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엄마를 보러 가는 중이다.
연희동에서 아침부터 달려서 삼척까지
총 세 시간 반쯤.
이제 거의 다 왔다.
텅 빈 고속도로에서 창문을 내리자, 바깥의 바다 내음이 바람과 함께 들어온다.
며칠 전, 작은 이모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너희 엄마, 요즘엔 자꾸 누워만 있더라. 네가 한 번 가서 좀 봐.”
이모의 별일 아니라는 듯한 말투가 오히려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십 대 때부터 평생 삼척에서 한식당 일을 하고 있는 엄마는 류머티즘 관절염이 있어서 약을 달고 산다.
거기에 1년 전부터 도진 통풍이 가끔 심해질 때면,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더 힘들 텐데, 물어봐도 엄마는 늘 돈 얘기만 나오면 말끝을 흐린다.
혼자 누워 있을 엄마가 걱정된다.
빨리 가봐야겠다는 마음에 액셀을 밟아 속도를 올린다.
삼척의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 부는 바람에서 해변가의 비릿한 냄새가 난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 위에 바닷바람에 벗겨진 파란 페인트 자국이 남아 있고,
베란다 창문엔 오래된 레이스 커튼이 바깥 햇빛을 반쯤 가리고 있다.
낡은 은색 철로 된 대문 앞에 잠시 멈춘다.
예전엔 형이 이 집에 있었다.
형은 내가 초등학생일 때쯤, 집을 떠났다.
대학을 간 것도 아니었고, 말없이 나가버린 뒤로는 소식이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 옆에 남은 유일한 자식이 되었다.
끼익, 하고 들어선 후에 살짝 열린 현관문 손잡이를 쥐고 돌린다.
문을 열자 컴컴한 거실, 익숙한 된장 냄새, 안 쪽에서 새어 나오는 부엌 불빛.
낡은 장판에는 구멍이 군데군데 파여 있고,
오른쪽 나무로 된 방문에는 마스크와 소독약 광고 스티커가 붙어 있다.
한쪽 벽엔 오래된 달력이 아직도 작년 10월에 멈춰 있다.
벌써 2020년 8월인데 요즘 엄마의 일상이 보인다.
그런데, 거실에 들어서자 희미하게 알코올 냄새가 난다.
부엌 불빛 너머로 누군가의 흔들리는 뒷모습과 냉장고 옆의 싱크대에 놓인 초록색 소주병들이 보인다.
불현듯, 기분 나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역시나 그 놈이다.
"어, 이 새끼 또? 네가 어디라고 여길 와?"
부엌을 나오자마자 나를 향해 다가오며 욕지거리를 뱉는다.
저 놈은 몇 년 동안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몇 달에 한 번씩 슬금슬금 집에 기어 오기는 했다.
평생을 기생충처럼 엄마 옆에 붙어서는 놀고먹기만 했으면서, 가끔 집에 들어오면 돈이나 훔쳐서 다시 나갈 뿐이었다.
엄마는 왜 비상금을 항상 집에 두는 걸까.
이해해 보려 했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그 꼴을 보기 싫어서 나는 웬만해서 마주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래서 그 짓을 당하지 않은 것이 벌써 10년도 더 되었는데...
얼마 전부터 다시 돌아와서 집에 눌러앉아 살고 있다.
어느새 다가온 그놈이 내 앞에 선 찰나,
눈앞에 손이 올라오는 것이 보이고 내 오른뺨에 '짝' 하고 소리가 난다.
머릿속에 '내가 서른인데, 이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이 스친다.
"못난 놈, 별 볼 일 없는 계집애한테 정신이나 팔려가지고서는."
저 놈이 중얼거리며 나를 향해 쯧쯧, 혀를 찬다.
이미 헤어진 서윤에 대해 더러운 입으로 함부로 지껄이는 벌건 얼굴.
습하고 끈적한 여름보다 저 놈과 같은 지붕 아래 숨 쉬는 일이 더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엄마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미역국과 가자미구이, 김치가 놓인 부엌의 식탁에 앉아서 미역국만 떠먹고 있다.
