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화실
아빠는 민화 작가였다.
그리고 궁중장식화 전수자이기도 했다.
민화와 궁중장식화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실력이 뛰어난 당대의 화가들이 도화서에 모여
왕실과 상류층을 위해 그림을 그린 것이 '궁중장식화'이고,
서민들은 그들 나름대로 민가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며 '민화'를 그렸다.
하지만 두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소망’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장원급제를 바라며 어변성룡도를 붙이고,
누군가는 부귀를 꿈꾸며 모란도를 그렸다.
“잘 되게 해 주세요”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한 그림들.
그런 점이 나는 늘 흥미로웠다.
이 글을 쓰면서
‘아빠를 닮은 그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떠올랐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책가도였다.
책가도를 보면,
아빠의 화실에 가득했던 그 많은 책들이 떠오른다.
아빠의 짐을 정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도 바로 그 수많은 책들이었다.
무겁고 크고, 쉽게 버릴 수 없는 책들이 화실 가득했다.
책가도는 학문과 배움을 상징한다.
내가 아빠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늘 노력하고 변화하려는 자세였다.
언제나 그림에 대해 연구하고,
자료를 스크랩하고,
책을 사서 보고,
그렇게 모은 것들을 실제 그림에 반영하셨다.
그리고 청와대에 걸린 아빠의 책가도도 생각난다.
1991년, 청와대 본관이 완공되면서
아빠는 공식 의뢰를 받아 책가도 그림을 그렸다.
나는 그 그림을 사진으로만 보다가
2018년 청와대 사랑채에서 열린 ‘청와대 소장품 특별전’에서
처음으로 실물을 보았다.
너무 크고, 너무 멋져서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빠의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빠는 그 그림을 꽤 자랑스러워하셨던 것 같다.
내가 민화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기본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빠는 그 청와대 책가도를 따라 그리게 하셨다.
지금도 그때 내가 따라 그린 책가도가 집에 남아 있다.
아빠는 종종 말했다.
“내가 옛날에 태어났으면 도화원의 화가가 됐을 거야.”
그 말은 나도 여러 번 들었을 정도다.
아빠는 고증을 중요하게 여겼다.
궁중장식화 같은 전통 양식을 매우 소중히 여기셨지만,
그에 못지않게 창작의 중요성도 강조하셨다.
그건 아마,
아빠가 누구보다 많은 공부와 고민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움만 좇는 그림이 아니라,
자료를 찾고, 새로움을 갈구하며 그린 그림들이었기에
더 단단한 철학이 담겨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옛 도화서의 화원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그리고,
그러면서 전통을 스스로 확장해 나갔던 사람들.
그래서 나는,
아빠가 형식을 지키든, 형식을 깨든
그 모든 순간에
진짜 전통을 지켜냈다고 믿는다.
더 아름다운 것을 그리고,
더 새로운 무언가를 그리고 싶어 했던
그 갈망 자체가, 바로 '전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가도를 보면
지금도 그 시골 화실의 수많은 책들이 떠오른다.
책을 옮기는 것조차 힘들었던 기억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처음으로 아빠에게 배우며 따라 그린 그림이기도 해서
나 역시 지금도 책가도를 무척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