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대기만성의 사람

기억의 화실

by 그냥 그림이

아빠의 꿈을 자주 꾸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 돌아가신 아빠가 꿈에 찾아오실 때가 있다.


오늘 꿈은 아빠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으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그 꿈속에서 나는, 그림을 그리기 힘들어하는 아빠를 보며

“간단하게 그릴 수 있는 재료를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빠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살아온 날보다

그림을 그리며 살아온 세월이 훨씬 더 긴 사람이었다.


아빠가 내 생일을 알까?

내 마음을 알아줄까?

이런 질문들에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단 하나 확신할 수 있었던 게 있었다.


아빠는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내일도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대기만성의 사람

인사동에 있는 6층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아빠랑 두런두런 얘기를 나눌 때였다.

아빠와의 대화 주제는 거의 작품에 대한 얘기들이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아빠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내가 꺼낸 화두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이었다.

말 그대로 큰 그릇은 만들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

“아빠 역시 큰 그릇을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지금은 그것을 몰라주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 말을 하자 순간, 아빠의 눈이 살짝 촉촉해진 것 같았다.


아빠는 감정을 쉽게 표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물론 화도 잘 내고, 주장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건 언제나 명분과 이유가 있을 때였다.


누구나 가진 섬세한 감수성 같은 것은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분이었다.


그래서 그날 본 아빠의 눈빛은,

나에게 오래 남았다.




나는 지금도 아빠가 대기만성의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때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아빠의 작품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빠의 그림은 웅장하다.

단순히 크기만 큰 것이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인물 하나하나까지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다.


어떻게 그렇게 세밀한 선을 그릴 수 있었는지

늘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다른 민화 작가들조차

아빠의 작품의 웅장함과 세밀함에 놀랄 정도였다.


사람들이 집에 걸어두길 좋아하는

적당한 크기의 그림만 그린 게 아니었다.

아빠는 모두를 놀라게 할 만큼 거대한 작품을,

그 세밀한 붓질로 완성해 보여주고 싶어 했다.

9-예범박수학.jpg 예범 박수학- 괴산 청천면 쌍곡계곡 십장생(2010년)
9-예범.jpg 괴산 청천면 쌍곡계곡 십장생(2010년)




그 큰 그림들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까.

아무도 몰라주지만

큰 그릇을 만들어 보여주기까지

그 과정을 버텨내며 얼마나 자기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 했을까

분명 고독하고도 고된 길이었을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아빠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몸이 아플 때에도 붓을 놓지 않았던 아빠.


그래서였을까.

오늘 꿈에서도 나는,

“아픈 아빠가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박수학 브런치9.jpg 예범 박수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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