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으로 향하는 버스 안,
흐린 하늘과 빗방울이 맺힌 창가에 기대어
창 밖을 바라본다.
시선은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와 건물을 보고 있지만, 어쩐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정신이 멍하고 마음은 텅 빈 느낌—
귀신처럼 창가에 어른거리는 자신을 느끼면서
화면이 꺼진 핸드폰을 들어 얼굴을 확인한다.
슬픈 기운이 느껴지는 흐릿한 얼굴이다.
카메라를 켜서 셀프모드로
화면에 비친 모습을 다시 본다.
벌게진 얼굴과 퉁퉁 부운 눈... 몰골이 말이 아니다.
문득 울컥한 감정이 치밀어 올라온다.
마음이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한평생 믿었던 곳을 등지고 나오는 일이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게다가 부모님까지 져버려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진 것 같은 기분...
혹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한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지키고 싶었다.
그러니까 아픔이 수반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나를 다독이면서, 쉬지 않고 밀려오는 울음을 억지로 삼켜본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나의 삶이 자꾸만 생각나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불광동에 위치한 빛의 성전.
그곳은 언제나 말끔했고, 하얀 것을 강박적으로
좋아하는 문화가 있었다.
항상 흰 옷을 입어야 했으며, 건물 외관은 정기적으로 하얀 페인트로 칠했고,
눈부신 조명은 실내를 환하게 밝혔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평생을 그곳에서 소위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했다.
부모님은 열심 신앙인이었으나 나는 아니었다.
왠지 혼자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그곳의 희고 밝은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점점 의무적인 예배를 드렸고, 헌금도 조금씩 빼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그곳에서 '신앙유약자'로 찍히게 됐다.
한마디로 언제 돌발적으로 터질지 모를, 고위험군의 폭탄이 된 셈이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자 엄마는 나에게 '1 대 1 복음방 교육'을 듣기를 종용했다.
"그게 뭐냐"라고 묻자, 엄마는 "신앙 증진을 위한 교육 커리큘럼"이라고 설명했다.
말은 그럴싸했지만, 사실상 통제가 안 되는 사람들의 감시와 세뇌를 위한 교육이었다.
나는 같은 웅덩이에서만 살아본 물고기 같은 아이였기에, 여느 때처럼 부모님의 말을 따라 그 교육을 듣게 되었다.
지역 부장님이 1 대 1로 진행하는 '복음방'이라는 세뇌 시간은 주 4회 이뤄질 예정이었다.
때는 교육 첫날이었다.
복음방은 예배 때 사용하지 않는 낡은 3층 건물 중 한편에서 진행되었다.
어두운 형광등, 흰색 벽, 딱딱한 나무 의자가 있는 공간이었다.
그는 복음방 교재와 A4용지, 성경책, 필기구를 준비해 왔다.
진행된 교육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면 영생에 이를 수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A4용지에 그림을 그려가며 성경 구절을 읊고 한참을 혼자 얘기하더니, 나에게 물었다.
"이제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니?"
"아니요."
시선을 내리깐 채 나는 짧게 대답했다.
이후 이어진 몇 초간의 정적에서 퀴퀴한 냄새가 감돌았고, 눅눅한 공기가 느껴졌다.
내 눈에 들어온 흰 벽에 난 균열된 틈에는 회색 콘크리트가 보였다.
"하하... 서윤이 넌 참... 본능에 충실한 것 같다."
내 대답에 몇 초간 침묵하던 그가 헛웃음을 지으며 했던 첫마디였다.
그때 내 시선은 목이 늘어난 그의 흰 티셔츠로 향해 있었다.
조금 지저분하고 힘없는 느낌... 그 또한 어딘가 무너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날카로운 판단의 말,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 섞인 헛웃음...
아무려면 어때.
이미 나에게는 그것이 아무 의미 없었다.
난 이제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부장은 나에게는 가망이 없다고 여겼는지,
아무 말 없이 그 이후엔 교육을 진행하지 않았다.
결국 부모님은 그때부터 나를 실망한 눈빛으로 바라봤고, 없는 존재처럼 은근히 외면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봄바람이 기분 좋았던 어느 일요일에는 핸드폰을 꺼두고 아침 일찍 집을 나왔다.
오래간만에 친해진 고등학교 친구들 세 명이 있었는데, 주말에 놀이동산을 가자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빠지고 싶지 않았다.
그날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친구들은 하루동안 무엇을 했고, 무엇을 먹었는지
부모님께 모든 부분을 매일 보고하지 않는다는 점,
일요일에도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점...
나는 돼지고기는 불결하기 때문에 주일에는 먹으면 안 된다고 배웠고, 부모님께 내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보고하는 게 도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 말고 모두가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친구들은 돼지고기가 들어간 케밥을 아무렇지 않게 사 먹었고, 부모님에게 놀이동산 간다는 얘기도 없이 놀고 오겠다는 말만 하고 나왔다는 친구도 두 명이나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그렇게 유야무야 5년 정도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서,
빛의 성전에서의 생활을 애매하게 이어갔다.
2015년, 내가 23살이 되던 해였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보게 된 연희동 나들이 영상이
뇌리에 박혀서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철저한 부모님의 감시 아래에서 자유시간을 갖기란 어려운 일이었지만,
달의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전도를 위해 평택에 있는 요양원에 봉사를 가시고는 했다.
보통 토요일까지 이틀 동안 계시다 오셨기 때문에 나는 그 틈을 이용하기로 했다.
처음 방문한 연희동은 골목골목 숨어 있는 가게들이 재미를 더하는 곳이었다.
덕분에 이 동네는 시간이 느릿하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걷다 보면 카페와 작은 책방, 누군가의 작업실이 나타났고, 나직한 음악 소리와 커피 향이 거리에 천천히 퍼져 있었다.
나는 옷가게에서 빨간색 원피스를 처음 사 입었고, 미리 찾아봤던 와인바를 찾아갔다.
'Oasis Wine bar'
전체적으로 검은색 인테리어에 동그란 오렌지색 등이 여러 개 달려있는 와인바.
조명이 마치 풍등같이 생겨서 동양적인 느낌과 모던한 느낌이 함께 느껴졌다.
그리고 재즈풍의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 처음 들린 음악은 'Just the two of us'였다.
한 곡 한 곡이 끊어지지 않고 다음 곡으로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아,
원곡이 아닌 편집한 플레이리스트인 듯했다.
덕분에 천장의 오렌지색 등이 리드미컬한 선율을 따라 두둥실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마치 떠 있는 비행기구처럼 보이기도 해서 몽환적인 분위기도 자아냈다.
한쪽 벽면에는 물결치는 푸른 조명이 가득했다.
그리고 바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코너에는 내 키보다 조금 더 작은 극락조가 천창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그곳은 나에게 9와 4분의 3 승강장처럼 환상 속 공간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 당시의 나에게 그곳은 이름처럼
정말 오아시스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오아시스에서
도겸오빠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 《경계에 선 사람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전 10시에 연재됩니다.
혹시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는 분이 있다면
이 이야기가 작은 위로로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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