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어떤 상황에서도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

기억의 화실

by 그냥 그림이

내가 아빠에게 민화를 배우러 다닐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조언이 있었다.

“선이 굵으면 촌스러워.”


민화에서 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두서미법(頂頭鼠尾法)’이라는 방법이 있다.

붓을 종이에 댈 때에는 못의 머리처럼 맺히듯 시작하고,

그 뒤에는 점차 힘을 빼며

쥐의 꼬리처럼 가늘어지도록 강약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그 강약 조절이 서툴러

굵은 선을 긋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아빠에게서

“선이 굵으면 촌스럽다”는 말을

거듭해서 듣게 되었던 것이다.




아빠의 조언은 지금도 불현듯 떠오른다.


어느 날은 이런 퀴즈를 내셨다.

“가장 고상한 색은 무엇일까?”

나는 “금색?” 하고 대답했지만

아빠는 “흰색”이라고 했다.

그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말이

점점 마음에 와닿는다.


나는 초록색을 좋아했지만

아빠는 빨강을 좋아하셨다.

그리고 오방색에 없는 초록을 즐겨 쓰던 나에게

“초록색은 잘못 쓰면 촌스러워”

라고 하시던 기억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내가 운영하는

‘기억의 화실’의 메인 색은 초록색이다.)




아빠가 해주신 조언 중 가장 마음에 남는 건 이것이다.

“그림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름다워야 한다.”


어떤 그림이든, 어떤 주제를 그리든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반드시 담겨야 한다는 말씀.


나는 이 말을 유난히 좋아했고,

그림을 그릴 때마다 늘 떠올렸다.




말에는 힘이 있다.

무심히 던진 한마디 같아도

그 말은 오래 남아 나를 이끌어 준다.

내가 선을 굵게 긋게 될 때마다

“아, 선이 굵으면 촌스럽다 했지.”

스스로 되뇌곤 한다.




사람의 생애는 유한하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100년을 넘기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사람이 세상에 남긴 무언가는

다른 이들의 삶에 영향을 주며

생명력을 이어간다.


아빠가 남긴 많은 그림들은

우리 자매에게 ‘관리’라는 숙제를 남겼다.

하지만 동시에,

이만큼이나 세상에 남길 것을

만드셨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빠의 그림들.

그리고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빠의 말들.

나는 그 영향력 속에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몽유도원도_박수학.jpg 예범 박수학_ 몽유도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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