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화실
그날은 아주 평범한 토요일이었다.
대출 기한이 임박한 책을 반납하려고 도서관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조금 특별했던 건, 그날이 아빠의 생신이었다는 점이다.
아빠께 전화를 여러 번 걸었지만 받지 않으셨다.
그게 이상하긴 했지만, 워낙 고집 있고 혼자 계시는 걸 좋아하시던 분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외출하려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의 번호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받았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낯선 남자의 것이었다.
경찰이라고 자신을 밝힌 그는, 조심스럽게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아빠는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많은 사람들의 아버지는 ‘회사 간다’고 말하지만,
내게는 ‘아빠는 화실에 간다’는 말이 더 익숙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나의 아빠는 아버지로서 살아가기보다, 예술가로 존재하는 데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아빠가 돌아가신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그동안은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워낙 고집이 세셨기에, 그 고집만으로도 백 년은 사실 것 같았다.
가끔 아빠의 전시 도록을 넘겨볼 때,
혹은 아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더는 물어볼 수 없을 때,
아, 정말 이 세상에 안 계시는구나, 문득 실감하게 된다.
그게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살갑지는 않았지만,
무뚝뚝한 딸내미가 가지고 있는 아빠에 대한 기억들을
그냥 사라지게 두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인사동에서 아빠의 1주기 회고전이 있었다.
거기 다녀온 후에야 알았다.
아빠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었구나.
내가 몰랐던 아빠의 얼굴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빠를 그리워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위안과 감사함이 들었다.
그렇게 아빠를 알아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더 오랫동안 기억되고 싶을 아빠를 위해
‘기억의 글’을 시작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