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파이낸스 강의/제5강(2)
실사(due diligence) 준비
5-2. 실사의 철학 – (웬만하면) pass thru
PF를 소개하는 많은 책들은, 특히 인프라 PPP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PF를 소개하는 자료들은 ’PPP란 무엇인가?‘ 또는 ’왜 PPP를 활용하는가?‘1) 등을 설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이는 PPP 사업이 전통적인 정부구매(government procurement) 사업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많은 경우 그러한 것처럼 소개되지만) PPP 사업은 (특히 개도국에서) 만병통치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2)3)
저는 PPP 추진 동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Value for Money(VfM)’로 표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모든 PPP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려는 이들은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굳이 PPP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는 까닭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프로젝트 개요를 디자인하는 단계부터 실시협약을 체결하는 과정 전반에 걸쳐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핵심적인 가치입니다. 한편, VfM은 발주처(즉, 정부)가 민간에게 프로젝트 리스크 일부를 이전시키는 대신 부담해야 할 비용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구체화됩니다.4) 프로젝트 건설 및 운영비용은 결과적으로 발주처가 tariff5)로 또는 사용자가 요금(user charge)6)으로 지불해야 하는데, 발주처와 민간 사업주 간의 리스크 분담 내용에 따라 tariff나 사용자 요금의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은 프로젝트 PIM과 Term Sheet을 받아 든 금융기관 직원의 입장에서는 큰 관심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발주처 또는 민간 사업주는 VfM 검토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금융기관과 접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하여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은 실사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금융기관 직원 입장에서는 ‘VfM이 떨어지는 일’인 것입니다. 거듭 얘기하지만, 금융기관 직원 입장에서는 PIM과 Term Sheet에 제시된 금융조건들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그러한 결정을 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행위가 바로 금융실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위의 VfM 관련 논의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이는 리스크 분담 원칙과 관련이 있습니다. VfM 차원에서 발주처와 민간 사업자가 부담하는 리스크를 정하는 것은, 결국 그 리스크를 가장 잘 부담할 수 있는 자가 해당 리스크를 지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근본적인 원리입니다. 다만, 이제 관점을 전환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발주처나 사업주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대주단의 관점, 또는 프로젝트 회사의 관점입니다. 대주단은 프로젝트 회사가 질 수 있는 리스크와 그렇지 못한 리스크를 구분해야 하고, 실사 결과에 따라 이미 발주처와 사업주간 합의한 내용을 수정하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7) 한편, 여기서 대주단의 입장은 프로젝트 회사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는 레버리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업주보다 대주단이 프로젝트 회사에 투입하는 자금의 크기가 더 크기 때문에8) 대주단 또한 사업주 못지않게 프로젝트 회사와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대주단이 프로젝트의 운영에 대하여 왈가불가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집니다.9)
그렇다면 대주단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은 사업주가 이미 발주처와 협상을 마쳤는데, 왜 대주단이 이미 합의한 내용을 수정하다는 등의 요구를 하는 것일까요? 이는 실시협약 및 서브계약10) 체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거래상대방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리스크를 전부 프로젝트 회사에 전가시키려는 유혹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프로젝트 회사는 리스크의 쓰레기통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발주처가 모든 리스크를 민간에 넘기려 할 때와 마찬가지로 서브계약의 거래상대방 또한 모든 리스크를 프로젝트 회사 앞 넘겨버린다면 상식적으로 금융조달비용이 상승하고, 최악의 경우 bankability 이슈로 인하여 딜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리스크는 리스크를 가장 잘 부담할 수 있는 이가 부담한다는 PF의 원칙은 흔들림 없이 지켜져야 합니다.
