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5-2)

by 산뜻


서윤이 깊은 잠에 든 밤.

거실에는 적갈색 2인용 소파 하나와 1인용 소파 하나, 그 앞에 낮은 나무 테이블.

테이블 위에는 마시다 만 레드 와인이 담겨 있는 글라스가 두 잔 놓여있었다.

서윤은 2인용 소파에 기대 잠들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침대에 눕혔다.

그녀는 어찌나 곤히 잠이 들었는지 여전히 내 침대 위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나는 그녀 곁에 앉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짙은 남색의 하늘 위로 별들이 드문드문 박혀있었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온 밤바람이 흰 커튼을 지나 얼굴을 간질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 부담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거절하는 게 원래 일반적인 나의 반응이다.

나는 왜 굳이 오늘 인터뷰를 수락했던 걸까?

카메라로 비추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한 것도 맞기는 하다.

누군가 나를 렌즈로 비추는 건 아직도 너무 불편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천천히 고개를 숙여, 조심스럽게 그녀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렇게 누군가가 내 옆에서 편안히 잠든 모습을 보는 건... 얼마 만일까. 어쩌면, 처음일지도 몰라.’


하얗고 무방비한 얼굴...

길고 풍성한 속눈썹, 희미하게 보이는 얇은 쌍꺼풀,

하얗고 투명한 피부, 곧게 뻗은 콧대와 동그랗게 끝나는 콧망울, 오른쪽 턱선에 박힌 작은 점 하나,

새근새근 자는 중에도 가지런히 열린 듯 닫힌 아랫입술과 윗입술...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멎었고

그렇게 시선은 입술에 멈췄다.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고 적당히 도톰한 것 같았다.

숨을 죽이며 무너지듯, 그 얼굴 가까이로 그녀에게 상체를 기울였다.

그 얼굴 앞에서 따뜻한 숨결을 느끼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더운 숨을 뱉었다.

내 눈에 담고 있는 그녀의 자는 얼굴과 잔잔한 숨소리가 왠지 모르게 위험하게 느껴졌다.


술기운 탓이었을까.

그녀의 입술 위로 내 입술을 포갰다.

따뜻했다.

말캉했다.

조금 더 힘을 주어 입술을 움직이자,

여린 살이 느껴졌다.

찌르르하게, 마음에 처음 느껴보는 떨림이 요동쳤다.

그녀의 입술을 조심스레 머금자,

머릿속에서는 심장 소리가 쿵, 쿵, 울려 퍼졌다.


그러다—

그녀의 입술이 살짝 움찔했다.

순간, 심장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황급히 더운 숨을 거두고 고개를 들어 벽을 바라봤다.

입술에는 아직도 그 감촉이 생생했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침을 삼켰다.


그날 밤,

방 안엔 시계 초침 소리만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어쩌면 내 귀에서 울리던 쿵, 쿵거리는 심장 소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밤은, 또다시 꿈속에서 반복됐다.

항상 같은 장면이었다.

입술을 움찔이던 그녀가 현실에서와 달리,

꿈에서는 눈을 떴다.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는 나의 어깨를

그녀는 말없이 잡았다.

그리고 뜨거운 눈으로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다가와 그녀가 먼저 내게 입맞춤을 했다.

현실보다 더 뜨거운 입맞춤이었다.

말은 삼켜졌고, 숨소리와 입술이 부딪히는 소리, 서로가 섞이는 소리만 방안에 가득했다.


'숨이 가쁘고 어지럽고 머리가 하얘져...'


현실과 비현실을 적당히 버무려

뇌에서 제멋대로 편집한 꿈.

이 꿈은 늘 여기서 끝난다.


꿈에서 깨어나 눈을 뜬 지금 이 순간, 가슴이 뜨겁고 얼굴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다.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던 핸드폰 화면부터 켜서 확인해 본다.


2022년 10월 8일 토요일 오후 1시 17분

벌써 2년 전 일인데 왜 이러는 거지...

꿈이었는데도 입술의 감촉은 여전히 남아있다.

나는 입술에 엄지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온도를 체크해 보면서 아직도 자꾸 떠오르는 잔상에 붙잡혀있다.

