주단에게 제공합니다. 특히 중요한 이슈들은 ‘key issues list’1)로 추리고, 덜 중요한 것들은 ‘secondary issues list’로 추려서 제공합니다.2) 물론 이 내용들은 법률실사보고서(legal due diligence report)에 포함됩니다.
그러니 issues list만 있으면, 향후 있을 사업주와의 협상 준비는 웬만큼 끝난 것이지요. 즉, 전투가 펼쳐질 전장에 대해 웬만큼 파악이 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개별 회전(=실사 출장)만 남은 상태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 경우에는 시작이 거의 끝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issues list만 해도 최소 수십 페이지의 분량이며, 이를 읽으면서 고려해야 할 것들, 그리고 사업주와 협상을 하는 도중에 불거지는 새로운 이슈들까지 감안한다면 issues list에 있는 것들만 해결하는 과정만으로도 벅차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딜을 하나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외 다른 일도 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위에서 밝힌 제가 말한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않은’ 부분은 바로 이 지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Issues list는 1차 자료가 아닙니다. 변호사의 관점에서 생성된 2차 자료입니다. 그러니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 번째는, 2차 자료는 아무리 읽어도 전체를 조망하는 관점을 가지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해당 딜에서 파악한 지식은 축적되기 힘듭니다. 마치 물건은 계속 쌓이는데, 정리할 선반은 없는 것과 비슷한 형태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직원들은 충분히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PF 딜을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실제로는 타인에게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으면서)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3)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하여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은 당연히 장려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금융기관 직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매우 디테일한 사항에 대하여까지도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라 프로젝트의 bankability 혹은 viability/feasibility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가란 단어를 너무 모호하게, 혹은 만능키처럼 사용하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금융기관은 ‘을’( = 전문가 = 각종 자문사)이 아니라 ‘갑’( = 사업주 또는 금융기관과 같은 전주)이기 때문입니다. 갑은 본인이 희망하는 바를 을에게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 을과 같은 수준의 전문성을 겸비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김영하 작가도 「여행의 이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누구보다 이 여행을 가장 총체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이는 자기 집 거실 소파에 누워있는 시청자들이다. 시청자는 출연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하루 종일 여행한 경험에서 제작진이 세심하게 선별하고 거기에 컴퓨터 그래픽과 자막을 입힌 한 시간 반 가량의 프로그램으로 본다. 많은 분량이 편집 과정에서 사라졌지만 그렇기 때문에 함몰되는 위험이 줄어든다.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그 도시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에 더 집중하게 된다. 시청자는 영국의 귀족이나 조선의 양반들처럼 출연자를 어떤 도시에 대신 보낸 후, 그것을 제작진으로 하여금 기록하고 편집하게 한, 후 여행의 정수만 느긋하게 경험한다.4)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아무런 문제없습니다. 여러분은 시청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작진, 특히 PD의 관점을 가지려 노력하면 됩니다. 천재 피아니스트처럼 피아노를 잘 치지는 못하더라도 오케스트라를 훌륭하게 지휘할 수 있거나, 좋은 음악 나쁜 음악을 분별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한 것입니다.5)
두 번째는 변호사들도 사람인만큼, 아무리 전문가 집단이라 하더라도 누락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으니 금융기관은 협조융자를 선호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익스포져가 줄어드는 것 외에도 여러 사람이 들여다보게 되니, 아무래도 촘촘하게 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PF에서 보험은 중요한 이슈로 다뤄지는 경우가 드뭅니다. 게다가 보험에 대한 논의는 프로젝트 협상의 거의 마무리 단계에서야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물론 지진대에 위치한 교량 프로젝트라든가, 환경오염 위험이 큰 정유·석유화학 프로젝트라든가, 정치적 위험이 큰 지역에 위치해 있는 프로젝트 등 불가항력 위험이 큰 프로젝트들과 관련하여서는 협상 초기부터 보험이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대두됩니다.
그런데 최근 담당했던 프로젝트와 관련, 사업주와 최초 협상을 개시하기 전에 저는 보험자문사가 제출한 리포트를 읽고 사업주가 BII6)에 가입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짐작 가능했습니다. BII는 다른 일반적인 보험7) 대비 보험료가 비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의 경우 프로젝트 중간에 추가적인 capex가 소요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대비한 별도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았습니다.8) 이 이슈에 대하여 오랫동안 협상이 이루어졌는데, 결과적으로 BII에 가입하지 않는 것을 허용하는 대신 DSRA9)를 추가적으로 6개월분 더 적립하고 추가 capex 소요 대금의 80% 수준도 미리 별도 계좌에 적립하는 것으로 합의하였습니다. 사업주는 아마도 L/C나 모기업 보증을 제공하고 프로젝트 계좌에 묶여있는 돈을 빼내는 방법으로 Equity IRR을 높일 수 있고, L/C 발급비용이 BII 보험료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이런 타협안에 동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대주단으로서도 합의안이 완벽하진 않지만 처음보다는 대주단을 보호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포함되었으므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대주단 실사를 통하여 프로젝트 구조가 탄탄해지는 과정, 즉 PF의 장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광경입니다.
