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화실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이사 오기 전까지,
나는 과천에 살고 있었다.
그 시절 내가 살던 과천은 산과 과수원이 어우러진, 말 그대로 시골 동네였다.
우리 가족은 배 과수원을 하던 집에 세를 들어 살았고,
주인집 마당 안쪽엔 우리 집이,
바깥쪽 뒤편엔 아빠의 화실이 있었다.
화실 옆에는 콩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커다란 해바라기꽃도 심어져 있었던 게 기억난다.
그 꽃이 피어 있던 뒤뜰 마당에서 아빠는 종이를 말리기도 하고, 작품 사진을 찍기도 했다.
밤이 되면, 그 화실에서는 특별한 학당이 열리곤 했다.
그 시절 우리 근처에 살던 나와 동갑인 고모의 아들, 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을 모아 아빠가 천자문을 가르쳐 주셨다.
아빠는 원래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 수업 시간 동안 유독 재미있어하는 표정을 자주 지으셨다.
하루에 몇 자씩 배우고, 읽지 못한 사람은 근처 개울가까지 뛰어갔다 오는 벌칙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정겹고 소박했던 순간들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빠는 카메라를 들고 우리 자매를 데리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 주셨다.
나는 미취학 아동이었기 때문에 그 시절의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
계절마다 찍은 사진들은 사진이라는 증거 덕분에 잊히지 않았다.
기억에는 몇 번 뿐이었던 것 같은데,
사진 속 옷차림을 보면 생각보다 훨씬 자주 찍어 주셨던 것 같다.
전혀 다정하지 않고 무뚝뚝했던 아빠가 계절마다 사진을 찍어 줬다는 사실이
지금도 조금은 낯설고 놀랍다.
아빠는 아마도, 추억을 소중히 여겼던 사람인 것 같다.
우리 가족 중 사진첩을 가장 귀하게 여긴 사람도 아빠였다.
지금처럼 이미지 파일로 저장하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그 시절엔 앨범 한 장 한 장에 사진을 붙이며 하나의 컬렉션을 만들어 갔다.
심지어 어떤 앨범은 펼치면 멜로디가 흘러나오기도 했는데,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해서 여러 번 펼쳐 보았던 기억이 있다.
아빠는 작품을 위해 찍은 사진들도 하나도 버리지 않으셨다.
얼어붙은 겨울 폭포, 각종 자연 풍경, 여행지의 명소들…
사진들은 먼지와 함께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이사를 다니며 화실을 옮길 때마다 도 끝까지 남아 있었다.
지금의 나,
고화질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보기엔
‘이걸 왜 가지고 있었지?’ 싶은 사진들도 있었지만,
아빠는 단 한 장도 쉽게 버리지 않으셨다.
추억하는 것, 기록하는 것.
아빠는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가 찍어 준 사진들엔
아빠로서 말하지 못한 ‘정’이
그리고 기록자로서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좌표.
그게 바로, 아빠가 남긴 사진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