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마시고 싶은 한낮의 위스키

by 눈부신꽝


위스키를 제대로 즐기려면 다른 걸 곁들이지 말라고 한다.

순간적인 향과 무게,

목을 타고 흐르며 남기는 감각이 전부인 술.


그와 위스키를 마신 건 우연이었다.

낮술을 마시고 싶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는 위스키를 골랐다.


“오늘은 이게 더 어울릴 것 같아서.”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순간 망설였다.

위스키를 낮에 마시는 건,

낮을 밤처럼 만들어버리는 일 같아서.


어느 바의 창문이 보이는 자리.

오후 두 시.

테이블에는 투명한 유리잔 두 개.

각각 다른 색의 위스키가 담긴 잔을 우리는 한 손으로 들었다.

어느 쪽이 더 독한지 가늠하며,

누가 먼저 마실지 눈으로 주고받았다.


그가 먼저 한 모금 마셨다.

나는 그가 삼키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도 마셨다.

입 안에서 퍼지는 맛이 길었다.

뜨겁고, 묵직하고, 씁쓸했다.

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위스키는 안주 없이 마셔야 한다며? “

내가 말하자, 그는 웃었다.


“응, 그래야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 “

그가 덧붙였다.


그 말이 조금 위험하게 들렸다.

술맛을 온전히 느낀다는 건,

취하는 감각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일 같았다.


그러면,

사람도 그런 걸까.

어떤 사람을 온전히 느낀다는 건,

아무것도 거치지 않고 마주한다는 것일까.


목을 타고 흐른 술의 열기가 서서히 퍼지듯,

우리의 온기도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그는 한 모금 더 마셨다.

잔이 입술을 스치고, 목젖이 천천히 움직였다.

술이 내려가는 자리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가 삼킨 열기를 가늠하며,
나도 한 모금 더 넘겼다.



위스키는 시간을 지연시키는 술이었다.

잔을 기울일 때마다 공기가 묵직해졌고,

우리는 무언가를 말해야 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의 왼손이 테이블 위에서 조용히 머물렀다.

가까이 있지만 멀었고,

멈추지 않지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 손의 존재가 지나치게 의식됐다.


유리잔을 내려놓고 내 오른손을 그 가까이에 두었다.

머뭇거리는 움직임.

한 뼘도 안 되는 거리.


내 오른쪽 새끼손가락과

그의 왼쪽 새끼손가락 사이에,

아주 가느다란 공기가 끼어들었다.


손끝이 스치듯 비껴가며 만들어 낸 미세한 틈.

그곳엔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내쉬는 숨이, 공기를 밀어내며

닿지 못한 열기를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한 잔 더 마실까?”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목이 조금 잠겨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남은 술을 단숨에 비웠다.

목이 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긋이 그를 바라봤다.


위스키.

한 모금씩 천천히 마셔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앞에 남은 밤은,

그럴 여유를 주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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