수출입은행의 PF 규정은 아래와 같은 11개 거래 관련 리스크를 심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원리금 상환능력 심사, 법적 심사, 기술적 심사, 채권보전장치 심사 등을 진행합니다) 그 모두가 의미가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여기서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① 사업주 신용 위험
② 공사완공 위험
③ 원재료 조달 위험
④ 사업운영 위험
⑤ 판매 위험
⑥ 재무 위험
⑦ 정치적 위험
⑧ 인프라 위험
⑨ 사회환경 위험
⑩ 불가항력 위험
⑪ 그밖에 거래 특성상 심사가 필요한 위험
그리고 PF의 특성은 이 모든 리스크를 각종 계약을 통해 거래상대방에게 일정 수준 이전시키는 것입니다. 좀 거칠지만 리스크의 이전 방식은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업주 신용 위험은 L/C 등 추가 신용보강장치 등을 통해 보다 신용등급이 높은 이에게 이전시킵니다. 공사완공 위험은 EPC 계약을 통해 건설회사에게 이전시킵니다. 원재료 조달 위험은 원재료 공급계약을 통해 공급자에게 이전시킵니다. 사업운영 위험은 O&M 계약을 통해 전문 O&M 회사에게 이전시킵니다. 판매 위험은 Offtake 계약을 통해 Offtaker에게 이전시킵니다. 정치적 위험은 투자협정 등을 통해 사업소재지국 정부에게 이전시킵니다. 인프라 위험 또한 투자협정 등을 통해 사업소재지국 정부에게 이전시킵니다. 불가항력 위험은 보험에 가입함으로써 보험사에게 이전시킵니다.11)
재무위험은 이 모든 리스크 이전 분배 결과를 통해 계산된 현금흐름을 차입금에 대한 원리금 상환액에 대비시킨 결과값12)에 대한 리스크입니다. DSCR 1.8 등 간단한 수치로 표현되는 이 결과값은 대주단의 금융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허들(hurdle) 역할을 합니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레버리지 수준을 결정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 결과, Equity IRR이 특정 수준에 미달할 경우 사업주가 투자를 포기할 수 있는 것처럼 DSCR 수치가 특정 수준에 미달할 경우 대주단은 금융참여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수치가 ‘간당간당할’ 경우 대주단은 위에서 언급한 프로젝트 계약 수정을 통하여 이의 보완을 요구합니다.13) 물론 그 반대급부가 Equity IRR의 축소이기 때문에, 이는 사업주의 이해관계와 대주단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영역입니다.
사회환경위험은 ESIA를 통해 파악된 위험입니다. 사회환경위험은 사업기간 전체에 걸쳐있는 위험이기 때문에 사업 관계자 모두가 관련 규정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만, Oil & Gas 또는 정유/석유화학 사업처럼 사고 등으로 인한 환경위험이 큰 경우에는 보험에 가입하여 이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프로젝트 회사는 아무런 리스크도 지지 않는 것 같죠?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거래당사자들이 자신들이 모든 리스크를 다 지겠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이론적으로 모든 리스크가 철저하게 커버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려면 비용이 너무 높아져 투자의 유인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의 좋은 예입니다. 프로젝트 회사가 A로부터 원재료를 구입, 이를 가공하여 B에게 판매하는 사업입니다. A와는 원재료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B와는 판매계약을 체결했겠죠? 모든 상황이 순조로울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만, 문제는 모든 상황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경우는 force majeure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컨대 원재료 공급계약에는 force majeure로 포함되었는데, 판매계약에는 force majeure로 포함되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프로젝트 회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A가 아닌 이로부터 보다 비싼 가격으로 원재료를 구매하여 이를 가공하여 B에게 공급해야 할 상황이 발생합니다. 해당 원재료가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프로젝트 회사가, 그 결과로 대주단이 입는 피해는 상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계약 미이행과 관련된 LD14)가 서로 매칭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정 사태가 발생하여 프로젝트 회사가 A로부터 원재료를 공급받을 수도 없고, 그 결과 프로젝트 회사가 B에게 제품을 판매할 수도 없는 경우를 가정해 봅시다. 이때 A가 프로젝트 회사에게 지급하는 LD의 규모가 프로젝트 회사가 B에게 지급해야 하는 LD 규모에 훨씬 미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 거래 상대방과의 협상력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계회사가 아니라면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한 프로젝트 회사에게 유리하도록 계약을 체결할 유인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사업주와 대주단은 관련 프로젝트 회사가 부담할 수밖에 없는 리스크의 크기를 수량화하고, 이를 경감하기 위한 대책을 고민합니다. 이 부분이 가장 힘듭니다. 그러나, 고민을 거듭한 끝에 사업주와 대주단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 냈을 때 느끼는 희열은 PF만의 고유한 재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약하면, 사업주는 프로젝트에 존재하는 다양한 리스크를 저글링 하면서 웬만하면 거래 관련 리스크를 제3의 거래당사자에게 (너무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이전시킵니다. 그리고 대주단은 이의 적절성을 점검합니다.
저는 과거 대관업무를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담당자로서 느꼈던 대관업무의 핵심은 ‘관(官)’의 다양한 요구사항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해당 요구를 가장 잘 충족시킬 수 있는 부서에 그 업무를 할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끔씩은 다수 부서가 연관된 업무애 관하여 부서 간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이 때는 어쩔 수 없이 제가 직접 해당 업무를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리스크가 있지만, 하는 수 없죠 뭐. 안 그러면 난리( = 담당 임원 초치 등)가 나니까요. 지금 돌이켜보니 대관업무가 PF 업무와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우연일까요?
