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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Mar 05. 2024

나의 삶을 찾으며 흘러가는 삶

강주원 著, <시소인생> [산문]


- 제목 : 시소인생

- 저자 : 강주원

- 출판사 : 비로소




2021년 9월 1일,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처음으로 글을 올린 날이다. 그리 활발하게 활동하는 계정은 아니었고 게시물도, 팔로잉도, 팔로워도 많지 않았다. 나름대로 솟아오르는 마음과 이런저런 의미를 담아 쓴 짤막한 글을 올리며 나보다 훨씬 좋은 글을 쓰는 이들의 게시물을 탐방하던 계정이었다. 지금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민하다가 계정을 완전히 삭제했다. 대신 당시에 썼던 글은 여전히 공책에 남아 있다.


이 책은 몇 년 전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저자의 계정을 우연히 발견하고 게시물 내용이 마음에 들어 팔로워 하면서 알게 된 책. 사실 나는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일에는 공감을 잘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 나보다 특이하고 감수성이 훨씬 풍부한 사람 또한 많다는 사실에 괜히 안도하기도 하며 ― 은근한 감동을 받기도 한다. 우리는 모처럼 같은 시대에 같은 나라에 태어나서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도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면 미묘한 동질감이 마음속 깊이 퍼진다. 그런 이유로 이 책도 습관처럼 장바구니에 담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이런저런 책을 많이 구경하고 구매하던 때였다. 어쩌다 보니 장바구니에 담긴 70여 권의 책 사이에서 무사히 주문되어 우리 집까지 도달한 영광의(?) 책 중 하나가 되었는데, 책장에 꽂힌 날짜에서 한참 더 지나서야 겨우 책을 다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놀라는 순간이 꽤 있었다. 무례한 말이지만 '이 작가님, 나랑 성격이나 가치관이 비슷한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평소 내가 마음에만 덩그러니 담아두고 있던 단상과 흡사한 문장이 많았다. 남들이 어떤 길을 강요하든 내가 원하는 길이라면 묵묵히 걷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도, 어쨌든 다른 사람의 인생과 나의 인생은 다르기에 함부로 참견할 수도 참견받을 수도 없다는 것도, 삶은 고통과 지침의 연속이지만 그 사이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것이 이 무료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고 많은 문장이 존재한다. 특히 좋았던 점은 단순히 생각의 나열만이 아니라 저자 본인의 경험과 인생의 순간순간이 짤막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녹아든 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세 가지 챕터가 있다. 챕터라고 해야 할지, 대주제라고 해야 할지.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연필을 들고 마음에 드는 문장에 살며시 줄을 긋는데, 이 책은 유독 마음에 드는 글도 연필 선을 그은 문장도 많았다. 챕터 별로 하나의 글만 짧게 소개한다. 이 세상에 나와 비슷한 취향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알고 싶다는 음흉한 마음을 아주 살짝 담아서 이 감상문을 쓴다.





Chaprer 1 _ 현실과 이상 차이 : 완벽한 일치에 대한 욕심


저자는 말한다. 과거 자신은 완벽한 직장을 찾기 위해 방황했고, 인간관계를 가질 때에도 자신과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완벽함을 향한 믿음은 그저 허상에 불과했다고.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직장이든 직업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세상 어떤 것이든 불만 하나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은 없다. 완벽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애초에 흠집 없이 '완벽하다'라는 형용사 자체가 너무나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가. 이 세상은 허술하고 모순적인 주관과 불완전한 삶이 무수히 모여 이루어진 존재인데, 그 속에서 어떻게 완벽을 향한 객관적인 기준이 탄생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많은 사람은 완벽을 바란다.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나 또한 그렇다. 완벽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잘 알지만 직업인이나 사회인으로서, 자식이나 연인으로서, 한 사람으로서도 완벽해지기를 원한다. 혹은 나의 가족이나 친구나 동료나 연인이 이상적이고 완벽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당연히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완전한 무결을 향한 갈망이 잘못된 걸까. 완벽함에 다가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나보다 견고하고 완전한 형태를 이루며,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안다. '완벽'이란 건 닿을 수는 없어도 다가갈 수는 있는 존재. 인간은 본래 불완전한 본질을 타고난 존재이기에 본능적으로 완벽함에 매달리는 게 아닐까.