그 여운 속에서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누운 채로 더운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내 안에 그녀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조용히 실감한다.


머릿속 극장은 멈출 줄 모르고 그다음 날 있었던 하루를 자연스레 상영시킨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냉장고에서 차가운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면서 기억에 잠긴다.


그다음 날 서윤은 오늘의 나처럼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나는 조금 열린 문틈으로 그녀가 일어나는 모습을 봤지만, 창피할까 봐 일부러 못 본 척했다.

그녀는 낯선 침대에 당황해하며 방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몇 분 뒤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가방에서 다이어리부터 주섬주섬 꺼내 일정을 끄적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방 가까이 다가가 문을 조심스레 두 번 두드렸다.

"네?"라고 화들짝 놀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방문 밖에서 "밖에서 간단히 식사해요"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서윤과 함께 길을 나서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대화 중에 알게 된 사실은 세 달간의 다큐멘터리 촬영이 곧 끝나간다는 사실이었다.

이어서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어제는 유난히 술기운이 빨리 올라왔던 것 같다"라고 해명했다.

그러고 나서 "초면에 죄송해요..."라고 말하며 붉어진 얼굴을 숙였다.

그때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그녀가 있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하는 척 몰래 웃었다.


사실 그날 아침에 서윤이 거실 탁자에 펼쳐놓은 다이어리에서 10월 8일 칸에 '서진 작가님 생일'이라는 메모를 우연히 봤다.

사전에 내가 생일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선물용 와인을 미리 준비했던 걸까?

다이어리에 중요한 일정을 기록하고, 인터뷰 대상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녀는 계획적인 성향인 듯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와인을 사 온 그녀가 단순히 와인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그 자리에서 성급하게 코르크를 땄다.

그녀는 세 달간 피곤한 일정이 이어진 터라 평소보다 빨리 취했었나 보다.

그녀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대체 내 생일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혹시... 나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갖고 있었나?

... 아니다, 김칫국 마시지 말자.


머릿속에 이런저런 질문으로 혼란한 사이에 자주 가던 브뢰첸 파는 식당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서윤과 합류하기 위해서 카메라 감독이 이미 와 있었다.

그는 투박한 손과 풍채에, 콧수염이 나 있고 파란색 캡모자를 쓰고 있는 40대 남자였다.

그가 멀리서 다가오는 우리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다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어제 인터뷰 잘했냐고 물었다.


그리고 서윤은 "잘했어요"라고 어물쩡 대답했다.


"오늘은 카메라로 말씀해 주신 인터뷰 내용으로 몇 장면만 찍을게요. 서윤 작가에게 들으셨죠?"


호탕한 목소리의 그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괜히 시선을 내리면서 눈을 피하고 "아,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렇게 카메라 감독이 몇 장면 인터뷰를 찍고 나니 시간이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서윤은 감독에게 자신이 녹음한 내용도 있어서 혼자 인터뷰 내용 정리 좀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를 먼저 떴다.


이제 둘만 남은 자리에서 서윤이 나에게 물었다.


"어제 어디까지 인터뷰했었죠? 음... 어제는 다시 한번 죄송해요. 오랜만에 피곤한 상태에서 술을 마셨더니 잠이 들어버렸네요."


나는 괜히 어제 일이 찔려서 애매하게 대답했다.


"아... 어제는 많이 피곤하셨죠?"


그러고 나서 눈을 피한 채, 침을 한번 삼키고 물었다.


"서윤 씨, 어제... 인터뷰 말고 마지막 즈음엔… 무슨 얘기했었는지 기억나세요?”


그때 서윤은 잠시간 정적을 이으며 의미심장한 눈빛이었다.


"잘 생각이 안 나네요. 아무래도 녹음기 들어봐야겠네요."


어딘가 나의 질문과 어긋나 있는 대답.

정말 다 기억이 안 나는 것이었을까?

나는 입 안이 다 말라붙은 것처럼 느껴졌다.




※ 《경계에 선 사람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전 10시에 연재됩니다.

혹시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는 분이 있다면

이 이야기가 작은 위로로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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