익숙한 침묵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저 놈의 얼굴을 패버리고 싶지만, 나는 주먹을 꽉 쥐고 또 참아 낸다.
엄마의 태도에 울컥하면서도, 통풍은 괜찮은 건가 걱정하고 있는 내가 참 한심하다.
씨발, 나는 왜 또... 이곳에 와서 이 꼴을...
2008년 여름, 그날도 그랬다.
아버지, 아니 놈은... 항상 자정이 넘어서야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엄마를 향해 큰 소리로 술안주 만들어 내라고 했다.
“야, 안주 좀 안 차려와!”
이 한마디면 엄마는 자다가도 스르르 일어나서 부엌으로 향했다.
수세미처럼 거친 머리카락, 목이 늘어난 티셔츠, 굽은 등과 드러난 등줄기...
나는 그 뒷모습을 보고 늘 입술을 깨물었다.
때로는 안주가 마음에 안 들거나 간이 안 맞는다고 숟가락을 던지고 밥상을 엎기도 했다.
하루는 엄마가 그놈이 던진 숟가락에 맞아서 이마에 멍이 든 적도 있었다.
조금만 옆을 맞았다면, 눈이 실명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게 보기 싫어서, 말없이 내가 라면을 끓여준 적도 많았다.
나는 다행히 라면 하나는 그놈 입맛에 맞게 끓일 줄 알았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이었다.
놈은 여느 때처럼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몸살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고 자고 있는 엄마를 발로 찼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놈을 밀치며 "엄마 그만 괴롭히라고!"라고 말했다.
그러자 놈이 눈을 치켜뜨며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이 새끼가! 어디서 기어올라!"
놈은 소리를 질렀고, 자신의 말에 토를 달았다며 종아리를 걷으라고 했다.
그리고 철제 옷걸이를 옷장에서 잡아채듯 꺼내서 내 나이만큼 때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나는 걷은 바지를 부여잡고 이를 악물며 버티다가, 열대쯤 맞았을 쯤에 윽, 소리를 냈다.
그리고 놈은 소리를 내면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네가 감히 나한테 대들어? 소리 내지 마. 처음부터 간다."
그렇게 내 종아리에 피가 맺혀도 다시 처음부터 나이를 세며 매질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아프고 서럽고 무서웠지만, 나는 점차 '참아야 빨리 끝난다'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그 매질을 세 번 반복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그러니까 54대였나 보다.
엄마는 울며 그만하라고 외쳤고 옆에서 어깨를 잡아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 새끼는 "이 자식이 내 와이프를 꼬드겼다"라며 고집을 부렸다.
'엄마 대신 내가 차라리 맞자.'
나는 밖에서 허허실실 좋은 사람 행세를 하고 다니는 놈이 술만 먹으면 개가 되어 집에 들어오는 것을 알기에, 그날부터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폭력이 늘 반복되는 일상이 이어졌다.
하지만... 엄마는 언젠가부터 그 일상에서 조용히 시선을 피하고는 했다.
그동안 엄마가 고스란히 느꼈을 아픔과 폭력을 봐 왔기 때문에, 나는 왜 날 가만히 두는 거냐고 엄마에게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엄마가 어쩌다 한 번씩 내 방에 구급상자를 가져다 놓으면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이 집에서 내 역할은 '엄마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애써 믿으면서 살았다.
그렇게, 폭력은 내 몫이 되었다.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가 사랑일까?
사랑은 지키고 희생하고 힘들어도 놓지 않는 일이라고...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고 되뇌며 부득거리면서 참는다.
그냥 주먹을 쥐고 이를 꽉 물고 지나가면 된다.
나도 저 놈처럼 폭력적인 쓰레기 새끼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냥 나만 참으면 돼, 나만...
이건 내가 선택한 일이다.
나에게 버티는 건 체념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 하지만,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 《경계에 선 사람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전 10시에 연재됩니다.
혹시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는 분이 있다면
이 이야기가 작은 위로로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창작소설 #연재소설 #정체성 #사랑 #고립 #경계 #경계에선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