나 역시 자기 자신의 흠과 부족한 점을 훤히 아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알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실수를 반복하고 때로는 간사한 마음을 가진 채 불안정한 순간을 보낸다. 그건 과연 잘못일까. 수치스러워해야 하는 일이 맞을까. 나의 잘못일까, 나를 그렇게 만든 어느 존재의 잘못일까? 사실 구태여 그런 복잡한 문제까지는 풀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삶이지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까. 어차피 모두가 불완전하고 불완벽하니까. 나도 그런 인간이니까. 그걸 인정하는 일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33p - 과거의 나는 왜 그렇게 욕심을 부렸을까. 나라는 인간 자체가 불완전한 사람인데. 왜 외부에는 완전한 것을 요구했을까. 불완전한 것과 불완전한 것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며 완전을 추구해나가는 게 마땅한 지향점인 것을.





Chapter 2 _ 현재와 미래 사이 : 내가 이렇게 될 줄 나도 몰랐다


이 글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삶을 순탄하게 사는 사람이 나온다. 문과 출신이었지만 수능을 망치고 공대를 택한 후,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아 미국 영주권자로 살고 있는 저자의 친구가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나도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라고 말하며 불확실한 인생에 존재하는 수많은 길을 이야기한다.


나도 중학교에 막 입학하던 어린 꼬마를 안다. 키가 작고 얼굴이 동그랬던 그 아이는 바로 나다. 나는 내가 어떤 고등학교에 입학할 지도, 훗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내가 어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일하며 살아갈지 전혀 몰랐다. 미래를 보는 초능력도 없는데 그걸 알 수 있을 리가. 서울의 모 유통업체에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들어갔을 때도 한 달 만에 싹둑 잘려버릴 줄은 몰랐는데, 당시 간접적으로나마 맛본 퇴사의 기쁨은 아주 달고 짜릿했다. 잠깐이나마 학생 신분으로 다시 돌아간 게 기뻤다. 선생님들이 입이 닳도록 말하던, '졸업한 학생들 모두 학교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는 말이 바로 내 이야기가 될 줄도 몰랐다. 고작 한 달이라도 그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삶은 온통 예측할 수 없는 선택지밖에 없어서, 아무리 안전한 길을 택해도 마지막까지 안전하리란 보장은 없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속상했던 순간이야 많다. 설마 진짜 일어나겠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정말 현실이 되어버려서 당황한 적도 많다.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던 변수 때문에 일이 꼬여 땀을 뻘뻘 흘리는 일은 하루마다 부기지수다.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고 동시에 가장 큰 괴로움이다. 다만 살아가면서 무언가가 조금씩 변해가는 건 분명하게 느낀다. 살다 보면 변하는 게 있고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들이 있다. 그게 무엇인지도 그때가 되기 전까지는 미지수라는 걸 생각하니, 정말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서 인생이라는 말도 거짓은 아닌 듯하다.


134~135p -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며 하는 크고 작은 선택의 합이 내 인생을 만드는 것이지, 단 한 번의 결과가 내 삶을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 오늘의 아픈 결과에 내 삶을 비관할 필요 없다는 것을.





Chapter 3 _ 타인과 나 사이 : 내가 즐거운 속도로


축구 경기장 주변 트랙을 돌다 보니 똑같은 풍경이 너무 지루하고 지쳐서, 목표로 했던 거리의 절반만 뛰고 돌아왔다는 저자. 저자는 이를 계기로 '어느 곳이든 내가 재밌게 달릴 수 있는 곳에서, 내가 즐거운 속도로 달리자'라고 다짐했다. 이 글을 읽다 보니 문득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가장 똑똑한 엘리트 학생들만 다닌다는 금융 동아리 소속으로 활동했던 때. 선배님들은 물론 동급생 친구도 하나같이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우등생이라 그 우수한 집단 속에서 도태되는 기분을 느꼈던 시절.


내가 뚜렷한 목표도 계획도 없이 집에서 흥청망청 유튜브나 보고 있었을 때, 그 친구들은 은행이나 공기업 등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내가 건성건성 경제 기사 스크랩이나 하고 있을 때 그들은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1학년 축제 때 전시한 포트폴리오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고작 한 학기 방과 후를 듣고 딴 자격증 하나가 전부였는데, 어떤 친구는 이미 전산회계와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였다. 게다가 어떤 친구는 시험마다 과 수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랴. 2학년 때는 전교에서 손꼽히는 우등생 친구가 동아리에 들어왔다. 성적, 자격증, 대외활동, 교우관계까지 뛰어난 친구였다. 모든 선생님이 그 친구의 능력을 믿었고 일부 선생님은 그 친구를 눈에 띄게 편애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험담하는 학생도 적지 않았고, 실제로 내가 모르는 이런저런 사건이 있었던 것도 같지만 정확한 진위여부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아무튼 그 친구는 3학년 때 다른 동아리로 옮겨갔지만 여전히 우등생인 건 변하지 않았고, 이후 어느 공단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졸업이 다가올수록 점점 조급해졌다. 동급생 친구들은 학교가 문을 닫는 시간까지 동아리실에 남아서 필기시험이나 자격증을 준비했고, 나 또한 반강제로 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동아리실에 꾸준히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늦게 집에 들어가면서도 정작 제대로 공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끌어안은 채 억지로 행하는 어려운 공부에는 일말의 집중력도 나타나지 않았고, 애초에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혼자 주도적으로 공부할 만큼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과 동아리 담당 선생님의 압박은 커졌고 나는 나보다 훨씬 앞서가는 동아리 친구들을 보며 뒤꽁무니 쫓아가기만 바빠졌다.


