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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an 12. 2019

작은 것들의 이름

리스본 여행 에세이 #8. 시아두




크지 않은 창문으로 짧게 들어오는 한낮의 햇빛. 그것이 아까워 화분을 샀다. 화분 가게 주인이 식물의 이름을 알려주었는데 집에 오는 길에 모두 까먹었다. 핑계를 대자면 그 이름이 식물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짙은 녹색의 잎, 그 사이의 하얀 줄, 얇은 가지와 마디 끝마다 오르는 새싹. 그것을 담기에 적당한 이름이 아니었다. 그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바이후 알투.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면 도착하는 이곳은 높은 땅이라는 이름 외에는 어떤 이름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곳이다. 바로 아래 바이샤 지구와는 높이의 차이 때문인지 리스본의 햇볕이 한층 강하게 닿는다. 그리고 그런 햇볕이 가장 잘 내리쬐는 곳마다 죽은 자들이 서 있다.

바이후 알투의 중심이라 불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름은 ‘시아두’다. 시아두는 입에서 바람이 새는 소리를 뜻하는 포르투갈어다. 그들은 왜 이곳에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 답은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이 거리를 걸었던 죽은 이에게 물어야 한다. 마침 그가 저기에 있다. 


사제복을 입은 시인 안토니우 두 에스피리투 산투. 그는 사제활동을 하다가 이 거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과장된 포즈를 취한 채, 바람 새는 소리로 시를 노래했다. 리스본 사람들은 그 소리가 좋았다. 건강 문제로 발음이 새어 ‘시아두’ 소리가 났지만, 그것이 이 거리와 퍽 닮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높은 땅에 오르는 바람은 숨이 새나가기 마련이니까. 


안토니우는 이 높은 땅에 걸어 올라온 뒤, 사제복을 벗었다. 그리고 시인이 되었다. 그것이 거리와 사람, 그리고 리스본과 호흡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가 노래한 것은 당연히 바이후 알투 거리 위의 이야기였다.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시아두 거리를 걷는다. 높이를 제한다면 그가 살았던 때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16세기, 그가 살았던 그 시절에는 노동자들이 이 거리를 걸었다. 하지만 지금 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관광객의 옷을 입고 있다. 또, 그들을 위로해 준 술집과 작은 가게들은 화려한 상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단 하나,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때도 지금도 리스본 사람들은 시아두 소리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시인 안토니오에게 ‘시아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그가 죽어 소리가 멈추자 리스본은 그의 노래가 이어지길 바라며 도시의 이름을 시아두라 불렀다. 그렇게 한 시인은 도시가 되었고, 그곳을 걷는 이들에게 지금도 노래를 불러준다. 지금 내 머리칼에 스치는 높은 바람에 담겨서.



 거리를 걷는 내내 생각해 봤지만,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화분의 원래 이름 말이다. 대신 내가 지어준 이름은 기억한다. ‘스플리트’였다. 크로아티아의 한 도시 이름을 가져온 이름이었다. 딱히 크로아티아산 식물도 아니었고, 그곳을 떠올릴 모습도 아니었다. 하지만 스플리트라 부르고 싶었다. 거리 전체가 대리석으로 채워져 햇볕을 받으면 그 자체로 도시가 붕 뜬 것만 같던 곳. 그 기분 좋은 층위를 이 화분이 간직하고 있는 듯 보였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스플리트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깨져 버렸다. 잠시 멍해졌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딱히 슬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참 동안 깨진 스플리트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화분 안에서 물과 햇볕을 잔뜩 머금어 단단히 뭉쳐진 흙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사이로 스플리트의 얇은 뿌리가 뻗어 있었다. 창고 구석에 넣어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깨진 화분 유리를 치웠다. 스플리트는 흙과 뿌리를 봉지로 감싸 세웠다. 남은 흙을 쓸려는데 물을 머금어서인지 잘 쓸리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떨어진 흙을 몇 번이나 되쓰는 시간 동안 그 도시를 기억할 수 있었다. 풍선처럼 떠 오른 가볍고 사랑스러운 스플리트. 그곳을 다시 걸을 수 있었다. 



이름은 기억을 담는다. 아무리 특별한 기억이라도 이름이라는 상자가 없다면 쉽게 찾아 꺼낼 수가 없다. 리스본 사람들은 그것을 잘 아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보이는 모든 것에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일찍이 이런 일하는 이들을 시인이라 불렀다. 말하자면 리스본은 시인의 시선이 만든 나라, 지금 걷는 이 길은 시인의 노래로 완성된 길이다. 

이제 조금 더 천천히 걸어야 한다. 

거리 곳곳에 선물처럼 놓인 상자들을 마주하기 위해선 조금 더 천천히 걸어야 한다.




글 | 최동민

제작 | Studio 1.9.8.4

메일 | groscalin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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