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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an 11. 2019

천장

리스본 여행 에세이 #7.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




막다른 길이다. 너무 잦게 이곳에 도착한다. 도착할 때마다 이 길은 선택을 강요한다. 머무를지, 돌아갈 것인지. 나는 대부분 머물렀다. 되돌아간다면 그뿐. 잘 설계된 미로에 갇힌 것처럼 다시 이 길 끝에 닿을 것을 안다.


그때도 그랬다. 막다른 길에서 나는 머물렀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있다 보면 서서히 꿈에서 깨어난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다. 아마도 꿈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눈을 뜬다고 곧장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눈만 깜빡인다. 그때 보이는 것은 익숙한 천장뿐이다.


꿈에서 본 막다른 길과 비슷해 보이는 익숙한 천장.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화려한 오루 거리. 그곳에서 갑작스레 막다른 길을 만나는 것은 이방인에게는 어리둥절한 경험이다. 이때 당황하지 말라며 친절한 리스본 사람들은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Elevador de Santa Justa)’를 만들었다.


도심의 한 가운데서 길이 끊기고, 가파른 경사를 만나는 경험. 그것은 아무 도시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낮은 땅’을 의미하는 리스본의 바이샤 지구를 걷다 보면 필연적으로 몇 번의 막다른 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막다른 길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머물지 되돌아갈지가 아닌, 오를지 되돌아갈지를.


선택을 도와주는 것은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네 개의 엘리베이터다. 그들은 가파른 경사 앞에서 고민하는 이의 떨리는 다리를 위로해준다. 그래서 선택은 간단해졌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는 45m를 수직으로 오른다. 이는 케이블카처럼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르는 다른 세 곳의 엘리베이터와의 차별점이다. 말하자면 엘리베이터라는 명칭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렇게 수직으로 끝까지 오르면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 서면 지금껏 걸었던 오루 거리를 비롯, 아우구스타 거리와 그 끝의 코메르시우 광장. 그리고 테주강의 장관이 펼쳐진다. 이것은 언덕의 도시 리스본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선물을 잘 간직한 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그렇게 막다른 길 너머, 리스본의 천장에 도착했다.




글 | 최동민

제작 | Studio 1.9.8.4

메일 | groscalin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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