그런데 이 BII 이슈는 법률자문사가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얘기하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고, 혹은 협상 막판에 이슈로 되어 금융종결이 하염없이 지연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엔 후자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자, 지금까지 법률자문사에게만 의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두 가지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해결방안을 논의할 시간입니다. 저는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률자문사에게 주요 프로젝트 계약 내용을 요약하여 법률실사보고서에 포함시키라고 요구합니다. 제가 계약 내용 모두를 꼼꼼하게 읽을 실력과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10) PF는 다양한 계약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특수 금융이기 때문에, 요약 자료라도 읽으면 다수 계약 간의 관계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컨대, 원료 공급계약에서는 force majeure로 기재되어 있는 사건에 대하여, LNG 판매계약에는 누락되어 있는 경우를 크게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논의는 다음 섹션의 주제인 리스크의 pass thru에서 조금 더 자세히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없습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자문사 보고서를 읽어내야 합니다. 읽다 보면, 언젠가는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날이 옵니다.11)
이처럼 단순히 법률자문사가 작성한 issues list에만 의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읽다 보면 언젠가는 올록볼록한 PF 근육을 갖게 됩니다. 이는 마치 헬스장에서 푸시업 100개쯤 하고 이제 그만 쉬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코치가 매의 눈으로 째려봐서 10개 더 하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1) ‘느낌적인 느낌’으로 얘기하면, PF 경험이 풍부한 직원은 여기에 나오는 정도의 이슈들은 거의 다 잡아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를 PF 전문가 검증을 위한 리트머스 테스트기 정도로 생각합니다. 한 70~80% 이상의 싱크로율을 보이면 꽤 괜찮은 수준이고, 80~90% 이상 잡아내면 이제 하산을 할 때가 된 것이지요.
2) 금융계약에 대한 key/secondary issues list, 그리고 프로젝트 계약에 대한 key/secondary issues list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3) ‘갑’이 ‘갑질’로 바뀔 수 있는 ‘개와 늑대의 시간’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초보자가 교통사고를 내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운전경험이 한 1년 정도 되는 사람이 사고를 많이 낼 수 있다는 것이 많은 분들의 의견입니다.
4) 예컨대 모로코의 술탄 아부 이난 파리스가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통해 앉아서 천하를 유람하는 기쁨을 느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정조가 연암 박지원이 제출한 열하일기를 보며 북중국과 남만주에 대한 견문을 넓히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라테’ 표현으로 바꿔 쓰면, “일할 때 당신이 경영진이라고 생각하고 해 보라고, 응? 이건 너무 지엽적인 내용이잖아. 이래서 결재받을 수 있겠어? 좀 크게 보라고~” 정도가 되겠죠? 라테 풍미가 더 진해지기 전에 여기서 중단하겠습니다.
6) Business Interruption Insurance의 약어로, 운영기간 중 프로젝트에 문제가 발생하여 운영이 중단될 경우 일정기간 동안 프로젝트 운영에 필요한 고정비용, 이자비용, 페널티 등을 커버해주는 보험입니다.
7) 운영기간 중 필요한 가장 대표적인 보험은 프로젝트의 물리적 시설에 대해 발생한 손상을 커버해주는 operation all risks 보험입니다.
8) 통상은 별도의 예비계좌(reserve account)를 설정하여 큰돈이 들 일을 미리부터 대비케 합니다.
9) 대출원리금상환준비계좌(Debt Service Reserve Account)의 약어입니다.
10) 물론 주요 금융계약은 다 읽습니다.
11) 개인적으로 팔자에 없는 일반화학을 끙끙대며 읽은 적도 있습니다. 그 결과 탄화수소의 종류에 대해 크게 3가지 특징(지방족 or 방향족, 사슬형 or 고리형, 포화 or 불포화)을 바탕으로 저만의 분류체계를 마련해 노트에 필기해 두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 이후로 정유/석유화학 프로젝트 관련 기술자문사 보고서 읽는 것이 조금은 더 편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