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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an 11. 2019

쓸모없는 것들의 자리

리스본 여행 에세이 #6. 오루 거리




그저 길을 걸었을 뿐인데 가방이 점점 무거워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내가 오루(Ouro) 거리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금의 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코메르시우 광장 왼쪽에서 시작되는데 상업 광장이란 이름의 코메르시우와 가장 어울리는 길이다. 왜냐하면 거리 양쪽으로 펼쳐진 수많은 상점 때문이다. 

리스본이 재건된 이후 지금까지, 이 거리가 화려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물론 파리의 샹젤리제에 비한다면 소박하다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화려한 샹젤리제 거리의 모델이 리스본, 그중에서도 이 오루 거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지금 서있는 이 길이 보다 웅장해 보이는 기분좋은 착각에 빠진다. 


오루 거리를 따라 올라가며 신호등에 멈춰 설때마다 가방을 들여다본다. 코르크 컵 받침, 정어리가 그려진 와인 오프너, 빠질 수 없는 냉장고 자석과 어디 상자에 들어가 찾아볼 수 없을 예정인 엽서들까지… 보기만해도 기분 좋아지는 쓸모없는 것들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걸 다 뭐에 쓰려고?”나 “이걸 다 어디에 두려고?”와 같은 질문은 의미가 없다. 이것은 이방인이 타국을 차곡히 쌓아둘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이런 적당한 핑계거리를 위안삼아 횡단보도 맞은편에 보이는 저 가게에 들어가려 한다. 그리고 저곳에서 리스본에 왔다면 반드시 담아야 할 물건을 사려 한다. 



‘샤(Chá)’

포르투갈은 작은 나라다. 게다가 대륙으로 향하는 길은 스페인에 막혀 있다. 그들에게 허락된 길이라고는 그 끝에 낭떠러지가 있다 믿었던 대서양의 바다 뿐이었다. 그들은 노를 저었다. 세상의 끝. 그곳에 낭떠러지가 있다면 그뿐이었다. 이 작은 나라에 낭떠러지가 아닌 곳은 없었으니까. 

노를 젓는 이들은 나침반의 얇은 바늘에 의지해 똑바로 나아갔다. 그들의 배 뒤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더는 노를 저을 필요가 없었다. 그저 바람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가면 그만이었다. 노를 젓던 손을 멈춘 포르투갈인들은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수평선이 보였다. 리스본의 땅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어디가 낭떠러지일까?” 

선원들은 두려움과 설렘을 담아 질문을 던졌다. 답을 알고 있는 이는 바람 뿐이었다. 바람은 선원들을 아프리카로, 브라질로, 인도로, 중국으로 안내했다. 일찍이 낭떠러지라 생각한 곳이었다. 그들은 가방 한가득 짐을 실었다. 타국을 기억하고자 하는 낭만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전리품이자 오래전에 잃어버렸다 믿은 자신들의 재산이었다. 그렇게 금과 향신료, 말을 하는 새, 심지어 인간까지 배에 실렸다. 그리고 수평선을 넘자 다시금 리스본이 나타났다. 



가게를 나서자 가방이 조금 더 묵직해졌다. 새로 담은 것은 차 상자다. 포르투갈을 통해 인도와 중국에서 들어온 차. 그들은 ‘샤’라고 부르는 그것을 리스본에서 즐기기란 쉽지 않다. 리스본 사람들은 커피는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지만 차는 그렇게 즐기지 않는다. 그것은 선원들이 동양을 오가던 그때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포르투갈의 왕녀 카타리나 디 브라간사는 영국으로 시집을 가면서 거대한 선물이 될 인도의 뭄바이와 북아프리카의 탕헤르를 가져갔다. 그리고 그것으로는 부족해 보였는지 큰 선물 틈에 리스본에는 필요없는 작은 상자를 넣었는데, 그 안에는 차가 들어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까지 영국에 남은 것은  뭄바이나 탕헤르가 아닌 작은 상자뿐이다. 지금 내 가방에 들어있는 것과 같은 작은 상자 말이다.



남은 오루 거리를 마저 걸으며 머릿 속으로 집을 정리한다. 냉장고에는 이미 이곳저곳에서 모은 마그넷과 사진들로 한쪽이 가득찼다. 냉장고를 한대 더 사지 않을 거라면 몇 개를 정리해 넣어둬야 한다. 냉장고 정리가 끝났어도 할 일은 태산이다. 정어리 모양의 오프너는 아일랜드 식탁에, 코르크 컵 받침은 거실의 작은 탁자에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끝에서 가져온 차 상자. 이것은 원두를 담아두는 유리병 위에 쌓아두어야 할 것이다. 쌓는 것 말고는 자리가 마땅치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쌓아 둔 리스본의 차 상자가 열리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세상의 끝에서 왔다 해도 말이다. 


“마시지도 않을 것을 대체 왜 사온거야?” 

가끔은 쌓아 두는 것이 목적인 쓸모없는 것들이 있다.

그저 이곳을 떠나는 것이 목적인 쓸모없는 여행처럼. 





글 | 최동민

제작 | Studio 1.9.8.4

메일 | groscalin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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