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내 서랍 깊은 곳의 화조도

기억의 화실

by 그냥 그림이

(사실 나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나왔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께 꽃다발이나 작은 선물을 챙겨갔다.


나도 선생님께 예쁜 꽃다발을 선물하고 싶었지만

당시 넉넉지 않던 우리 집 형편에 그런 여유는 없었다.


어느 해 스승의 날 아침,

부모님은 나와 언니에게 서류봉투를 하나씩 건넸다.

봉투 안에는 두루마리처럼 말린 화조도가 들어 있었다.

아빠가 직접 그린 그림이었다.


솔직히 말해 실망이 컸다.

향기로운 꽃 대신, 낡은 서류봉투에 담긴 그림이라니.


어릴 적 나는 그런 선물의 가치를 알지 못했다.

(뭘 잘 몰랐던, 어리바리한 아이였다는 걸 이해해 주길 바란다.)


모범생인 언니는 말없이 봉투를 가방에 넣고 출발했다.

나는 억지로 그림을 가방에 넣었지만

결국 담임 선생님께 건네지 못했다.

교실에서 선생님은

여러 아이들에게 꽃과 선물을 받으며 웃고 계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내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 그림을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몰래 숨겼다.

혹시 들키게 되면

“서랍 뒤로 빠져서 잃어버린 것 같아”라고 말할 계획까지 세워두었다.


저녁, 부모님은 선생님의 반응을 물으셨고

나는 언니를 따라 대충 얼버무렸다.


그 후로 서랍이 열릴 때마다

혹시 들킬까 봐 가슴이 철렁였다.

하지만 의외로 그 비밀은 오래 지켜졌다.




2년쯤 지난 어느 날,

엄마가 내 책상을 정리하시다가

그 서류봉투를 발견하셨다.

“이거 왜 안 드렸니?”

나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크게 혼내지는 않으셨고

“곧 스승의 날이니까, 이번에 드리자” 하셨다.


그래, 결국 내가 해야 끝나는 거구나.

체념하듯 그해 스승의 날,

2년간 내 서랍 속 깊이 숨겨두었던

그 화조도를 담임 선생님께 드렸다.

(2년 만에 전혀 다른 담임선생님께 그림이 배달된 것이었다.)


놀랍게도 선생님은

생각보다 훨씬 기뻐하셨다.

정확히 그 선생님이 누구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지으셨던 함박웃음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아빠가 그린 화조도를 받으신 선생님은

아직 그 그림을 가지고 계실지는 모르겠다.



화조도-1-1.jpg


지금은 꽃다발보다 아빠의 화조도가 훨씬 가치 있는 선물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림을 그냥 ‘생활용품’처럼만 여겼다.

사람들이 그림을 그렇게 좋아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음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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