그렇게 어영부영 남을 따라가지도 못하고 어설프게 달리다가, 뒤늦게 내 속도에 맞춰서 내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방향을 틀었다. 성적과 추진력과 실행력을 모두 갖춘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낙동강 오리알 같은 존재였다. 애초에 금융에는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는데도 당시의 나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잘하고 졸업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3년 내내 꾸역꾸역 그 동아리에서 버텼다. 나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동아리 선생님께 나가고 싶다는 말 한마디를 못해서 그렇게 마음고생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끙끙 앓았나 싶다. 방학에도 학교에 나와서 공부할 정도였으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을 텐데.


아무튼 나는 열아홉 살에 취업부 담당 선생님의 소개를 받아 지금 회사에 들어왔고, 그대로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갑자기 헐레벌떡 일어난 일이었고 급하게 내린 선택이었으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차라리 대학에 갈 걸 그랬나 후회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 선택이 당시 나에게는 최선이었다는 걸 안다. 나는 선생님이 원하시던 은행이나 대기업이나 공기업 따위에는 들어갈 수 있는 인재가 아니었고, 설령 기적처럼 그런 직장에 합격했다 해도 능력과 마음가짐 모두 부족한 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택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악은 피했다. 그렇게 내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을 간신히 찾아냈다. 물론 지금도 끊임없이 찾아가는 중이다. 지금 내디딘 이 길은 겨우 시작점이다. 내가 어디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게 달릴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 더 많은 길을 가야 한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더라도, 그 길을 찾아가는 기나긴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값진 경험이자 인생의 일부분이 될 테니.


201p - 어디서 뛰느냐가 뭐가 중요해, 어디서 뛰든 내가 즐길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지. 정해져 있는 트랙을 따라 뛰는 게 편한 사람도 있고, 불안하고 두려워도 가슴 두근거리는 트랙 밖으로 나가 뛰는 게 맞는 사람도 있는 거지. 각자가 신나게 달릴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그냥 그곳에서 신나게 달리면 되는 거지.




이 책은 '나의 삶'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저 막연한 위로나 뜬구름 잡는 다짐만 가득한 책이었다면 몇 장 읽지 못하고 흥미를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와 비슷하게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과 고민을 안고 살았다는 30대 중반 저자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당사자가 들으면 기분 나쁘게 여기겠으나 미래의 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의 사소한 일상과 다양한 경험을 알아가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다.


특히 저자가 독립 출판사를 차리기 전에 여러 번 직장 생활을 했지만, 어딜 가도 잘 적응하지를 못해서 괴로웠다는 이야기는 現 내향형 직장인으로 사는 나에게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야기였다. 퇴사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는 '역시 사회인의 퇴사는 현실과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무모하고 용감하고 위험하지만 그래서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회사에서는 말도 없고 굳이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 내향인이지만, 밖에서는 강연도 하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는 외향인이라는 글에도 상당히 공감했다. 알고 보면 나도 그런 사람이다. 학교와 회사에서는 극히 조용하지만 친구들이나 마음 맞는 사람과 만나면 쉴 새 없이 말하고 즐거워하며 웃는 사람.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역시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구나.


커다란 고통, 외로움, 고난과 작은 행복, 즐거움, 따스함이 공존하는 인생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살며시 추천하고픈 책이다. 거지 같았던 오늘과 버러지 같을 내일이 반복되는 삶. 그래도 나는 오늘을 무사히 견뎠고 내일을 무사히 견딜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내 인생이 시소였으면 좋겠다. 훅 내려가면 언젠가 다시 올라올 때도 존재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시소가 아니라 내리막길 경사로다. 경사로인생이 아닌 시소인생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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