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아빠가 그려준 아파트 풍경

기억의 화실

by 그냥 그림이

초등학교 시절, 풍경화를 그려오는 미술 숙제가 있었다.

내가 그 숙제를 받았을 때,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좋겠다. 아빠가 화가잖아. 부탁하면 되겠네?”

그 말이 왜 그렇게 신선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나는 당시 어리바리한 아이였고,

아빠가 화가라는 사실이 내 숙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 말이 꽤 기발하게 느껴졌다.


기분이 좋아져서 집에 오자마자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나 풍경화 숙제 있어. 아빠가 대신 그려줘!”

지금 생각하면 너무 순진해서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진지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아빠가 나의 숙제를 도와주는 일은 결코 없었다.


아빠는 나에게

“숙제는 스스로 하는 거야.”

아빠는 너무도 당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에야 그 말이 왜 중요한지 알지만, 그때의 나는 억울하고 속상했다.

왜 우리 아빠는 이렇게 실력도 좋으면서 안 도와줄까.

다른 친구들 부모님은 화가가 아니어도 도와주던데.

나는 울면서 숙제를 했다.

그 숙제를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아빠가 나에게 16절지 크기의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우리 동네 아파트 풍경이 그려진 연필 드로잉.


분홍색과 보라색이 어우러진, 노을빛 같은 색감이 얹혀 있었다.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그림이었지만, 아이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원근감이 살아 있었다.

초등학생이 그렸다고 하기엔 너무 뛰어난, 완성도 있는 스케치였다.

‘이제 와서 뭐지? 난 숙제 이미 다 했는데.’

그림을 받아 든 순간,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아빠가 말했다.

“이 그림 보면서 많이 연습해.”


아빠는 나의 숙제를 도와주는 것보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리게 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그림이 꽤 마음에 들어 한동안 계속 간직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그림을 보면서 연습을 하진 않았다.)


그때도 느꼈지만,

아빠는 내가 기대하던 ‘다정한 아빠’는 아니었다.

오히려, 무서운 선생님 같았다.

가끔 아빠의 그림 제자분들을 만나

그들이 겪었던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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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그려줬던 그 아파트 풍경은

완성된 작품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실물은 사라졌지만,

내 마음 한편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 그림이

아빠의 방식대로 건넨 응원이었는지는—

이젠 물어볼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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