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놀고 싶을 때는 놀아도 돼

by 그냥 그림이

어릴 적에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심한 죄책감이 들 때가 있었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는 시간 낭비 같아 보여도, 내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예외였다.




아빠의 화실에 그림을 그리러 갔던 어느 날,

그날은 출발하기 전부터 너무너무 가기 싫었고

의무감에 억지로 발걸음을 옮긴 날이었다.


힘겹게 앉아 있었지만 마음은 잡히지 않고,

무엇을 그려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는 그런 날이었다.


그때 아빠가 말씀하셨다.

“놀고 싶으면 놀아.”


평소 엄하신 분이라 화가 나셨나 싶어 아빠의 얼굴을 살폈는데,

이어서 들려온 말은 뜻밖이었다.


“그림은 안 하고 싶을 땐 절대 안 그려진다.

하고 싶을 때 해야 그림도 더 잘 나온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마치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화실을 나와

인사동 일대 골목골목을 휘저으며 구경하던 기억이 난다.


평소 그런 말을 할 것 같은 아빠였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겠지만,

엄격하고 무서웠던 아빠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에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늘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곤 했지만,

어쩌면 그 느슨한 시간들이야말로 나를 더 깊게 채우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오늘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도,

그런 시간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이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오늘이 도무지 글을 쓰고 싶지 않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의 말처럼,

오늘은 굳이 글을 짜내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해 본다.




글도 그림처럼 억지로 쓰려 하면 더 안 나온다.

(아마도)


그럴 땐 그냥 잠깐 쉬었다가, 마음이 동할 때 다시 시작하면 된다.

오늘은 아빠 말처럼, 그냥 이렇게 말해주기로 한다.


“괜찮아, 오늘은 놀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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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