래리 커해너는 「AK47」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칼라시니코프는 성공작인 PPSh41 기관단총을 개발한 무기 설계자 게우르그 슈파긴의 말에 종종 이끌리곤 했다. “복잡한 건 쉽다. 단순한 게 어렵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PF가 복잡하기 때문에, 그리고 내용이 많다는 이유로 복잡한 내용을 많이 적어 경영진에게 보고하는 것은 쉽습니다. 오히려 적절한 리스크 분배를 중심으로 복잡한 PF 구조를 간결하게 설명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PF 뿐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지 않나요? 잘 쓴 보고서는 항상 간단명료합니다.15)
1) ‘PPP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PPP를 활용하는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첨부자료를 참조하세요.
2) 준비가 안 된 PPP 사업은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PPP는 기본적으로 매우 경직적인 장기계약이기 때문입니다. 즉, 잘못 디자인한 PPP 사업은 되돌이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된 PPP 사업들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3) EDCF에서도 PPP 사업에 대한 문의가 많습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PPP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당장 정부예산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PPP로 사업을 추진하려 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이는 십중팔구 시간 낭비, 돈 낭비로 귀결됩니다.
4) 이를 위하여 PSC(Public-Sector Comparator)를 주로 활용합니다. PSC는 정부구매 방식으로 프로젝트 비용(NPV, Net Present Value)을 추산한 값으로, 이 값은 PPP의 NPV와 비교됩니다. PSC>PPP 등식이 성립하는 경우에만 PPP 활용의 정당성이 확보됩니다. 다만, PSC 산정방식의 한계(적정 할인율 결정, PPP와 정부구매 간 제도상 차이 보정, 리스크 이전의 가격 정당화 등)가 많기 때문에 Cost-Benefit Analysis 등 다양한 방법을 추가적으로 활용합니다. PSC 분석은 결국 VfM을 확보하기 위하여 하는 것인데, VfM의 개념은 붙임 차료를 참조하세요.
5) 이러한 방식을 ‘government pays PPP’라고 합니다.
6) 이러한 방식을 ‘user pays PPP’라고 합니다.
7) 그러므로 사업주로서는 사업 추진 후반에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좋은 금융자문사를 선정하여 이러한 리스크를 꼼꼼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8) 이를 영어로 표현하면 대주단의 ‘capital at risk’ 혹은 ‘money at risk’라고 부릅니다. 돈을 많이 태웠으니 관심을 많이 가질 수밖에요.
9) 금융협상 과정에서 특정 이슈에 대하여 강하게 대립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제안하는 것들은 대주단의 이익이라기보다는 프로젝트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프로젝트 회사에게 유리한 것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란 식으로 부드럽게 표현하면 현장의 긴장이 완화될 수 있습니다.
10) EPC 계약, O&M 계약, 원재료 공급계약 등 프로젝트 핵심 계약(양허계약 등)을 제외한 모든 프로젝트 계약을 일컫습니다.
11) 물론 PF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금융을 조달하더라도 프로젝트 회사가 이러한 계약들을 체결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PF의 특수성은 금융이 이 모든 계약들에 구체적으로 간섭한다는 것입니다.
12) PF에서는 DSCR(Debt Service Cover Ratio), LLCR(Loan Life Cover Ratio), PLCR(Project Life Cover Ratio) 등이 가장 빈번하게 활용됩니다. 반면, CF에서는 EBITDA/매출액(수익성 점검)과 이자보상배율(안정성 점검) 등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13) 가장 관련성이 높은 계약이 자본금 납입 계약이겠죠? 자본금을 보다 많이 투입시켜 D:E ratio를 낮추면 자동적으로 DSCR 등이 개선됩니다. 물론 배당제한 등 다른 방법을 통해 이를 보완할 수도 있습니다만.
14) Liquidated Damage의 줄임말입니다. 이는 계약위반에 따라 발생하는 손실을 미리 산정해놓아 실제로 계약위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지체 없이 미리 정해진 금액을 지급토록 하는 것입니다. 국문으로는 ‘손해배상액의 예정’ 정도로 번역됩니다. 건설계약에 가장 흔하게 활용되는 두 가지 LD는 건설지연 LD(delay LD)와 성능미달 LD(performance LD)입니다.
15) 직장 선배로서 첨언하면 직장에서의 보고는 보고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고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얼굴로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