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지만, 그럼에도 씁니다

개성 있는 글이란 무엇일까?

by 산뜻

2025년 3월 27일 브런치 스토리 작가로 합격한지 약 두 달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총 40개의 글을 발행했고, 브런치 북 3개의 작품 중 1개의 연재를 마쳤으며, 53명의 구독자 분들이 생겼다.


들쭉날쭉 가끔 구독자 분들이 빠져나가실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쓴다. 가끔 내가 가진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잘 써 내려갈 수 있을지 불안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쓴다. 내가 이런 자세를 처음부터 가진 것은 아니다. 사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불안해하면서 쓰는 행위조차 어려웠었다. 그냥 내 안의 이야기를 온전히 쓰고 싶으면서도 누군가의 시선이 두려웠다. 내가 글 쓰는 행위는 나만의 요새인 ‘치타델레’를 만들기 위한 목적도 있는데, 글을 쓰는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나의 글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모순 속에서 나는 가벼운 글부터 쓰기 시작한 것 같다. 나름의 해결 방안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의도하지는 않았다. 그저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무의식적으로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은 자꾸 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우울함과 무기력함을 달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자 발버둥이었다.


처음 몇 년간은 다이어리에 개인적인 일기를 썼다. 그다음에는 개인 기록용이었던 블로그를 소통과 창작을 위한 독서 블로그로 운영했다. 블로그로 소통하고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한 전환점의 시기는 2024년 말이었다. 어느 날 블로그 이웃이었던 ‘코유’님이 도서 블로그 인플루언서 양성 과정을 ZOOM을 통해 진행한다는 포스팅을 봤는데, 내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던 차에 나는 그 수업을 꼭 들어야 한다는 무언의 예감이 들었다. 나는 약 두 달 정도 그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내 블로그는 독서 블로그가 되었다. 현재 나의 블로그에는 약 20권의 독서 서평이 게시되어 있으며, 몇십명 정도였던 이웃 수가 400명이 넘게 되었다.


수업의 마지막 과정은 1대 1 ZOOM으로 진행한 면담이었다. 그때 코유님이 나에게 했던 질문이 요즘 계속 생각이 난다.


“글을 쓰는 사람 중에는 대중성에 목적을 더 두는 사람이 있고, 알아주지 않더라도 일단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대중들이 늦게라도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오즈(나의 블로그 닉네임)님은 어느 쪽이세요?”


사실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주변의 조언 때문에 내 마음에 솔직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진짜 속 마음은 두 번째에 더 가깝다는 점을 날이 갈수록 느끼고 있다. 내가 최근 연재를 마친 브런치 북 「여백」에 사랑하는 나의 시 ‘늦게 도착하는 편지’에는 늦더라도 언젠가는 도착하는 진심에 대해 담았다.


늦게 도착하는 편지 (일러스트)


최근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Chat GPT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자유롭게 자기 개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 스타일이 확고하고, 대중의 흐름보다 자기 색깔을 밀고 나가는 타입. 다들 ‘나는 이렇게 살아. 이게 나야.’와 같은 느낌의 자기 표현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 기리보이 : 특유의 멜로디컬하고 나른한 톤

- 빈지노 : 또렷하고 세련된 발음, 리듬감으로 완성도 있음

- Camo : 중저음의 시크하고 매끄러운 플로우

>> 그리고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 스타일대로 풀어냄


나도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어느 순간 깨달은 점이 있다. 타인의 시선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극복하게끔 하는 본질적인 갈망이 나에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내 글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나의 진심‘이었다. 이는 내가 글을 쓰는 근원적 이유이다. 글쓰기의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솔직할 용기가 생겼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갑자기 생각이 난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였다. 우리 엄마는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고, 나는 레드브라운 컬러로 염색을 하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새로운 매니큐어를 나에게 시험해 보겠다고 했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웬걸 내가 마주한 머리카락의 색상은 레드브라운이 아니라 ‘불타는 적고구마’ 색상의 머리칼이었다. 붉은 기를 품은 보라색으로 엄청 튀고 쨍했다. 엄마의 실수로 인해 나는 그 시절 꽤 오랜 기간, ‘지하철에 타면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되었다. 이는 자의가 아니라 타의였다. 나는 꽤 부끄럽고 어색했기에 초반에는 얼굴도 함께 붉어졌다. 하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고 애써 자연스럽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점차 머리카락의 붉은 기도 옅어져 갔다.



뜬금없이 이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다. 내 생각에 개성 있는 글이란 타의가 아닌 자의로 쓰인 글이다. 그리고 사람들 눈에 튀려고 애쓰는 글이 아니라, 자기 안에 오래 사유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담담히 꺼내 놓을 줄 아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도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로 나아갈 테고, 세상에 이런 진또배기 글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